발타사르는 1장에서 인간 존재가 지닌 ‘역설적 신비’를 다양한 비유를 들어 보여 준다. 그러면서 이를 바탕으로 우리를 향해 하느님이 건네신 구원의 신비를 조명하고자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인간의 유한성에 주목했다. 우리는 한 줌의 재로 사라지고 말 유한한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무한함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여기에 인간 존재가 지닌 ‘모순’이 있다. 우리는 무한자이신 하느님을 향해 창조되었지만, 그분이 아니라면 한순간도 유지될 수 없는 존재이다. 또한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라면, 우리는 결코 그분께 도달할 수 없는 존재이다.
---「1장」중에서
공간은 차갑게 고정되어 있지만, 시간은 역동적이다. 공간은 분리되어 있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하나로 환수한다. 시간은 네 밖에서 흐르지 않으니, 너는 그 위에서 표류하는 나뭇조각처럼 스스로 헤엄칠 수 없다. 시간은 너를 관통하며 흐른다. 너 자신이 강물 속에 있다.
---「1장」중에서
한 심장의 고독을 통해 세상이 구원되었다. 삶의 상처 자국들 주위로 방어하듯 울타리를 친 은밀한 방의 아름다운 고독이 아니라, 우리를 무방비로 시끄러운 소란에 내어 주는 저 고독을 통해 세상이 구원되었다. 고독 가운데 심장은 불가능들의 얼음물 속에서 나지막이 맴돌며, 차가운 칼날과도 같은 사랑, 늘 깨어 있는 상처와도 같은 사랑을 느껴야 하리니, 그런 고독을 통해 세상이 구원되었다.
---「3장」중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너희는 나에게서 꽃피어 났다. 내 심장의 피 한 방울이 너희의 모든 생각과 노력에 스며드는 게 놀랍지 않은가? 내 심장의 생각들이 너희의 세상적 심장 속으로 조용히 배어드는 게 너희는 놀랍지도 않은가? 너희 안에서 한 속삭임이 날아올라, 너희가 낮이고 밤이고 콧노래와 꾀는 소리를 체감하는데도? 사랑으로 오라고, 기꺼이 고통받으려는 사랑으로, 나의 사랑과 함께, 구원하는 사랑으로 오라고 꾀는데도?
---「4장」중에서
번개가 쳤는가?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틈새를 따라 십자가 위 열매가 보였는가? 흐릿하고 멍한 눈에 구더기처럼 창백한, 어쩌면 이미 죽은, 죽음처럼 미동도 없이 굳어 버린 열매가 보였는가? 그것은 정녕 그의 몸이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그 어느 가없는 물가에서, 그 어느 물 없는 바다 깊이에서, 그 어느 어두운 불구덩이 밑바닥에서 그 영혼은 표류하는가? 처형대 둘레에 모여 있던 그들 모두가 갑자기 깨닫는다, 그가 떠났음을. 가늠할 수 없는 공허가 매달린 몸에서 흘러나온다. 환상적인 이 공허 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9장」중에서
내 실패에 동참하여라. 나와 함께 구원의 허무함을 맛보아라. 이것을 재료 삼아 나의 아버지는 당신의 은총을 발휘하신다. 심판이 있다. 아버지의 손에 저울이 들려 있다. 한쪽 접시에는 하중을 받으며 짓누르는 허무함이 놓여 있다. 다른 쪽 접시에는 위로 향하는 가벼운 희망이 놓여 있다. 그리고 첫 번째 접시가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하여 판결은 떨어졌다. 희망이 올라간다. 벗어나듯 날아오르며 내 나라가 승리한다.
---「11장」중에서
선생들이 말했습니다, 지식의 길은 셋이라고. 긍정의 길, 부정의 길, 그리고 이 둘을 뛰어넘는 초월적 극단의 길이 있다고. 첫 번째 길은 모든 피조물 안에서 당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저마다 자신의 파편 안에서 당신 빛의 광채를 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길은 모든 피조물을 떠나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굳건한 한계들은 한없이 유동하는 당신 존재를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길은 모든 피조물의 완결성의 껍질을 부수고, 당신 영원성의 한없는 척도까지 확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경험으로, 이 길들은 길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13장」중에서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는 20세기의 가장 독창적인 가톨릭 신학자이다. 그는 다음 두 가지 면에서 독특한 점을 지니고 있었다. 첫 번째는 아름다움을 통해 계시를 해석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새로운 신학적인 체계가 탄생하였다. 그래서 그의 신학 체계는 ‘신학적 미학’이라고 불리곤 한다. 두 번째로 그는 인상 깊은 광범위한 문헌들을 바탕으로 각각의 작품들을 풍요롭게 했다. 그의 스승 앙리 드 뤼박은 그를 일컬어 “우리 시대에 가장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더 알아보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