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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끌어안기

상실 끌어안기

: 잃어버린 아이를 기억하는 애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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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268g | 135*210*10mm
ISBN13 9788960907287
ISBN10 8960907286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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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과 화해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나 자신과의 거리 좁히기가 말로써 가능할까? 빈약한 말들. 글로 쓰이는 말들, 내뱉어지는 말들, 들리는 말들, 훔친 말들, 당신 모르게 떠도는 말들, 당신을 향하지 않는 말들, 그 말들 속에 파묻히는 일만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
--- p.29

레, 미. 녀석의 이름은 그러니까 레미가 되었다. 단순하고, 밝고, 바위틈의 물처럼 투명한 이름이다. 녀석의 존재가 꼭 그랬다. 우리를 따라다니던 행복이 그랬다. 미, 레. 녀석이 태어나리라는 약속이 알려졌을 때부터 레미의 미가 우리 둘을 따라다녔다. 레미는 우리를 어린 시절로 되돌려놓는 이름이다. 레미는 부드러운 금발에 성격이 순한 사내아이, 읽기 교과서에 나올 법한, 더없이 평온한 그런 아이였다. 음표 같은 레. 나이 든 지휘자가 우리에게 작품의 구조를 더 잘 들려주려고 한 악장을 잠시 도중에 멈추기까지 했던, 지난겨울 들었던 사중주의 화음 같은 미, 레. 놀림감이 되거나 별명이 붙지 않을, 환하게 빛나는 짧은 이름이다. 선명하고 단호하고 쉬운 이름. 그것은 또 하나의 피부요, 새로운 주거지다.
--- p.41

내가 글을 쓰는 건 거리를 두고 시간을 길들이기 위해서다. 시간이 약이지요……. 형식적인 절차들을 끝마쳤을 때 병원에서 마주친 한 노파가 내게 말했다. 나를 위로하려고 한 말이었다. 그건 거짓말이자 모욕이다. 시간이 흘러도 아무것도 지워지지 않고 아무것도 가라앉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안으로는 몸이 아기의 자리를 잊지 못하고, 밖으로는 팔이 아기를 품었던 품을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시간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차라리 그 편이 낫다. 수없이 새끼를 낳는 암고양이처럼, 어미가 새끼들을 버리고 떠날 수도 있다고 믿게 하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 p.46

레미와 함께라면 나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자각에서 오는, 피할 길 없는 실망감에 맞설 자신이 있었다. 한낮의 양털 같은 하늘의 아름다움을 그 아이와 나누고 싶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의 어루만짐을, 그럴 때 덮쳐드는 가벼운 한기를 아이가 피부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 파도의 소용돌이 속에서 열기와 안식을 찾기 위해 바다로 곧장 달려가게 만드는 그 한기를.
--- p.51

병원에서 나가기 위해 한참을 걸어야 했다. 아들과 떨어진 채 맞이하는 첫 번째 밤이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우리는 아이에게서 멀어졌다. 아이에게 말도 없이, 무슨 일인지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혼자 남겨두었다는 느낌은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 p.78

아들 없는 첫째 날 밤에 우리가 잠을 잤던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로 낮과 밤의 질서가, 깨어 있음과 잠의 질서가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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