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내일은 날씨가 좋겠네요.”
내가 생각하기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드높고, 환성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아줌마는 비질을 멈추고서, 얼굴을 들고, 이상하다는 듯이 눈썹을 찡그리면서,
“내일 무슨 일이 있으세요?”
그 소리를 듣자, 나는 난처해졌다.
“아무것도요.”
아주머니는 웃기 시작했다.
“쓸쓸해지신 거로군요. 산에라도 올라가지 그러세요.”
“산은, 올라가보았자, 금방 또 내려와야 하지 않아요? 시시하게. 어느 산에 올라가보아도 후지산이 보일 뿐,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거든요.”
내 말이 이상했던지, 아줌마는 그저 애매하게 끄덕거리고 나서, 다시 낙엽을 쓸었다.
요는 게으른 것이다. 노상 이런 꼬락서니인지라, 나는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인간이다. 이렇게 단정해버리기는, 나로서도 쓰라린 일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괴롭다느니, 고매하다느니, 순결하다느니, 순진하다느니, 그따위 소리는 듣고 싶지도 않다. 써라. 만담이든, 촌평이든 말이다. 쓰지 않는 것은 예외 없이 게으름 때문이다. 어리석은, 어리석은 맹신이다. 사람은 자기 이상의 일도 할 수 없고, 자기 이하의 일도 할 수 없다. 일하지 않는 자에게는 권리가 없다. 인간 실격. 당연한 일 아닌가.
오늘 아침, 전차에서 본, 짙은 화장을 한 아주머니를 떠올린다. 아아, 더럽다, 더러워. 여자는 싫다. 내가 여자인 만큼, 여자의 불결함을 잘 안다. 이가 갈릴 정도로 싫다. 금붕어를 만진 다음의, 저 참을 수 없는 비린내가, 내 몸 하나 가득 배어 있는 것만 같아서,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것 같고, 이처럼, 하루하루, 자신도 암컷의 체취를 발산시켜나가는 것일까 생각하면, 또 생각나는 것도 있으므로, 이대로 소녀인 채로 죽고 싶다. 문득, 병이 들었으면 생각한다. 엄청 무거운 병이 들어, 땀을 폭포같이 흘려서 말라빠지게 되면, 나도, 말끔히 청정해질지도 모르지 않나. 살아 있는 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착실한 종교의 의미도 조금 알아가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차피 나는, 맛있는 요리 같은 것은 만들 줄 모르니까, 차라리 모양만이라도 아름답게 꾸며서, 손님을 현혹시켜, 우물쩍 넘기는 것이다. 요리는 첫인상이 중요하다. 대개는 그것으로 어물쩍 넘어갈 수 있지. 하지만, 이 로코코 요리에는, 어지간히 미술 감각이 필요하다. 색채의 배합에 대해 뛰어나게 민감하지 않고서는 실패한다. 적어도 나 정도의 섬세함이 없어가지고는 말이다. 로코코라는 말은, 얼마 전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화려할 뿐 내용이 텅 빈 장식 양식이라고 정의되어 있어서 웃었다. 명답 아닌가. 아름다움에 내용 따위가 있을 필요가 있는가. 수수한 미美란, 언제나 무의미하고 무도덕하다. 당연하지. 그래서 나는 로코코가 좋다.
장녀는 26세.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철도성에 근무하고 있다. 프랑스어를 곧잘 했다. 키는 160센티미터에 살짝 모자랐다. 매우 말랐다. 형제들에게 “말(馬)”이라고 불리는 일이 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로이드안경을 끼고 있다. 마음이 화려하고 누구하고나 금방 친구가 되고, 열심히 봉사하고는, 버려진다. 그것이 취미다. 우수, 적요(寂廖)의 느낌을 은근히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 같은 과에 근무하는 젊은 관리에게 열중했다가, 그러고는 역시 버림받았을 때에는, 그때만큼은 그야말로 진심으로 낙심했고, 멋쩍기도 해서 폐가 나빠졌다고 거짓말을 해서 일주일이나 누워 있었고, 그런 다음 목에다 붕대를 둘둘 감고서, 공연히 기침을 자꾸만 해 가면서 의사에게 갔더니, 엑스레이로 정밀하게 조사받은 끝에, 드물게 보는 강건한 폐라며 의사에게 칭찬을 받았다. 문학 감상은 본격적이었다. 실로 많이 읽는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힘이 넘쳐서, 스스로도 뭔가를 몰래 쓰고 있다. 그것은 책장 오른쪽 서랍 속에 감추어 놓았다. 서거 2년 후에 발표할 것, 이렇게 써 놓은 종이쪽지가, 그 축적된 작품 위에 반듯하게 놓여 있는 것이다. 2년 후가 10년 후로 고쳐져 있기도 하고, 2개월 후로 고쳐져 있기도 하고, 때로는 100년 후가 되어 있기도 하는 것이다.
개의 곁을 지나갈 때에는, 아무리 무섭더라도, 절대로 뛰어서는 안 된다. 싱글싱글 비루한 눈치 보기 웃음을 웃어가면서, 무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면서, 천천히, 천천히, 속으로는, 등덜미에 송충이가 10여 마리 기어 다니는 듯한 숨 막히는 오한을 느껴가면서도 서서히, 서서히 지나가는 거다. 참으로, 나 자신의 비굴함에 대해 정이 떨어진다. 울고 싶을 정도의 자기혐오를 느끼기는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다가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은지라, 나는 모든 개들에게 볼썽사나운 인사를 시도해본다. 머리카락을 너무 길게 기르고 있다가는, 어쩌면 수상한 자라며 짖어댈지도 모르므로, 그처럼 싫어하는 이발소에도 열심히 다니기로 했다.
좀 더 온화한, 환하게 밝은, 멋들어진 것. 무엇인지 모르겠네. 예를 들면, 봄 같은 것. 아니 틀렸어, 푸른 잎. 5월. 보리밭은 흐르는 맑은 물. 역시, 아니다. 아아, 하지만 나는 기다립니다. 가슴을 울렁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눈앞을, 줄줄이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그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나는 쇼핑백을 그러안고, 조그맣게 떨면서 간절히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매일, 매일 역으로 마중 나가서, 허전하게 집에 돌아오는 스무 살 아가씨를 웃지 마시고, 제발 기억해주세요. 그 조그마한 역의 이름은 일부러 가르쳐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가르쳐드리지 않더라도, 당신은, 언젠가 나를 볼 것입니다.
나는 일본 취객의 유머 감각 결여에 새삼스럽게 넌더리가 나서, 아무리 그 신사와 주인이 웃어대도, 이쪽에서는 알은체도 하지 않고 술을 마시며, 가게 옆을 지나는 연말 가까운 인파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신사는 문득 내 시선을 따라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가게 밖 인파의 흐름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헬로,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외쳤다. 미국 병사가 걷고 있었던 것이다.
뭐랄 것도 없이, 나는 신사의 그 해학에만큼은 폭소가 터졌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