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넘게 이어온 공부를 한 줄로 요약하면 ‘어떤 것도 영유아기의 안정된 정서보다 우선할 수 있는 가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딱 36개월 동안은 화내지 않고 아이와 소통 주파수를 맞추겠노라 결심했습니다. 신기하게 아이의 키만큼 몸을 낮춰보면 익숙한 골목이 갑자기 두려웠고, 그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면 애써 참을 필요도 없이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이 그렇게 강조하던 ‘아이 마음 읽기’의 시작이 이런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34개월이던 어느 날, 운전 도중 길을 잘못 들어 아이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체험활동에 거의 끝날 무렵에야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길을 잘못 들어서자마자 이실직고하고 사과부터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가겠지만 많이 늦어서 체험이 끝날 수도 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그날 주차장에 도착해 내린 아이의 첫 마디는 이랬습니다.
“괜찮아.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걸?”
네 살 아이가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꾹 참았지만요. 진심으로 고맙다고 답했습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우리 세 식구는 얼마 전 다 같이 기질검사를 했다. 윤호는 자극 추구가 높은데 위험 회피도 역시 높고, 여기에 사회적 민감성은 더 높은 아이라 여러모로 양육하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드는 유형이었다. 도전적이고 직접 몸 쓰는 것에는 태릉인 같다가도 본인 생각에 무섭거나 걱정되는 부분이 있으면 절대 다가가지 않는다. 무서운 꿈이라도 꾸고 나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눈이 뒤집힐 때까지 잠을 안 자려고 버티는 터라 아이의 불안과 무서움이 잠잠해질 때까지 공감해주며 스스로 안정을 찾도록 기다리고 인내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사회적 민감성 부분은 전문가들도 놀랄 정도여서,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고 감정을 읽는 데 빠른 아이라고 했다. 이것은 굉장한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아직은 미숙한 어린이다 보니 자신의 눈높이로 해석하고는 안 받아도 될 상처를 받을 수도 있기에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할 때도 아이를 고려하게 된다. 며칠 밤을 꼬박 새운 뒤 약국에 가서 “요새 잠을 못 자서 피곤하다”라고 무심코 한마디 뱉었다가 본인 때문에 엄마가 힘든 거냐며 시무룩해진 아이에게 다시 설명해준 적도 있다. “너 때문에 힘들어서 피곤한 게 아니라, 엄마가 새벽에 글을 써서 그런 거야. 앞으로는 무리하지 않을게”라고.
--- 「1장 아프지 않고 지치지 않기 위해, 엄마 공부 시작!」 중에서
내가 육아 공부를 놓지 않는 것은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서도 아니다. 키우기 수월한 아이는 아니지만 아이는 지금도 자라고 있고, 이 시간은 지나갈 것이다. 엄마가 조급해한다고 아이가 순해지거나 갑자기 빨리 자라는 것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엄마의 조급함은 아이의 ‘불안’이 되어 ‘불만’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다만 기나긴 육아 레이스에서 지치지 않으려면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고, 근거가 확실해야 불안하지 않을 터이므로 오늘도 공부하는 것이다.
공부를 통해 육아관을 정립하기 전까지는 육아가 마치 실기 과목 같았다. 감춰둔 나의 밑바닥을 마구잡이로 파헤쳐 드러나게 해놓고는, 이를 얼마나 빠르게 덮고 정돈된 마음으로 아이를 마주하는지 시험하는 것 같기도 했다. 매 순간이 치열한 싸움의 연속이고 외로움도 상당했다. 그러다 시간이 갈수록 나의 양육태도와 아이의 성장에 점차 많은 이들이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묻던 사람들이 ‘나도 그렇게 할걸 그랬다’고 태도를 바꿀 땐 묘한 쾌감마저 들었다.
--- 「1장 아프지 않고 지치지 않기 위해, 엄마 공부 시작!」 중에서
생후 6개월 즈음, 보행기를 타고 있던 아이가 손에 쥐고 놀던 딸랑이를 던졌다.
“우와~ 찰찰 소리가 나네!” 딸랑이쯤이야 충분히 던질 수 있지.
하루는 보행기에 탄 채 이유식을 받아먹다가 손에 쥔 숟가락을 휙 던졌다.
“어허, 그건 숟가락이지. 던지면 안 돼요.”
순간 머리에 퍼뜩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아이는 그저 손에 있던 걸 똑같이 던졌을 뿐인데?’
손에 쥔 물건이 가벼운지 무거운지, 잘 깨지는지 아닌지 아이가 알 턱이 없다. 그저 손에 잡힌 걸 떨어뜨리며 나름의 놀이를 하는 것일 테다. 이때 “안 돼요”라고 주의를 준다고 해서 다음에 숟가락은 얌전히 놔두고 다른 걸 던지는 아기가 있을까? 그럴 리도 없는데 인상을 찌푸려봐야 엄마의 표정을 귀신같이 스캔하는 아기 머릿속에는 인상 쓴 엄마와 두려운 느낌만 남지 않을까.
그날 아이에게 말랑말랑한 작은 공 몇 개를 보여주며, 이 작은 공만 던져도 된다고 말했다.
“자, 이 공은 던져도 괜찮아. 다른 건 던지면? 안 돼요.”
그동안 수많은 책과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무서운 얼굴이 아닌 친절한 표정과 말투로 여러 번 시범을 보여주었다. 공은 던져도 되는 것, 그 외 다른 건 휴지 한 칸도 던지면 안 된다고. 아기가 헷갈리지 않도록 공 외에는 어떤 것도 던지면 안 된다고 선을 명확히 그어주었다. 그리고 공을 던졌을 땐 “우와, 공이 데굴데굴 굴러가지! 잘했어. 그렇게 공만 던지는 거야”라고 열렬히 호응해주었다.
신기하게도, 혼자 힘으로는 겨우 자리에 앉아 버티는 게 전부인 자그마한 아기가 엄마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어쩌면 혼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에 더욱 엄마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지도 모른다. 윤호는 그 뒤로 실수로 떨어뜨리는 것 외에 일부러 물건 던지는 모습은 거의 보인 적이 없다.
--- 「2장 정서적 금수저 프로젝트 1 : 아이 마음 다치지 않는 ‘공감’의 기술」 중에서
“괜찮아. 이게 뭐가 무서워. 봐봐, 안 무섭지? 하나도 안 무서운 거야.”
처음엔 이렇게 말하는 게 공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괜찮아’라는 말로 상황을 종료하려는 태도가 아이를 심리적으로 더 위축시킨다는 글을 읽었다. 머리가 띵했다. ‘그렇지, 정말 그렇겠다. 나는 무서운데 엄마는 무서운 게 아니라고만 하니 엄마조차 내 감정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여기겠구나.’
그 글은 공감에 대한 나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주었다.
“맞아, 무서울 수 있어. 엄마랑 같이 이겨내 보자.”
“엄마도 다섯 살 때는 그게 정말 무서웠거든. 그런데 지금 엄마 봐. 씩씩하지? 윤호가 무서운 건 이상한 게 아니야. 당연한 거야.”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아이의 마음을 인정해주는 말의 힘은 굉장했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던 아이 눈에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도 하고, 엄마도 진짜 그랬냐고 되묻기도 했다. 엄마의 응원 한마디 한마디를 마음에 꼭꼭 담아두려는 모습에 내 마음까지 찌릿해졌다.
--- 「2장 정서적 금수저 프로젝트 1 : 아이 마음 다치지 않는 ‘공감’의 기술」 중에서
“지금 10신데 몇 시까지 놀고 양치할까?”라고 물었을 때 아이가 한참을 망설이자 아빠가 먼저 대답을 해버린 적이 있다.
“긴 바늘이 4에 가면 양치하는 거 어때?”
아이는 썩 내키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아들, 10시 20분이네. 긴 바늘이 4에 갔지? 약속한 시간 됐으니 양치하자.”
그날 윤호는 느릿느릿 시간을 끌다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욕실에 들어갔다.
언젠가 오은영 박사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이와 충분히 합의되지 않은 내용은 약속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윤호에게도 10시 20분은 ‘약속’이 아니었으리라. ‘통보’였겠지.
--- 「2장 정서적 금수저 프로젝트 1 : 아이 마음 다치지 않는 ‘공감’의 기술」 중에서
수많은 엄마표 놀이가 SNS를 가득 채우고 있다. 나 역시 도움을 받기도 하고, 엄마들의 식지 않는 열정에 입이 떡 벌어질 때도 많다. 그러나 어딘지 고개가 갸웃해지며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다 만들어진 틀에 아이는 숟가락만 얹는 것 같기도 했고, 가끔은 이상하게도 엄마는 신났는데 정작 아이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지금 놀이를 하는 걸까, ‘엄마표 놀이’라는 과목을 공부하는 중인 걸까?’
아이들에게는 하늘이 빨강일 수도, 초록일 수도, 검정일 수도 있는데 엄마표 놀이 속 하늘은 대부분 파랑으로 정해져 있다. 엄마표 놀이가 아이의 창의성을 더해준다는 말은 더욱 불편했다. 창의력은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힘에서 나올 텐데 엄마의 아이디어로 기획된 놀이가 아이의 창의성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지금도 솔직히 의문이다.
--- 「3장 정서적 금수저 프로젝트 2 : 가능성을 가두지 않는 진짜 ‘아이 주도 놀이’」 중에서
어떻게 윤호가 매일 물감놀이로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도 화내지 않고, 하루 종일 야외에서 유격훈련하듯 뛰고 와서는 새벽에도 깨우는 아이에게 버럭하지 않을 수 있냐고 많이들 물어보신다. 힘들었다. 이불을 입에 물고 조용히 울어버린 날도 있다. 청각 예민보스가 바로 옆에 있으니 우는 것도 한 자세로 꼼짝 말고 울어야 했다. 그럼에도 화내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버럭하면 후유증이 더 길어진다는 걸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 둘째, 후회하기 싫었다. 셋째, 몇 년이 걸리든 ‘지금’ 실천해야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자랄 수 있고, 그래야만 언젠가 나도 나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아이의 정서적인 뇌는 자라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반면 내 자아실현은 조금 미루어도 도망가지 않을 테니까. 엄마로 살아가는 지금의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불태우겠노라는 의지의 선택이었다.
--- 「3장 정서적 금수저 프로젝트 2 : 가능성을 가두지 않는 진짜 ‘아이 주도 놀이’」 중에서
물 따르다 컵 깨고, 우유 따르다 통째로 쏟고, 실험한다며 식용색소를 거실 바닥에 들이붓는 등 크고 작은 사고는 셀 수도 없다. 대부분 아이가 잘해보려다 벌어진 ‘실수’이니 사자마자 잉크가 튀어 새 옷이 잠옷으로 전락해도 화를 내지는 않았다. “다친 데 없으면 괜찮아. 닦으면 돼”, “눈에 튀지 않았지? 빨아보고 안 지면 아빠한테 사과하자” 등등.
물론 초반에는 이렇게 해야 안 깨진다고, 이렇게 해야 안 쏟아진다고 들입다 설명부터 나가려는 주둥이를 마음으로 붙들어 매는 데 상당한 의지가 필요했다. ‘다친 데 없어 다행’이라는 건 엄마로서 늘 하는 당연한 생각인데도 그 한마디가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꽤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10분‘밖에’ 안 남은 게 아니라 10분‘이나’ 남았다고, 말을 할 때마다 머릿속 마우스는 최대한 긍정적인 표현을 클릭하려고 애썼다.
--- 「4장 정서적 금수저 프로젝트 3 : 내가 선택한 선행학습, ‘자기조절력’」 중에서
아기 때는 잘 먹고 잘 자던 순둥이가 점점 예민한 아이가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과자를 한 입 베어 먹을 때마다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계속 치우는 아빠, 집이 어질러지는 꼴을 견디지 못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자연스럽게 부모의 행동을 학습하게 된다. 과자 흘리지 말고 깨끗하게 먹으라는 메시지를 수도 없이 들은 아이에게, 과자 부스러기 같은 모래 천지인 모래놀이터에서 남들처럼 거침없이 놀라고 다그치는 건 모순이다. 아이가 살짝만 부딪혀도 소스라치게 놀라서 걱정이라면 부모가 그동안 “안 돼, 위험해, 조심해” 3종 세트를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외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아이는 그동안 어른들의 불안을 먹고 자랐을지도 모른다.
--- 「5장 매운맛 아이, 조금 더 정교하게 보듬어주기」 중에서
아이의 검사 이후 영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책도 읽고 영재창의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영재에 대한 환상과 오해가 상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들을 모두 고지능아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지능이 높은 아이들은 감각이 더 발달해 있어 똑같은 빛, 소리, 냄새, 촉각에도 매우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뇌로 전달되는 신호를 몇 배 강하게 느끼니 별것 아닌 자극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흥분 또는 긴장 상태에 놓이기 쉽다는 것.
어쩌면 영재 아동을 키우는 부모 중에서는 유독 아이가 예민하다고 힘들어하면서도 그 이유가 아이의 영재성 때문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텨내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고지능아로 판명된 상당수의 부모들이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지능검사를 했고, 검사 후에 아이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만약 아이 특성이 다음 항목에 해당되거나 남다른 지적 능력이 느껴진다면 지능검사를 한 번쯤 받아보기를 권한다.
--- 「5장 매운맛 아이, 조금 더 정교하게 보듬어주기」 중에서
우리 집은 여전히 무계획이 계획이다. 영재이기 때문에 선행학습을 시켜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영재이기 때문에 선행학습이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마음을 닫아버리고 혼자만의 동굴에 갇히는 건 위험할 수 있기에 최대한 찐하게 마음을 나누며 추억을 쌓는 데 집중하고 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의 20년 치 로드맵이 머릿속에 다 그려져 있다지만, 나는 아이의 20일 뒤 모습도 점 하나 마음대로 찍을 수가 없다. 그 대신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는, 더디고 돌아가는 구불구불한 길이라도 아이와 함께 목적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즐겨보려 한다.
--- 「5장 매운맛 아이, 조금 더 정교하게 보듬어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