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르칸트는 어릴 때부터 여행을 꿈꾸던 곳이었다. 사마르칸트까지 가면 4년 동안 혼자 걸어서 여행할 계획을 세웠던 실크로드의 중간에 닿게 된다. 이제 질병 때문에 여행을 중단해야 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다시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좀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이 여행을 완벽하게 주파하기 위한 중요한 문제다.
--- p.16
안뜰로 향한 거대한 문이 햇빛을 받고 있었다. 난 그 문을 통과했다. 이제 이란 땅이다. 문을 통과하자마자 달라진 장식에 놀랐다. 바자르간은 국경사무소가 있는 언덕의 발치에 있었다. 산봉우리에는 가시철조망이 둘러쳐진 콘크리트 초소가 보였다.
--- p.30
어디에나 전쟁의 흔적이 있었다. 어느 도시나 마을에 가도 전쟁 당시 목숨을 바쳐 싸운 ‘순교자’들의 커다란 초상화가 있었고 묘지에는 수많은 순교자의 무덤이 있었다. 이 모습을 보니 제 1차 세계대전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우리 시골에 세웠던 건축물이 생각났다.
--- p.38
내가 가진 형편없는 지도에는 남쪽으로 길이 있다고 표시돼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이 위에만 존재하는 길이라고 했다. 할 수 없지, 나는 10킬로미터를 돌아가야 나오는 도로를 찾는 대신 밭을 질러가기로 했다.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길을 잃을 게 뻔하고, 나쁜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 p.43
평원의 경관은 웅장했다. 도로에는 자동차 유리창 위로 태양이 짧은 불꽃을 던지고 있었다. 북쪽으로는 흙길 위를 돌진하는 차가 일으킨 먼지구름이 혜성 꼬리처럼 가늘고 긴 띠처럼 보였다. 멀리로는 다양한 푸른빛을 띠는 산맥이 더운 공기 속에서 아른거렸다.
--- p.55
나는 미로 같은 시장 골목에서 길을 잃었다. 사방에 모두 비슷비슷한 구멍가게뿐이어서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와와 벽돌의 배치나 형태, 색깔에서 나오는 윤곽이 전혀 달라서 타브리즈 사람들은 길을 잃는 법이 없다. 고기 굽는 냄새, 사람들 얘깃소리, 북적거리는 소리, 짐을 잔뜩 실은 수레를 밀며 고함치는 소리, 진열된 천의 다양하고 화려한 색깔, 소음, 냄새 등에 취해 혼란스러워졌다.
--- p.76
특이하게도 잔잔에서는 칼만 팔았다. 주머니칼에서 검에 이르기까지 수천, 수백만 개의 날들이 진열장을 채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가진 프랑스제 라기올 칼에 관심을 보였다. 병따개가 달린 칼은 여기에서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 p.124
화를 곱씹느라 더위도 목마름도 느끼지 못했다. 계속 차근차근 문제를 정리하려 애썼다. 어떻게 하지? 신고를 해야 할까? 어디에? 경찰에? 그러자 급료가 형편없어서 달러를 밝히고, 어떤 경우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약탈해도 처벌되지 않는 것이 이곳 경찰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 p.167
세 시간 만에 배낭을 실을 수 있는 상자를 만들어서 자전거 바퀴 위에 얹어 볼트로 죄었다. 자전거의 포크 부분은 톱질을 했다. 벨트를 고정시킨 바퀴 축 덕에 빈손으로 걸어다닐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이름을 붙이는 일만 남았다. ‘미확인 주행 물체 에브니(EVNI, Etrange Vehicule Non Identifie)’…… 그래, 에브니〔미확인 비행물체(UFO)의 프랑스어식 표현 OVNI를 익살스럽게 변형한 것〕라고 부르자.
--- p.179
코르네유 같은 선택이었다. 꿈에 그리던 사막을 보러 가면서 기쁨을 느끼되, 내 여정에서 200킬로미터를 줄여야 한단 말인가? 도보여행의 아야톨라인 내가, 차에 탄다고? 그건 안 돼!
--- p.187
마침내 카비르 사막 지대에 가까이 왔다. 메흐디가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사람이 사막에서 사라졌어요.” 완벽한 사각형의 도로는 순식간에 끝없는 평원 속으로 빠져들었다. 너무 멀어서 경계를 구분할 수 없었다. 도로의 각 면에는 붉은색과 회색을 띤, 먼지처럼 미세한 모래가 부는 바람에 날렸다.
--- p.204
커다란 방의 지붕일 것 같은 돔 위에 앉아서 나는 몽상에 잠겼다. 실크로드의 마법이 펼쳐졌다. 눈앞에는 잡다한 상인의 무리, 수백 마리의 낙타에서 짐을 부리는 사람들 모습, 주변의 스텝에서 풀을 뜯어먹는 엄청난 수의 낙타들이 보였다.
--- p.229
이란에서 저녁 여섯 시경은 축복받은 시간, 모든 것을 태울 듯 내리쬐던 태양의 포화가 따사롭게 어루만지는 듯한 햇살이 된다. 노인들은 지붕 위로 포도 덩굴이 뻗은 정자 아래로 모여들어 대화를 나눈다.
--- p.274
이란 사회는 엄격한 도덕으로 유명한 곳이다. 몸은 반드시 숨겨야 하는데 여성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일상생활에서도 남성은 티셔츠를 입는 등 어느 정도 파격이 허용되지만, 여성은 온몸을 감싸야 한다. 남성은 예외 없이 바지를 두 개 입는데, 좀 더 가벼운 속의 바지는 잠옷으로 사용된다.
--- p.292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도보여행을 한 처음 며칠은 회색 풍경과 환한 햇살, 친밀한 것과 낯선 것 등 대조되는 것들이 한데 섞인 안개 속처럼 기억될 것이다. 거대한 저수지 근처의 카라쿰 운하에 있는 작은 도시 하우즈한(Khauz-Khan)으로 가기 위해 30킬로미터를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 p.322
샤흐무라트도 잊을 수 없다. 도로변에 있는 간이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질 무렵이었다. 콜호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저녁에 술잔을 기울이러 이곳에 왔다. 쾌활한 얼굴의 뚱뚱한 남자가 나를 아들처럼 대했다. “배낭은 여기에 둬. 배고파? 먹을 거 줄게. 목말라? 보드카 따라줄게. 씻고 싶어? 날 따라와.”
--- p.327
나를 영웅으로 생각할지 모르는 사람들의 오해를 확실히 풀어주기 위해서는 내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내 두려움은 과도하게 보일 수 있다. 인정하기 쉽지 않지만, 내 안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다. 두려움은 지금까지 모험정신을 견제하며 내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 필수 불가결한 보완물과 같다.
--- p.341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며, 경이로움과 공포가 뒤섞인 곳이고, 동양에서 가장 종교적인 도시의 하나다. 부하라에는 360개의 이슬람 사원과 100여 개의 이슬람 신학교가 있는데 학생 수는 1만 명에 육박했다. 또한 실크로드의 주요 시장으로, 수십 개의 대상 숙소가 있었다.
--- p.386
이런 생각을 떠올리니 벌써 다시 떠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돌아가자마자 다음 여행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나는 ‘모험’을 좋아한다. 내게 여행은 책이나 여행 가이드?떠나기 전에 읽은 모든 가이드북―에 없는 걸 발견하는 것이다. 대체 뭘 발견하려는 거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 p.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