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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낸 초록 분홍 마을

우리가 지낸 초록 분홍 마을

: 순천에서 반년 동안 농촌유학을 경험한 한 가족의 이야기

최설희 | 심다 | 2022년 05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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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302g | 138*190*20mm
ISBN13 9791189665401
ISBN10 118966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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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댁에서의 두 번째 모임은 어느 토요일 낮에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두릅 튀김을 좀 했는데 와서 같이 먹겠냐는 얘기를 듣고 급하게 달려갔다. 지난번 티타임 때는 평일 낮이어서 농촌 유학 온 엄마들만 모였었다. 이날은 마침 토요일이어서 아이들은 부뚜막 앞에 옹기종기 앉아 점심을 먹었고, 어른들은 이번에 낮맥을 즐기기로 했다. 상차림을 보니 두릅 튀김 뿐 아니라 이것저것 차려져 있는 음식이 좀 있어서, 나도 그냥 먹을 수만은 없어 얼른 집으로 다시 돌아가 돼지갈비 1팩을 후다닥 가져와 익히기 시작했다. 갈비가 익는 동안 난생처음 먹어보는 두릅 튀김의 맛이 궁금해 튀김부터 손에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향긋한 두릅 튀김은 두릅 향이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바삭한 튀김옷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너무 맛있었다!
--- p.30

방송은 주로 이장님이 하시고 가끔 이장님 아버님도 하셨다. 방송내용은 각종 지원 사업 신청 공지, 코로나 관련 안내, 마을 청소 날짜 공지, 점심 식사 모임 안내 등 다양했다. 마을 방송이 나오면 혹시라도 나와 관계있는 내용이 나오는 건 아닌가 싶어 창문을 열고 집중해 들었다. 꼭 관계된 일이 아니더라도 마을 방송을 잘 듣다 보면 마을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꽤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나는 마을 방송 열혈 청취자로 지냈다.
--- p.34

고작 하루 이틀 일을 도왔을 즈음, 이렇게 많은 복숭아 열매에 하나 하나 봉지를 씌우는 일이 그새 막막하게 느껴져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이장님은 옅은 미소를 띠며 복숭아 키우는 일이 재밌다고 하셨다. 지루하고 고된 과정을 숱하게 반복하셨을 텐데 그 과정을 모두 지나온 고수의 내공이 느껴졌다.
도시에서의 일은 사람이 조절할 수 있지만, 농사일은 철저히 자연에 맞춰야 해서 농업인의 삶은 주말이 따로 없다. 그저 비 오는 날과 비 오지 않는 날로 구분될 뿐. 늘 음식 먹으며 농사짓는 분들께 감사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껏 그 말이 솔직히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순천에 와서 복숭아 농장 일을 지켜보고 조금 거들어보니 농담으로라도 ‘시골에서 농사나 지을까?’라는 말을 내뱉는 일이 농사일을 힘겹게 하는 농업인들의 힘을 얼마나 빠지게 하는 말인지 알게 되었다.
--- p.84

평소 무심했던 형이 갑자기 음료수도 따라 주고 운동기구도 먼저 쓸 수 있게 배려해주자 승빈이의 정체는 금세 탄로 나고 말았다. 학교에서 제공된 마니토를 위한 선물 예산은 만 원이었는데 그 동생은 “형! 나 그냥 선물 사지 말고 돈으로 줘.”라고 했고, 무미건조한 중학교 남자아이들의 마니토 활동은 이틀 만에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마음 따뜻한 에피소드와 결과를 예상했는데, 현실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이틀 동안 승빈이가 그 동생에게 어떻게 잘해줄지 고민하고 조심스럽게 실천에 옮겼을 모습을 상상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 p.123

마트에서 상추를 사다 먹을 때도, 여기 와서 상추 싹을 틔울 때도 상추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바라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상추 나무에 씨가 맺히는 모습을 보자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는 상추의 모습이 겹쳐 보이며 뜻밖에 많은 생각을 했다. 순천은 나를 자꾸 생각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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