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성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식품에서 조미료나 향은 단순히 첨가하는 것으로 충분히 작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물성은 식품의 모든 성분이 작용하고, 원료와 배합 비율뿐 아니라 투입 순서와 공정까지 정확히 맞아야 원하는 대로 만들어진다. 그러니 원료의 특성 외에도 공정과 원리까지 잘 알아야 한다. 경험도 중요하지만 원리를 알아야 여러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다른 분야까지 확장할 수 있다.
그나마 물성을 공부하면 좋은 것은, 물리적인 현상이라 변수가 논리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한 번이라도 원리를 제대로 알게 되면 항상 재현 가능하고 시행착오를 확 줄일 수 있다. 식품의 수많은 이론 중에서도 제대로 공부하면 실전에 가장 도움이 되는 분야가 물성 이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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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의 대표적인 물성은 적당한 점도와 끈기이며, 이것을 조절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물에 녹는 성분을 이용하는 방법, 물에 녹지 않는 기름을 이용하는 방법, 고체를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기체인 거품을 이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 원료와 제조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물리적 조성이 만들어지고, 소스의 특성도 달라진다. 그리고 소스는 단일한 요소로 된 것보다 복합적인 경우가 많다. 물에 녹는 성분에 분산된 성분 그리고 유화된 성분 등이 동시에 사용되어 소스가 만들어지고는 한다. 전분으로 농도를 조절한 소스에 퓌레나 건더기가 떠다니고, 유화해서 만든 소스에는 우유, 달걀, 향신료의 입자들이 함께 있다. 여기에 요리사가 버터 한 조각을 녹이거나 크림 한 스푼을 저어서 좀 더 걸쭉하거나 진하게 만들었다면 소스는 유화액의 일종이 된다. 소스는 이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조합을 통해 우리를 더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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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흰자를 거품기로 저으면 몇 분 안에 한 컵 분량의 눈처럼 새하얀 거품을 얻게 되는데, 부피가 원래의 8배까지 부풀어 오른다. 이 거품은 볼을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고 꼭 달라붙어 있을 만큼 응집력이 뛰어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재료와 섞어서 조리했을 때도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달걀 거품 덕분에 우리는 공기를 포집하고, 머랭과 무쓰, 진피즈, 수플레, 사바용을 만들 수 있다.
달걀은 신선란보다 오래된 것이 휘핑이 쉽다. pH가 높기 때문이다. 신선한 난백의 pH는 7.6~7.9인데 보관 중 이산화탄소가 손실되면서 pH는 점점 올라가 최고 9.7까지 높아진다. pH가 높아짐에 따라 단백질끼리 분리되어 점점 맑은 색을 띤다. 설탕을 처음부터 넣거나 소금을 넣거나 기름을 넣으면 기포력은 감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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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향기 성분은 주로 기름에 잘 녹는 성분이다. 따라서 향기 성분을 그대로 음료에 사용할 수 없으며, 또 다른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감귤(Citrus)계 과일의 껍질에는 향이 많아서 이를 짜낸 오렌지 오일이나 레몬 오일이 많이 쓰인다. 하지만 바로 쓰지는 못하고 물에 잘 녹지 않는 테르펜(Terpene)계 물질을 제거한 뒤 용매를 이용하여 수용성으로 만들어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 향기 성분이 손실되고 향도 약간 변한다.
만약 오렌지 오일을 그대로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유화시키면 된다. 하지만 유화는 쉽지 않다. 음료에 사용하는 유화물은 상온에서 최소 6개월 이상 안정성이 요구되는데, 점도가 낮고 산도는 높은 음료에서 제품 상단에 기름층이 전혀 생기지 않을 정도로 안정된 유화물을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고도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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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뜨겁게 요리하기 위해서는 열을 가해줘야 한다. 우리가 열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전통적으로는 나무나 석탄을 이용했고, 현대는 석유, 가스, 전기 등을 사용한다. 전자레인지 역시 열기를 만들어내는 장치다. 우리에게 낯선 ‘마이크로파’를 이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마이크로파는 파장이 상당히 길고 진동 수는 적은 편에 속한다. 그렇다 해도 진동 수가 2.45기가헤르츠GHz이니 초당 무려 24억 5천만 번이나 진동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숫자에 놀라겠지만 가시광선은 이것의 10만 배, X선은 10억 배, 방사선은 1조 배 이상 많이 진동한다. 마이크로파는 자외선이나 가시광선 심지어 적외선보다 진동이 적은 안전한 파장인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이크로파에는 묘한 특징이 있다. 물과 아주 잘 공명共鳴한다는 것이다. 물은 아주 작고 극성이 있는 분자인데 마이크로파와 궁합이 아주 잘 맞아 마이크로파의 진동에 맞추어 아주 심하게 요동하고 회전하고 주변의 분자와 충돌한다는 것이다. 온도란 분자의 운동의 정도다. 물 분자의 운동이 활발해져 주변의 분자에게도 그 운동에너지를 전달하여 운동이 활발해지는 것이 음식물 온도의 상승 기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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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용 고기는 적어도 1인치Inch 즉, 2.5cm는 되어야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고 촉촉하게 익힐 수 있다. 고기를 불에 익혀 먹으면 세균 등을 없애고 소화하기 좋은 상태가 되지만, 사실 이런 것은 삶아도 충분히 가능하다. 게다가 직화하면 아크릴아미드나 벤조피렌과 같은 위험한 물질이 만들어지는데도 우리가 굽기를 고집하는 것은 그 특유의 향 때문이다. 지글지글 스테이크를 구우면 노릇노릇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모습과 함께 특유의 로스팅 향이 결정적으로 고기를 맛있게 한다.
메일라드 반응은 고기의 지방, 아미노산, 당이 열에 의해 새로운 향기 물질로 전환되는 과정이라 130~200℃ 사이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다. 물이 포함되면 100℃를 넘지 못하므로 이런 반응이 잘 일어날 수 없다. 고온에서 짧고 강력하게 가열해야 풍부한 향과 색이 만들어진다. 지나치게 익히면 타게 되고 수분이 너무 날아가 퍽퍽해진다. 요즘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부드러운 것이다. 맛있는 스테이크는 메일라드 반응을 통해 표면에 향기가 나는 물질을 머금고 중심부에는 육즙이 담겨 있는 부드러운 상태
여야 한다. 고기가 얇으면 겉에 이런 물질이 만들어진 순간 속마저 완전히 익게 된다. 고기가 두꺼워야 겉이 로스팅되는 순간에도 속은 어느 정도 낮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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