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3년 09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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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20쪽 | 420g | 150*195*30mm |
ISBN13 | 9788901159294 |
ISBN10 | 8901159295 |
발행일 | 2013년 09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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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20쪽 | 420g | 150*195*30mm |
ISBN13 | 9788901159294 |
ISBN10 | 8901159295 |
1부 그대는 내 마음의 언더그라운드 추억을 통해 인생은 지나간다 │ 천양희 아마도 중얼거림 │ 김경주 마음이 즐거워지는 네이밍 │ 이근화 먼 그대에게 │ 박정대 비밀의 서랍을 열듯, │ 이민하 너에게 │ 김언 이상하고 외로운 소실점 │ 이제니 꿈처럼 오련하게 사레들리네 │ 이재훈 나는 안녕하지 않습니다 │ 유형진 첫사랑을 향한 연서 │ 박후기 봄의 묵서 │ 조용미 나의 첫사랑에게 │ 윤성택 피와 눈빛과 입술의 일 │ 이혜미 잘 지내고 있나요 │ 유희경 도망가고 싶었던 마음 │ 이영주 당신은 내게 사랑을 말했죠 │ 윤성학 공작새가 깃들어 있다지요? │ 조윤희 당신은 혹시 내가 아는 모든 사랑이 아니던가 │ 강정 하필(何必), 이라는 말 │ 박연준 에로 테쿰 │ 김영승 2부 우리는 미래에 당도해 있는 연인 스무 통의 손 편지 |
사랑을 꿈꾸는 이들의 고백
내겐 말할 때도 듣게 될 때도 여전히 어색하기만 한 말이 있다. ‘사랑’이 그 말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사랑에 대한 아픈 경험이 있어 ‘사랑’이라는 말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색한 것은 무슨 연유일까?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서도 모르겠다. 하여,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즐겨 읽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궁금함에 내가 알 수 없는 그것에 대한 대리만족에 원인규명까지 다용도로 말이다. 그렇다 보니 ‘첫사랑’이라고 하는 말에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누구나 성장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겪게 된다는 그 첫사랑조차도 내게 있었는지 없었는지 가물가물하다.
내겐 그렇게 어려운 사랑과 첫사랑에 대한 애틋함이 물씬 풍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을 만난다. 시인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에다 그것도 사랑에 대한 편지라고 하면서 제목도 그럴싸하게 붙인 책이 있어 보자마자 손에 들었다. 그 이름도 거룩한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라는 책이다. 이 말이 주는 느낌이 어찌나 좋던지 막상 손에 들고서도 내용보다는 제목에 꽂혀 한동안 페이지를 넘기지도 못하고 있었다. 별이 유난히 반짝이던 밤에 손에 들고 잠을 이루지 못하며 읽어갔다. 세상을 남다르게 보는 시인들의 이야기라 더욱 더 몰입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시인들의 사랑에 대한 편지글 모음인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에 참여한 시인들로는 천양희, 김경주, 이근화, 박정대, 유형진, 조용미, 윤성택 등 20명이다. 시인들이 제 각기 털어 놓는 ‘사랑고백’이다. 이 책이 특이한 것은 시인들의 사랑고백의 육필을 실었다는 것이다. 활자화된 이야기보다 손수 쓴 편지글에서 느껴지는 개성 넘치는 글씨의 매력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만든다.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가 담고 있는 느낌상의 이야기는 아픔이 묻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처럼 세월이 한 참이나 지난 후에 옛사랑에 대한 편지를 쓰다 보니 가슴 속 가만히 놓아두고 애써 다독이던 감정이 살아나 어쩌면 과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편지가 옛 그 시절을 함께 공유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애틋함이 살아 있다. 지금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랑에서부터 소년 소녀 때 가슴 설레던 그 풋풋함과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세월의 무게를 안고 있기에 가능한 자기 성찰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사랑고백을 접할 수 있다.
당신과 함께했던 봄은 단 한 번뿐이었지만 혼자서 보낸 봄들도, 나머지 봄들도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해마다 봄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애틋했습니다.(조용미, 「봄의 묵서」 중에서)
과연 그럴까?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모든 사랑은 첫사랑일까? 첫사랑이 처음사랑이 아닌 지금 사랑하는 그 사람과 당면한 사랑이니 첫사랑이라 해도 될 듯도 싶다. 그 첫사랑이라고 하는 말에 담긴 가슴 진솔함을 나눌 수 있다면 말이다. 여기 20명의 사랑도 지나간 사랑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사람으로 읽힌다. 하여, 자신을 떠난 연인에게 여전히 ‘잘 있지 말아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슴 아린 시간이었더라도 공유한 무엇이 있었기에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 애틋할 것이다.
시인들의 사랑에 관한 정의 중‘우리가 알 수 없는 아득한 그 무엇을 서러움 없이 툭, 하고 만졌다가 그리워하고 또 서러워졌다가 후회도 하고 안도도 하며 그렇게 열렬히 자기 마음의 불꽃을 태우는 것’(박정대), ‘여전히 안녕하지 못한 채 비바람 속에 서 있는 일’(유형진), ‘전 생애를 비밀에 걸었을 때에만 이루어지는 것’(윤성택), ‘덜컹이는 눈물 너머 당신에게 오래오래 손을 흔드는 것’(윤성학) 이 긴 여운을 남긴다. 시인들은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에 낭만도 사랑도 시들해진다고 서러워 하는 사람이라면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라는 기막힌 스무 명의 시인들의 가슴 속을 들여다 볼 일이다.
‘당신과 나의 인연을 첫사랑이라 불러도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사랑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각자 혼자만의 사랑을 완성하느라 분주했던 걸까요?’ (102쪽, 조용미의 편지 중에서)
첫사랑, 돌이켜보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과도한 집착이나 감정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하나의 과정이 맞다. 그럼에도 첫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사랑은 처절하면서도 숭고하다. 절대로 변하지 않는 건 모든 것이 변한다는 명제뿐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완전한 사랑이어야 했고, 완벽한 사랑이어야 했다. 그러니 사랑했던, 혹은 사랑이라고 믿었던 너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부질없다.
그럼에도 스무 명의 시인이 쓴 단 한 사람만을 위한 편지를 읽으면서 이 순간 내가 떠올리는 건 소년이었던 너의 얼굴이다.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 정말 어쩌다 나는 너를 좋아하여 사랑이라 믿었을까. 소녀이었기에 그랬던 것일까. 어느 사랑이 아름답지 않고, 어느 이별이 쓰리지 않겠는가. 잊고 있던, 잊었다고 믿은 한 사람의 형상을 다시 만드는 일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니까.
‘사랑을 한다는 건 뭘까, 그것 역시 우리가 알 수 없는 아득한 그 무엇을 서러움 없이 툭, 하고 만졌다가 그리워하고 또 서러워졌다가 후회도 하고 안도도 하며 그렇게 열렬히 자기 마음의 불꽃을 태우는 것’ (40쪽, 박정대의 편지 중에서)
애써 담담한 척 써 내려간 시인의 편지를 읽으면서 글에 숨어 있는 절절한 그리움을 발견하고 그만 멈칫한다. 시인이 아니라도 이런 편지를 쓸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그들의 사랑은 우리의 그것과 달랐던 것일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토록 곱고 고운 결의 편지 속 주인공을 상상하고 부러워한다. 온통 한 사람만으로 채워졌을 그 시간을 흠모한다. 그 사랑이 어떤 형태로 변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그 사랑이 주는 감동과 위안을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으로 충만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누군가를 사랑(그래요 사랑)한다는 일이 나이와 무슨 상관이겠어요. 웃자라거나 덜 자랄 수 없는 그런 것 아니겠어요. 어찌 보면, 그때 그 사랑이, 사랑이라는 표현 한마디 없이도 얼마나 진심일 수 있었는지요. 바라는 것 하나 없이, 그대로. 소유와 같은 욕망의 감정도 아니었으니, 타인이 단 하나의 특별한 존재로 변하는 그 과정 전체를 고스란히 겪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30쪽, 유희경의 편지 중에서)
어떤 편지는 함께 여행을 떠나고 어떤 편지는 촌스럽고 유치했던 학창시절을 불러온다. 편지를 읽는 동안, 나는 그였고 그녀였다. 소설처럼, 시처럼 아픈 사랑의 편지도 있다. 보내지 못하는 편지라서, 온전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었고 여태껏 말하지 못한 마음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꺼내고 싶지 않은 사진첩 속 깊숙하게 숨겨둔 사진처럼 말이다.
시인이 쓴 시와 닮은 편지를 읽는 즐거움을 안겨준 책이다. 읽는 동안 그들의 시집을 꺼내게 만든다. 스무 명의 편지는 찬연하다. 특별하게 존재했던 한 사람에게 쓴 편지였지만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 거하는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편지 그 자체가 산문시였고 슬쩍 훔치고 싶은 편지였다. 그리하여 주근깨 소녀가 아닌 나를 기억하지 않을 너에게, 어딘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삶을 살아갈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게 만든다.
마주 보는 사랑 안에 있는 당신에게, 설령 사랑 밖에 있는 당신에게도 이 스무 통의 편지를 권한다. 이 책으로 켜켜이 쌓아 단단해진 사랑의 고백을 해도 좋겠다. 어쩌면 당신도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게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첫사랑을 못잊는건 그것이 가장 순수할수 있던 때의 오롯이 사랑만 있었던 그런 사랑이어서 아니었을까 싶다. 나이가 들수록 아무래도 스펙 따지고 계산도 하면서 머리굴리면서 사랑을 하게 될수밖에 없는데, 이런거 저런거 안따지고 그저 순수하게 좋았던 그 마음 그것이 그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편지를 쓰다보면 그 때 그 감수성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시인들이 그 감수성을 잘 포착해서 첫사랑에게 러브레터를 보내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