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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3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22g | 140*215*20mm
ISBN13 9788983946966
ISBN10 8983946962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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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헤이스가 처음 그를 봤을 때, 데이비드 할렌백은 뛰고 있었다. 뛴다고 했지만, 제대로 뛰는 건 아니고 짧은 다리로 비틀거리며 뒤뚱거리고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렇게 뒤뚱거리며 달려오다 두려운 듯 뒤를 돌아보는 순간 발이 겹질려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할렌백은 잠시 숨을 고르다가 비틀거리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할렌백은 어떤 곳을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라, 어떤 곳에서 벗어나려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망치고 있었다.
엄청 겁에 질린 채 말이다.
에릭은 할렌백을 전혀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롱아일랜드 벨포트라는 마을에서 에릭은 아는 애가 거의 없었다. 에릭은 농구공을 바닥에 튕긴 후 다시 잡아 능숙하게 손가락으로 돌렸다. 중학교 뒤에 딸린 넓은 공터에는 어떻게든 살려고 뒤뚱거리며 달려오는 곱슬머리의 할렌백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할렌백은 목숨을 부지하려고 결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에 보기가 안쓰러웠다. ---pp.11-12

선생님이 출석을 부를 때, 에릭은 그 애의 이름이 데이비드 할렌백이란 걸 알게 되었다. 에릭은 그 이름을 좀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 에릭은 분명히 기억했다. 누군가 사물함에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야, 할렌백!” 하고 조롱하는 소리를……. 그리핀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할렌백은 왕따였던 거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혹은 둘의 인생이 어떻게 얽히든, 에릭은 공포에 질린 채 누군가에게 쫓겨 비틀거리며 달려오던 할렌백의 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또 그 밖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할렌백을 보면 에릭은 어느 여름날 오후 케첩을 잔뜩 뒤집어쓴, 그리고 수치심으로 뒤범벅이 된 그 애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pp.44-45

‘겁주기 게임’이란 또 다른 오래된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항상 웃기는 게임이기도 하다. 게임 방식은 이렇다. 할렌백이나 다른 희생양(뭐 항상 할렌백일 필요는 없다)을 정한 후(예컨대 할렌백이라 치자), 할렌백이 자기 사물함 앞에서 천식호흡기를 들이마시고 있을 때, 드루피가 성큼성큼 다가간다. 그 다음 주먹을 쥐고 한 방 날릴 것 같은 자세를 취하면, 그 모습을 본 할렌백은 공포에 질려 움찔하게 된다. 애들은 그 모습을 너무 재미있어했다. 코디는 겁주기 장난으로 엉엉 우는 할렌백의 얼굴을 보면 배꼽 잡고 웃었다. 정말 찌질한 모습이니까.
그 장난을 할 때면 할렌백은 맞지도 않았는데 “으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 드루피는 낄낄대면서 “앗싸, 성공!” 하고 소리쳤다.
아이들이 이 게임을 하는 동안 에릭은 한마디도 안 했다. 자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에릭은 생각했다. 그 못된 장난에 참여한 적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할렌백을 괴롭히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한 적도 없고, 그 게임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에릭은 한 걸음 물러난 채, 그저 못 본 척했다. 하지만 사실 에릭은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었다. 복도에 있는 다른 아이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점차 그 장난의 본질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건 청바지를 입은 악동들의 테러였다.’ ---pp.100-101

“에릭, 내가 그렇게 나쁜 짓을 한 것 같진 않아. 현실을 정확히 보자구. 할렌백 같은 애들은 항상 당하게 돼 있어. 그게 정글의 법칙이야. 강자만이 살아남지.”
“그리핀, 우린 중학교에 다니고 있지, 정글에 있는 게 아니야.”
그리핀은 본래의 자신감을 회복한 듯 거칠게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 에릭. 틀렸어. 우리가 다니는 중학교도 적자생존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과 다름없어. 빨리 이해하는 게 좋아.”
“글쎄다.”
그리핀은 눈을 한 번 깜빡이더니, 눈가로 내려온 앞머리를 입으로 훅 불어 넘겼다.
“생각해봐, 에릭. 우린 모두 동물이야. 그날 내가 할렌백한테 짜증난 이유도 바로 그거야. 내 말은…… 자, 봐. 텔레비전에서 ‘동물의 왕국’을 본 적이 있을 거야. 할렌백은 무리 속에 있는 병든 가젤 같은 거야. 계속 발을 저는 그런 약한 가젤 말이야. 결국엔 사자들한테 잡혀 먹히고 말지. 물론 그건 공정한 게 아니야. 그렇지만 그런 게 바로 삶이야. 그리고 그런 삶의 규칙은 내가 만든 게 아니야.”
에릭은 아무 말 없이 그리핀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pp.109-110

플로이드 선생님은 문제 카드를 꺼내 읽었다.
“왕따를 목격하고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은?”
에릭은 살짝 불편한 기분을 느끼면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물론 머리를 숙이고 생각하는 척했다. 몇 명의 아이들이 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신호로 합창하듯 “두구두구두구두구~” 했다.
“삑! 시간이 다 됐습니다. 누구, 정답 아는 사람?”
플로이드 선생님이 물었다.
그때 누가 외쳤다.
“답은…… 방관자! 아닌가요?”
낡정답입니다. 더블 점수 800점!”
남은 시간 동안 아이들은 조를 짜서 조별로 ‘왕따 없는 학교(왕따 프리존)’를 만들 방법들을 토론했다.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갔고, 에릭 조의 서기를 맡은 아시가 빠르게 그 방법들을 써내려갔다. 에릭 조에서 나온 방법들은 다음과 같았다.

-서로 존중하기
-왕따 행위를 보면 어른에게 알리기
-나쁜 소문을 퍼트리지 않기
-왕따 가해자를 응원하지 않기
-왕따 피해자를 위해 나서주기
-왕따 가해자와 사귀지 않기
-방관자가 되지 않기
-피해자를 돕기
-“그만해”라고 말하기
-왕따 가해자의 농담에 웃지 않기
-왕따 피해자에게 잘해주기

왕따를 없애는 방법에 대해 모두가 많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모두들 원래 과학수업보다 이 수업에 더 열중하고 있었다. 정말 최고의 수업이었다. 그때 에릭의 머리에 그리핀 코넬리와 데이비드 할렌백이 떠올랐다. 에릭은 좀 더 열심히 노력해보기로 했다. 플로이드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왕따의 방관자가 아니라 ‘친구’가 되어보기로.
---pp.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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