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섭은 전후의 가난, 그리고 비국민으로 겪는 어려움, 불안, 혼란 등을 이 두 인물 유형을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채익준과 같은 비분강개형은 큰소리를 치고 세상에 분노하는 것으로 자신의 무능을 감추고 살아가는 중입니다. 「미해결의 장」의 아버지 세대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반면, 봉우와 같은 인물은 기피형입니다. 봉우는 치과에 나와서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졸고 있습니다. 자신의 처는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고, 또 성적으로도 굉장히 왕성한 여자인데, 그런 여자와 대조되는 인물이죠. 그는 그냥 멍하니 허송세월하고 있고, 소일거리가 있다면, 간호사를 따라다니는 거죠. 이것도 정말 여자에 대한 관심이라고 하기는 어렵고요. --- p.43
김승옥의 단편에서 전쟁은 한국전쟁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나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측면보다는 고향의 상실, 순수한 시대의 파괴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전쟁은 남자 어른(아버지)을 빼앗아갔고, 남은 식구는 어머니, 누나, 할머니 그리고 어린 남자아이인 ‘나’뿐입니다. 이런 가족 구성은 김승옥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데요. 앞서 말했듯 이런 구조 속에서 어머니와 누이는 힘이 약한 반면, 이들이 돈을 벌어야 하는 도시는 힘이 세고 교활한 이들의 술수가 난무하는 세계입니다. 한쪽에는 순수가 다른 한쪽에는 속물들이 있는 구도인 거죠. 이런 구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머니와 누이의 순수는 타락할 수밖에 없고, 아이는 이런 현실을 목격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습니다. --- p.58
이청준 작품 속 인물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진술을 행해야 합니다. 그러한 진술은 어떤 강요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내켜서 해내는 것이 되어야겠지요. 자아 망실, 즉 자기 진술의 어려움이라는 증상을 자기 진술로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동어반복이기도 합니다. 자기 진술이 안 되어서 생긴 고통을, 역시 일정한 서사화를 거친 자기 진술로밖에 극복할 수 없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청준의 소설에서 액자 형식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딜레마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자기 진술을 강요하는 폭력과 이로부터 도피하는 자아 망실 환자라는 상황이 이 액자 형식 속에서 융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102~103
황석영의 1970년대 작품들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소외된 계층들의 삶을 전면에 드러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삼포 가는 길」의 정씨나 백화와 같은 인물은 어려운 농촌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까 하여 도시로 나왔지만, 역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고 있습니다. 이들은 「밀살」이나 「이웃사람」에서처럼 범죄에 내몰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전까지의 한국 소설에서는 좀처럼 주목되지 않았던 주변부 계층의 인물들이 황석영의 단편에서만큼은 생동감을 얻어 살아 움직입니다. 그리고 주변부 계층의 인물들이 겪는 불행의 구조적 문제를 주제화하면서, 저항 의식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는 「객지」, 「야근」 같은 작품에서 두드러집니다. --- p.129
박완서의 소설에서 한국전쟁은 부끄러움이 상실되는 일종의 중요한 계기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경제적 기반은 물론이고, 도덕적 기준 역시 상실된 것이죠. 앞서 손창섭의 1950년대 소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1960~70년대의 한국경제는 전쟁의 복구와 경제 발전이라는 목표하에 경제적 가치가 최우선이 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전쟁으로 잃어버린 경제적 기반은 어느 정도 회복하고 복구를 하였는데, 역시 잃어버린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아무도 다시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전쟁 때야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서 잠시 부끄러움을 잃고 아귀다툼을 했다지만,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해졌는 데도 더 먹고살겠다고 염치없이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부끄러운 게 아니겠냐는 것이죠. 이런 취지의 질문이 박완서의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빌려 자주 등장합니다. 돈 버는 데 ‘부끄러움’ 같은 게 필요하지 않는 이상, 과감하게 버리고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1970년대의 속물들의 모습이고 이런 사람들에 대해 염증을 느끼는 것이 박완서 소설의 주제입니다. --- p.164~165
이 읽는 행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외딴 방』에는 ‘나’처럼 뭔가를 읽는 친구가 있습니다. 산업체 야간 학교에서 만난 미서도 그렇습니다. 미서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끼고 다니죠. 어깨 너머로 몇 줄만 읽어 봐도 어려워 보이는 문장들이라서 ‘나’는 놀랍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을 왜 읽는 것일까. 어떻게 이해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 때문이죠. 하지만, 미서에게 중요한 것은 헤겔의 문장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만큼은 ‘공순이’로 멸시 받는 현실과는 다른 세계와 접속할 수 있다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미서는 어려운 책을 끼고 다니는 겁니다. 『난쏘공』을 읽는 ‘나’도 역시 마찬가지이죠. 미서와 ‘나’ 모두 인텔리 계급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니고, 먹고사는 것 외에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도 않지만, 적어도 그들이 소설을 필사하는 순간, 어려운 독일 철학책을 끼고 다니는 순간 만큼은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 p.217~218
김사과는 주로 대학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를 등장시켜서 한국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부각시켰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젊은 세대는 매우 전형적이었습니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한 인물이 특정 시대를 대표할 만큼 그 본질을 잘 드러냈다는 말입니다. 김사과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수도권에 있는 대학을 나왔지만, 임금 소득만으로는 도시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부모 세대의 희생으로 대학 교육까지 받았지만, 어쩌면 부모 세대보다 더 낮은 계급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습니다.
--- 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