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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전

국자전

리뷰 총점9.0 리뷰 22건 | 판매지수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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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538g | 145*210*24mm
ISBN13 9788954688031
ISBN10 895468803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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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요리 좀 가르쳐줘요. 일단 이 미역국.”
“인터넷 찾아봐.”
“아니, 엄마. 그렇게 해결될 문제였으면……” 미지는 열다섯 살 때 어버이날 기념으로 끓였던 김치찌개를 떠올렸다. 인터넷에 나온 조리법대로 만들었으나 국물은 김치를 헹군 물처럼 밍밍했고 푹 끓인 김치도 왠지 뻣뻣해서 가위로도 쉽게 자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시작이 반이라며 칭찬해놓고는 정작 국그릇의 반도 채 비우지 못했다. 국자는 아예 입도 대지 않았다.
“엄마는 어떻게 하는데요?”
“물 끓으면 미역 넣고 푹 끓여.”
“정말 쉽다. 된장찌개는 된장 넣고 끓이고 파전은 반죽에 파 넣고 부치면 되겠네.”
--- p.15

영웅은 국가에서 고르는 도구였다. 기능력직 공무원으로 뽑힌들 시시콜콜 반발하거나 친정부적이지 않으면 도구로 적합하지 않았다. 국가는 위험 요소를 철저하게 배제했다. 국자는 텔레비전에 영웅이라며 몇몇 기능력직 공무원들이 나올 때마다 채널을 돌렸다. 그들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의심 하나 없이 환한 그들의 미소가 불편했다. 국자는 반장의 확신이 깨지지 않길 바랐다. 확신은 소망에서 비롯하고, 소망은 아무리 강력해도 언제든 허상처럼 흩어질 수 있었다. 그러니 어떤 확신도 근거가 부족한 믿음에 불과했다. 그리고 확신은 무력해지는 순간 모든 걸 망쳐버렸다.
--- p.64

“너는 여기 수감된 사람 중 착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 것 같니?”
“음.” 소년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면서 헤아렸다. 아직 성한 손가락이 열 개나 남아 있었다. “열 명이요?”
“그렇다면 누가 착한 사람만 내보내주고, 나머지는 다 나쁘니 여기서 죽어야 한다고 말하면 어떻겠니, 그건 옳을까?”
도마 신부가 소년을 바라보았다.
“모르겠어요.”
“어떤 게?”
“열 명보다 많을지도 몰라요.” 소년이 웅얼거리듯 대답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열 명의 갑절일 거예요.”
--- pp.69~70

이내 수일이 다시 코트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뭔가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손가락만한 크기의 상자였다.
“아는 사람에게 받았는데, 괜찮으시다면.”
“이걸 받았다고요?” 국자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아무리 치장에 관심이 없더라도 립스틱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아챌 수 있었다. 수일이 준 립스틱은 글로리아에게 받은 립스틱보다 훨씬 옅은 분홍색이라 덜 부담스러웠다. 어쩐지 장난기가 돌아 립스틱을 슬쩍 수일에게 내밀며 말했다. “어울리실 것 같기는 한데.”
“제가 생각해도 변명치고는 좀 형편없었습니다.”
--- pp.158~159

“나는 그렇다고 쳐. 그래도 아빠까지 속일 필요는 없잖아요.”
“다른 방법은 없었어. 아니, 몰랐지.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니.” 국자의 목소리에서는 뉘우치거나 후회하는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담담했다. “너야 좀더 쉬울지도 모르지. 더 많이 공부했고, 세상도 좀 나아졌으니까.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했지. 꼭 그래라, 난 네가 그랬으면 좋겠어.”
--- p.278

온전한 평화란 불가능했다. 반동이 사라져도 금세 그들을 대체할 또다른 적이 생길 테니까. 적은 늘 새로워지지만 싸움은 구태의연할 것이다. 그게 이 나라가 가르치는 평화의 방식이었다. 모두가 은연중에 알고 있지만,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 사실이기도 했다. 알아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니까. 사람들은 불안정한 변화보다 확실한 고착이 낫다고 믿었다. 그렇게 믿도록 길들여졌다. 국자는 수일의 손을 잡았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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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정신없이 읽었다. 마지막까지 신나게 읽고 책을 탁 덮자마자 작가에게 다음 권을 내놓으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이 책, 그러니까 이국자의 인생에는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으며, 우정도 있고 의지도 있고 그런 걸 다 망치게 마련인 역사의 곡절과 권위주의적 국가 권력도 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이국자의 음식처럼 푸짐하고 맛깔나며 유혹적이다. 기가 막힌 음식을 한끼 든든하게 차려먹은 것처럼 뱃속 뿌리에서 뿌듯하고 뜨끈한 힘이 느껴진다. 어쩌면 이 소설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이국자의 밥상을 얻어먹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렇게 소설에 대한 좋은 말을 줄줄 늘어놓고 있는 것인지도. 하지만 초능력까지 발휘하면서 그런 요청을 하기에 이국자는 너무 곧고 무심하고 멋지다. 독자 여러분도 얼른 이국자와 그의 친구들을 만나보아야 한다. 지금도 뭔가를 무치고 볶고 끓이고 있을 이국자씨의 평안을 빌며.
- 김겨울 (작가)
어쩌면 정은우는 맛있는 이야기로 읽는 이의 마음을 훔치는 능력자가 아닐까. 솜씨 좋은 어머니로부터 독립하고 싶은 딸의 새콤한 분투기이고, 국가에 보탬이 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차별한 시대에 대한 씁쓸한 회고담이며, 화끈하고 매콤하게 제 갈 길 가는 주인공의 여성서사이되, 은근히 달달한 로맨스가 빠지지 않는 한편, 분방하면서도 촘촘한 상상력으로 부려놓은 세계관이 짭짤하다. 오미(五味)를 조화롭게 갖춘 한 상의 판타지. 간이나 볼까 하고 가볍게 든 숟가락이 어느덧 바빠질 것이다.
- 박서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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