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도련님이 춘향을 애틋하게 보낸 후에 책방으로 돌아와서도 만사에 뜻이 없고 다만 생각이 춘향이라. 말소리 귀에 쟁쟁, 고운 태도 눈에 삼삼, 해 지기를 기다린다.
… 《주역》을 읽으니,
“원은 형코 정코 춘향이 코, 딱 댄 코, 좋고 하니라. 그 글도 못 읽겠다.”
《맹자》를 읽으니,
“맹자께서 양혜왕을 뵈오니 왕께서 말하기를, 천 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오셨으니 춘향이 보시러 오셨나이까?”
《십팔사략》을 읽는데,
“태고에 천황씨가 쑥떡으로 왕이 되어 섭제에서 나라를 일으키니 백성들이 저절로 교화되었으며 형제 열두 명이 모두 일만 팔천 살까지 살았다.”
방자가 여쭈되,
“여보 도련님, 천황씨가 목덕木德으로 왕이 되었단 말은 들었으되 쑥떡으로 왕이 되었단 말은 금시초문이오.”---「대학의 도는 춘향이에게 있다」중에서
“춘향아, 우리 말놀음이나 좀 하여 보자.”
“애고, 참 우스워라. 말놀음이 무엇이오?”
말놀음 많이 해 본 것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말놀음 천하 쉽다.
너와 나와 벗은 김에 너는 온 방바닥을 기어 다녀라.
나는 네 궁둥이에 딱 붙어서 네 허리를 잔뜩 끼고
볼기짝을 탁 치면서 이리 하거든 호홍거리며 물러서며 뛰어라.
알심 있게 야무지게 뛰려면
탈 승乘 자 노래가 있어야 하느니라.
타고 놀자, 타고 놀자.
… 각 읍 수령은 독교 타고,
남원 부사는 별연 타고,
해 지는 강에서 낚시하던 이들은 일엽편주一葉片舟 타고,
나는 탈 것 없으니
오늘 밤 야삼경에 춘향 배를 넌짓 타고
홑이불로 돛을 달아 내 기계로 노를 저어
오목섬에 들어가되
순풍에 음양수를 시름없이 건너간다.
말을 삼아 타듯이 마부는 내가 되어
네 고삐를 넌지시 잡아
부산하게 성큼성큼 걷듯이,
명마가 뛰듯이 뛰어라.”
온갖 장난을 다 하고 보니 이런 장관이 또 있으랴. 이팔청춘 둘이 만나 미친 마음 세월 가는 줄 모르는가 보더라.---「어화둥둥 내 사랑아」중에서
“그게 될 말이냐. 네 말을 사또께는 꺼내지도 못하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는데 꾸중이 대단하시다. 양반의 자식이 부친 따라 내려왔다가 첩을 만들어 데려간다면 내 앞날이 막히고 조정에서 벼슬도 못한다더구나. 할 수 없이 이별이 될 수밖에 없다.”
춘향이 이 말을 듣더니 갑자기 안색이 변하며 머리를 흔들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눈을 가늘게 치켜뜨며 눈썹이 꼿꼿해지고 코가 발심발심, 이는 뽀도독뽀도독, 온몸을 수숫잎 떨듯, 매가 꿩을 꿰찬 듯 주저앉는다.
“허허, 이게 웬 말이오?”
왈칵 뛰어 달려들어 치맛자락을 좌르륵 찢어버리며 머리도 와드득 쥐어뜯어 싹싹 비벼 도련님 앞에다 던지면서, “무엇이 어쩌고 어째요? 이것들도 다 쓸데없다.”
작은 거울, 큰 거울, 산호 비녀 다 두루 방문 밖에 탕탕 내던져 문밖에 부딪치며 땅을 치고 발을 구르더니 주저앉아 탄식하며 우는구나.---「뜻밖의 이별」중에서
옥 같은 춘향 몸에 솟는 것은 유혈이요, 흐르느니 눈물이라. 피눈물 한데 흘러 무릉도원의 붉은 시냇물이 되었구나.
춘향이 점점 악쓰며 하는 말이,
“이렇게 하지 말고 소녀를 아예 능지처참하여 아주 박살 내 죽여 주오. 죽은 후에 원망 품은 새가 되어 두견새와 함께 울며 달 밝은 밤 우리 이 도련님 잠이라도 깨게 하여이다.”
춘향이 말 못하고 기절하니, 엎드렸던 형방 통인 고개 들어 눈물 씻고 매질하던 저 사령도 눈물 씻고 돌아선다.
“사람의 자식으로 참 못할 일이로다.”
좌우에 구경하던 사람들과 거행하던 관리들도 눈물 씻고 돌아서며,
“춘향이 매 맞는 모습, 사람 자식은 못 보겠다. 모질도다 모질도다, 춘향 정절이 모질도다. 하늘이 낸 열녀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서로 눈물 흘리며 돌아서는데 사또인들 좋겠는가.---「수청을 들어라」중에서
“암행어사 출도야!”
외치는 소리에 강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로 눕는 듯. 초목금수라도 떨지 않겠느냐.
… 등나무 채찍으로 휘닥딱,
“애고, 머리 터졌네.”
좌수와 별감이 넋을 잃고, 이방, 호방이 혼을 잃고, 삼색나졸들이 분주하구나.
모든 수령 도망할 때의 거동 보소. 도장 들어 있는 궤짝 잃고 한과 들고, 병사 출정부 잃고 송편 들고, 탕건 잃고 용수 쓰고, 갓 잃고 쟁반 쓰는구나. 칼집 쥐고 오줌 누기. 부서지는 건 거문고요, 깨지는 건 북 장고라.
---「암행어사 출도야!」중에서
---「암행어사 출도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