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된다.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 없을 때가 있듯이, 살고자 노력해도 그렇게 되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자신을 대하의 한 방울이라고 상상하게 되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굳이 자살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 pp.24-25
그러나 내 솔직한 생각을 고백하자면 이 세상에는 ‘진실’도 있지만 ‘가짜’도 있다. 그게 사실일 것이다. 살아갈 의미도 있지만 허무함도 있다. 그러나 착한 사람도 있지만 나쁜 사람도 있다는 식으로 선과 악을 대립시켜 인간을 나누고 싶진 않다. 사람은 자기가 처한 상황이나 입장, 그때 타자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어떤 경우에는 선의를, 어떤 경우에는 악의를 노출시키는 불확실하고 아슬아슬한 존재인 게 아닐까. 세상이라는 것 역시 그렇게 끊임없이 흔들리며 흘러가는 것이다. --- pp.51-52
“내 두 눈빛을 보라, 아무 말 하지 않으면 근심이 없어 보일 것이다.”
이 ‘말하지 않으면’이라는 부분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우리는 뭔가 일이 있으면 요란하게 그것을 타인에게 호소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불평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진짜 뼛속까지 스며들 만큼의 슬픔이나 괴로운 기억을 떠안고 있는 사람은 그런 말을 가볍게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이 여러모로 유도해가며 질문해도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정도로 대답할 뿐, 별로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런 조용한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는 듯한 사람의 태도야말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말하지 않으면’이라는 부분의 크기와 깊이를 느끼게 하는 게 아닐까요. --- p.193
“자네에게도 언젠가 그런 진짜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는 날,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날이 오겠지. 유이엔, 그때는 그 외로움에서 도망치려고 한다든가, 그 외로움을 속이려고 해서는 안 되네.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고, 그 외로움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그런 자신의 마음에 충실히 따르는 게 좋아. 왜냐하면 진짜 외로움은 운명이 자네를 키우려고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지.” --- p.206
본래 인간은 풍부한 정념과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 크게 기뻐하기 위해서는 크게 슬퍼해야 합니다. 깊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진정으로 웃을 수 없는 게 아닐까요. 희망은 절망과 서로 등을 맞대고 있어, 깊이 절망하는 자만이 진정한 희망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밝음과 어두움은 상대적인 것으로, 어느 한쪽만을 보는 사고방식은 반드시 정체에 빠지게 됩니다. --- p.212
‘관용’이란 허락하는 것, 결점을 인정하는 것이며, 격려가 아닌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즉, 분발하지 않아도 돼, 분발할 수 없는 사람에게 분발하라고 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심각하게 우울해하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 pp.219-220
일반적으로 기쁨은 인간의 생명력을 높이지만, 슬픔은 반대로 이를 저하시킨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깊이 슬퍼한다는 것은 감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명력을 활성화시키고 면역력을 높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고민하거나 괴로운 생각을 하는 것,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것 역시 인간의 몸에 중요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우울함이나 외로움 속에도 소중한 것이 있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배려가 있습니다.
--- 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