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하다는 걸 아는 것과 경험하는 건 차원이 달랐다. 지금까진 할 수 없어서 안 했다면 이제는 해봐도 할 수 없는 거였다. 훨씬 서글프고 비참했다. 실격한 다음 날 참담한 마음으로 미국 출장을 떠났고 한국에 돌아왔을 땐 12월 중순이 지나 있었다. 내가 그럼 그렇지, 까짓것 S에게 25만 원 주지 뭐, 라고 자위하며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되려 착잡했다. 지금까지는 운전이 내 인생의 가장 큰 두려움이었는데, 그보다 ‘나는 해도 안 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종지부를 찍는 괴로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걸 깨달은 순간, 겨자씨만 한 용기를 붙들고 학원으로 가서 운전 연수를 추가 신청하고 재시험을 등록했다.
---「서른 살의 불가능: 운전할 수 있을까?」중에서
‘Summer’를 잘 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것도 아닌데 야근한 날에도 꼬박꼬박 학원에 들러 연습했다. 어느 정도 원곡을 칠 수 있게 되었으니 사실상 올해의 ‘할 수 있어 프로젝트’를 완수한 거나 다름없었지만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연주하는 ‘Summer’의 최초이자 최고의 청중은 바로 나니까. 나에게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서른한 살의 불가능: 좋아하는 곡 하나쯤은」중에서
가장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만 모아놓은 생초보반에 처음 배정되었을 땐, 왠지 열등반에 들어가는 기분이라 속상했다. 그런데 하루하루 출석할수록 우리 반에 들어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들 어지간히 못하니까 서로서로 창피하지 않았고, 중급반이었다면 ‘저는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갑니다’를 영어로 말한들 칭찬받겠냐마는, 우리는 툭하면 받았다. 엉터리로 발음해도 잘했어요, 문법을 틀리게 말해도 잘했어요, 칭찬받았다. Work와 Walk 발음이 헷갈린다고 물어본 날에는 아주 좋은 질문을 했다며 또 칭찬받았다. 우리의 대화는 최저 사양 컴퓨터처럼 버벅거림이 심했지만, 누구라도 문장만 끝내면 “영어 잘하시네요~” 하며 서로를 치켜세웠다. 영어 때문에 혼나만 봤지 잘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던 나는 얼떨떨했다. 틀려도, 못해도, 발음이 이상해도 창피한 일이 아니구나 느끼는 순간, 서른두 살이라는 나이와 광고회사 차장이라는 직급을 벗어버리고 영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다워졌다.
---「서른두 살의 불가능: 영어는 아무래도 힘들겠다」중에서
수영장에 옅게 밴 염소 냄새를 사랑한다. 온몸에 닿는 물의 촉감을 사랑한다. 바닥에 일렁이는 물의 무늬를 사랑한다. 차가운 물과 나의 온기가 섞여 따듯하게 바뀌는 찰나를 사랑한다. 애쓰지 않아도 조화롭게 움직이는 숙련된 동작을 사랑한다. 손으로 밀어낸 물살이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을 사랑한다. 모든 상념이 사라지고 무념무상이 되는 지점을 사랑한다. 수영을 끝내고 하는 샤워를 사랑한다. 밖으로 막 나왔을 때의 공기를 사랑한다. 살갗에 옅게 풍기는 염소 냄새를 사랑한다. 수영을, 사랑한다.
---「서른세 살의 불가능: 오늘도 음파음파」중에서
그래서 나는 나에게 고마웠다. 그동안 성실하게 일해온 나에게 고맙고, 그 돈을 아끼지 않고 나에게 써줘서 고맙고, 하와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 그때의 고마운 마음이 지금까지도 나를 이끌고 있다.
---「서른네 살의 불가능: 하와이에서 살아요」중에서
이대로 소진되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을 방치하고 싶지 않다, 지난날보다 괜찮아지고 싶다, 몰라서 저지르는 결례를 줄이고 싶다,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싶다, 성숙해지고 싶다, 한 치 앞만 보며 전전긍긍하고 싶지 않다, 생각을 넓히고 싶다, 멀리 보는 시야를 갖고 싶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그런 마음들이 배움을 갈망하게 만든다. 독서를 하고, 일 잘하는 선배들의 스타일을 따라 하고, 같은 말도 기분 좋게 하는 사람들의 말투를 배우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유심히 듣고, 생각하고, 헤아려보고, 퇴근 후 공부를 하게 한다. 하루하루 차근차근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
---「서른다섯 살의 불가능: 안녕하세요, 18학번입니다」중에서
공부할 때마다 느낀다. 한국어는 너무 어렵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지금 하고 있는 광고 일이 쉽고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음 편한 직업을 탐색하려고 시작했는데, 한국어 교원도 마음 편한 직업은 아니겠구나 싶다.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모든 직업에는 각자만의 고충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카피라이터는 카피라이터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변호사는 변호사대로,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대로, 프리랜서는 프리랜서대로 어렵다. “세상에 멋진 일이란 없다, 그 일을 멋지게 해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는 어느 카피처럼, 아마도 스트레스 없는 직업은 없을 것이다. 스트레스 없이 일하는 사람이 있을 뿐.
---「서른여섯 살의 불가능: 한국어를 배우는 한국인」중에서
욕심이 올라오려고 하면 처음 마음가짐을 떠올렸다. 그저 쓰고 싶어서 쓰고, 쓰면서 느꼈던 즐거운 감각에 집중했다. 잘 쓰려는 욕구를 버리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다시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쓴 글이 별로라서 좌절하는 날에도 일단 쓰고 봤다. 며칠 동안 붙들고 완성한 문단을 통째로 버리기도 하고, 한 문장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서 초조한 날에도 썼다. 잘 써지는 날이든 그렇지 않은 날이든 노트북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면 엉킨 실타래가 툭, 하고 풀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막혔던 문장이 단숨에 뚫리고 새 문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순간, 그 문장이 마음에 드는 순간, 글쓰기가 즐거워지는 순간, 그 순간은 행운처럼 찾아오는 게 아니라 뭐라도 쓰고 있을 때 찾아왔다.
---「서른일곱 살의 불가능: 아무튼, 글쓰기」중에서
야근을 매일 달고 살았던 과거에는 서울이 답답하기만 했다. 너무 빠르고 너무 바쁘고 너무 고된 이 도시에서는 쉬어도 쉬는 느낌이 아니었다. 여기만 아니면 어디라도 좋다고, 친구들과 탈서울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서울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한 발 한 발 걸으며 마주한 서울은 빠르지도 바쁘지도 고되지도 않고, 도리어 바빠지려는 나를 누그러트리고 천천히 가도 된다고 다독인다. 아마도 달라진 건 서울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르겠다.
---「서른여덟 살의 불가능: 157킬로미터의 건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