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은 기술자들이고, 그들 사회에서 노예 개미들을 소유하기도 하며, 목축업자들이고, 농부들이며, 감독자가 없는 건축업자들이기도 하다. 개미들은 각자 그 능력에 따라 자기 일을 하되 상호 조화롭게 일을 하며, 위험에 처했을 때는 절대 굴하지 않고 끝까지 헤쳐 나가며, 미래를 대비하여 양식을 마련한다. 특히 병정개미들은 깊은 강을 건널 때면 공처럼 함께 뭉쳐서 급류 속에서 회전하며 건너가기도 한다(피터 S. 럭크만).
동물과 식물을 통해 배우는 교훈들
『그러나 이제 짐승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너를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너에게 말해 주리라. 아니면 땅에게 고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게 가르쳐 주리라. 또 바다의 고기들도 네게 선포하리라. 이것들 중 그 어느 것이 주의 손이 이 일을 이루신 줄 알지 못하겠느냐? 모든 생물의 혼과 모든 인류의 호흡이 그의 손 안에 있느니라』(욥 12:7-10).
하나님께서 만드신 지구상의 동물들과 식물들은 인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첫째, 아무리 인간이라 해도 영이 거듭나지 않고 혼이 구원받지 못한 죄인은 짐승보다 더 월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전 3:19).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영이 서로 다르다는 것”과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없다. 인간들 역시 짐승들처럼 “자기 보존,” “자기 번식,” “자기 만족”이라는 “세 가지 본능”에 의해 이끌리고 좌우되기 때문이다. 결국 그러한 본능에 충실하며 살다가 동물처럼 죽는 것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그들이 죽게 되면, 둘 다 호흡이 끊어지고, 둘 다 심장 기능이 멈추며, 둘 다 땅에 묻히고, 둘 다 흙 속에서 썩어 버린다(전 3:20). 『사람이 존귀에 처해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들과 같도다』(시 49:20).
둘째, 성경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자주 “짐승들”에 빗대어 설명해 준다. “신실한 사역자들”은 “소”나 “황소”에 묘사하고(고전 9:9,10), “거짓 선지자들”은 “이리들”(마 7:15), “뱀들” 및 “독사들”(마 23:33), “개들”(벧후 2:1,22)에 비유하며, “거짓 교사들”은 “돼지들”(벧후 2:1,22)로 빗대어 언급하고, “구원받지 않은 남성과 여성”은 각각 “개와 돼지”(벧후 2:22)로 설명한다. 또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들나귀” 같다고 말씀하며(욥 11:12), “구원받은 성도”는 “양”에 빗대어 설명한다(요 10:14,27,28, 벧전 5:2,3).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다 지파의 사자”이시며, 이를 흉내 내는 사탄은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는 울부짖는 사자”로 묘사된다.
한편 “새들”은 “사람들”이나 “영들”을 상징하는데(마 6:26), 주를 앙망하는 “기도의 용사들”은 “독수리들”로 묘사된다(사 40:31). “비둘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솔 5:12)을 나타내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의 모형”이 되는 반면, “까마귀”는 불결한 짐승으로서 “더러운 영”을 상징한다(cf. 계 18:2). “바다의 물고기”는 “사람”을 나타내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사람들을 낚는 어부”로 부르실 때 직업이 “물고기 잡는 어부”인 제자들을 가장 먼저 부르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가 하면 “나무들” 역시 “사람들”을 상징한다. “악인”은 “푸른 월계수”에 비유되고(시 37:35), “의인”은 “번성하는 종려나무”로 상징되며(시 92:12), 인간들은 모두 잎사귀처럼 시든다(사 64:6).
어떤 나무는 열매를 맺고, 어떤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도 있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는데, 사람들을 판단하는 기준도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내는 열매들이어야 한다(마 7:16-20).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상에 친히 만드신 창조물들을 통해 인간들에게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계시하시고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신다. 『세상의 창조 때부터 그분에 속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보여졌고 심지어는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까지도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알려졌으므로 그들이 변명하지 못하느니라』(롬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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