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서자 약 마흔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나를 의자로 안내하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명승원 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명확히 승부수를 던져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이라고 했죠?"
그는 내 이력서 제목을 먼저 꺼냈다. 이어 제목에 이끌려 이력서를 열었고 전화까지 걸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피가 달라요. 별별 꼴들이 다 있죠. 때문에 얼마 못가서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도 할 수 있겠어요?"
그의 말에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저도 피가 다른 사람입니다."
대표님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래 보이는군요. 좋습니다. 설 지나고 출근하는 걸로 하죠!"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 나는 또래 아이들이 즐겨보는 만화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대신 나는 소방차, 김건모, 신승훈 등이 나오는 가요톱텐을 즐겨보는 꼬맹이었다.
---「피가 다른 사람들」중에서
2013년 문희준이라는 아티스트와의 만남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문희준이란 아티스트는 공연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진지했고, 본인만의 공연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솔로 데뷔 후에는 음악도 한 곡, 한 곡 직접 만들어서 누구보다 본인의 음악을 잘 알고 있는 아티스트였다. 팬들에 대한 애정도 또한 높아서 어떤 연출을 하더라고 관객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연출력 있는 아티스트였다. 수천 번 무대에 올라봐서 그런지 공연 흐름의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연출을 할 수 있고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는데, 난 이때 아티스트 문희준에게 배우고 느꼈던 부분을 연출에 지금도 활용한다(문희준이라는 아티스트는 내가 콘서트 연출을 함에 있어 굉장한 영향력을 끼친 아티스트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공연을 기획한 기획자로서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했고, 아티스트 또한 그런 모습을 보고 예뻐해주었다. 무엇보다 내 말에 귀 기울여주었다. 우리는 연습이 끝날 때마다 식사를 함께 하면서 음악과 공연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고 일로 만난 사이지만 서로 믿고 신뢰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나를 믿어준 가수가 건넨 한마디」중에서
처음에 준비과정은 여느 공연과 다름이 없었다. 내가 기획안을 쓰고, 회사에 가서 회의를 진행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기획 회의 때부터 아티스트가 직접 회의에 참여했다는 점인데, 첫 번째 회의부터 정은지의 콘서트에 대한 관심도가 느껴졌다. 원래 내가 생각한 콘서트의 제목은 '은지 공방'이었다. 공방이라는 뜻은 작업하는 소소한 공간이라는 뜻과 '공개방송'의 줄임말로 쓰이는 단어의 중의적 표현으로 추천했다. 그 공연에 라디오 콘셉트를 넣어 공개방송 느낌을 내고자 하는 의도였다. 나는 자신 있게 내가 생각한 콘셉트를 브리핑했고, 브리핑에 마지막쯤 한마디 던졌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제목은 '은지 공방'입니다."
"……."(고요한 침묵. 한…… 20초?)
"아, 아니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어색한 웃음)
그때 정은지가 말했다.
"감독님, 다락방 어떠세요? 세트 느낌도 다락방처럼 꾸며 놓고 팬들과 소소하게 소통도 하고 싶고, 많을 다, 즐거울 락, 즐거움이 넘치는 공간이라는 뜻도 있어요."
모든 스태프가 침묵을 깼다.
"너무 좋은데요." "이걸로 가시죠." "좋다, 좋다."
그렇게 정은지 첫 단독 콘서트의 이름은 '정은지 소극장 콘서트 〈다락방〉'으로 결정되었다. 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느끼는 바가 있었다. 이미 아티스트의 머릿속에는 많은 부분이 정리되어 있었고, 내 의견을 들어주기 위해서 한 배려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 생각했다. 그녀가 생각한 것들을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그리고 그때부터 이 공연에 관해 정말 많은 소통을 했다. 연출도 사람인지라 많이 연락하고 많이 대화하고 많이 소통한 아티스트의 공연에 더 마음이 가게 되어있다. 어떤 아이디어가 생각나는 대로 나도 의견을 제시했고, 아티스트도 내 의견을 수렴해 본인의 의견을 얘기해 주었다.
---「깊은 슬럼프에서 날 꺼내준 콘서트_정은지 소극장 콘서트 〈다락방〉」중에서
나는 운전을 하는 도중 도로 옆 한쪽에 차를 세우게 됐다. 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불안했다. 모든 일에 대한 걱정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너무 불안해서 도로에 차를 잠시 정차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평소에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곤 주위에 있는 병원을 검색해서 찾았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병원에서 종합 검사를 받았다. 그때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의사 선생님과 웃으며 대화를 했다. 심각한 진단이 내려질까 걱정이 되어 마치 잠시 아주 작은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연기를 한 것이다. 의사 선생님이 진단한 내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심박 검사 수치를 보시더니, 지금 현재 상황이 안 좋은 쪽으로 상위 1% 정도이다. 바로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는 2019년 1월 처음으로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를 마주하다_feat. 인생의 가장 큰 위기」중에서
축구선수나 축구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단골로 등장하는 멘트가 있다. "축구는 열한 명이 하는 것."이라는 멘트다. 어떤 팀에 한두 명의 스타플레이어가 있더라도 팀의 조직력으로 단합하는 팀에게는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을 공연에 빗대어 보자. 가수가 실력이 너무 좋거나 연출가가 실력이 매우 뛰어나도 주변에서 그 사람의 실력을 서포트해주지 못하는 상황이면 그 사람이 빛나질 못한다. 바로 그 서포트의 역할을 스태프들이 해주는 것이다. 공연을 하면 할수록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 좋은 스태프들 덕분에 지금 이렇게 콘서트 연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우리 스태프들도 완벽하지 않고 노력해야 하지만, 진심으로 공연을 대하는 사람들인 것은 분명하다.
---「연출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_POWER OF STAFF」중에서
'너는 가수다.' 아티스트를 만날 때면 속으로 이런 주문 아닌 주문을 외우면서 아티스트를 만난다. 이 주문(?)의 뜻은 아티스트가 어떤 말을 해도 내가 그 처지가 되어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것이다. 속뜻은 '그래요, 당신은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나에게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고,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라는 뜻이다.
---「너는 가수다에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