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들은 세상의 도를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세파에 휩쓸려 온 백성을 사교邪敎의 후예로 끌어들이고 있으며, 또한 우리 나라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임금·어버이·스승을 없애고 있으니, 이〔바로잡는〕 일은 정말 그만둘 수 없다. 온 세상의 배웠다고 하는 자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감히 나서서 바로잡지 못하고 있으니 사교의 힘이 이토록 크단 말인가! 햇빛과 달빛과 별빛이 어두워지고, 오륜五倫이 끊기고, 이제 앞으로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는 지경에 떨어지고 말리라! 이 지경인데도 〔바로잡는 일을〕 그만둘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을 그만둔다면 세상에 그만두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나 광선光先이 부득이하여 나선 까닭이다. 자여子輿가 한 말과 비교해볼 때, 마음은 더욱 아프고 상황은 더욱 급박하니 이해를 따질 겨를이 어디 있을 것이며, 호랑이와 싸우고 강을 건너는 것을 어찌 헛되다 하겠는가! 이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을 ‘부득이不得已’라고 하였다.
--- pp. 40~41
예수가 누구인가 물으니 그가 바로 천주라고 하였다. 천주는 천지 만물을 주재하는 분인데 어찌하여 사람 세상에 내려와 태어났는가 하고 물으니, “천주께서 아담이 죄를 지어 그 화禍가 후손에게 대대로 이어지는 것을 불쌍히 여겨 몸소 세상에 강생하여 사람들을 구원하고 죄를 대속하였다. 지난 5천 년 동안 때로는 천사를 보내어 알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예언자의 입을 빌려 천주가 강생하여 세상에 있을 동안의 사적事蹟을 미리 전하게 하였다. 그 단서를 미리 글로 쓰게도 하였고 국사國史에 기록하게도 하였다. 강생할 때가 이르자 천사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알려서 천주를 잉태하게 하였는데 마리아는 흔쾌히 허락하고 드디어 아들을 낳아 이름을 예수라 하였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천주의 어머니가 되시고도 동정녀의 몸은 그대로 훼손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예수가 어느 임금 때에, 어느 시기에 태어났는가 하고 물으니 한나라 애제哀帝(재위 B.C. 7∼B.C. 1) 원수元壽 2년 경신년(B.C. 1)에 태어났다고 하였다. 아, 황당무계하기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도다! 무릇 하늘은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엉켜서 이루어진 것이지 만들어낸 자가 있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공자께서는 “하늘이 무엇을 말하겠는가? 사계절은 운행되고 온갖 사물은 자라난다”라고 하셨다. 계절이 운행하고 온갖 사물이 생장하는 것은 음과 양 두 기운이 수행하는 훌륭한 기능이다.
하늘이 천주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하늘 또한 전혀 지각이 없는 사물일 것인데 어찌 만물을 생성시킬 수 있단 말인가? 천주가 비록 신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음과 양, 두 기운 중의 하나일 뿐이다. 두 기운 중의 한 기운을 보고 만물의 두 기운을 만들고 낳을 수 있다고 하다니, 이치가 통하는 말인가?
--- pp.73~74
천지창조
광선이 “무릇 하늘은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엉켜서 이루어진 것이지 만들어낸 자가 있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하늘이 두 기운이 엉켜서 이루어졌다고 한 것은, 만물의 근본을 모르기 때문에 한 말이다. 이치로써 따져보건대, 세상 만물이 기질을 부여받아 생성되는 데에는 네 가지 단서〔四端〕가 있으니, 질質·모模·조造·위爲가 그것이다. 이 중 어느 하나가 없어도 만물은 생성되지 못한다.
만물의 탄생은 다시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생겨나는 것〔生成〕과 만들어지는 것〔造成〕이 그것으로, 모두 이 네 개의 단서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류는 생겨나는 것에 속한다. 형체는 질質이고, 영혼은 모模이며, 부모는 조造이고, 진정한 복은 위爲이다. 만들어지는 사물은 구워내는 도자기 같은 것이다. 모래와 흙은 질質이고, 틀은 모模이며, 도자기공은 창조자〔造〕이고, 그 쓰임새는 위爲이다. 만물이 모두 이러하다.
그러니 하늘이 있기에 앞서 설사 두 기운이 있었다 하더라도, 결코 스스로 엉켜서 하늘을 이룰 수는 없으며, 반드시 그것을 만든 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집을 지으려면 먼저 나무와 돌 등의 자재가 있어야 하는데, 이때 반드시 목수의 도끼 같은 연장이 있어야만 집을 지을 수 있지, 나무와 돌 스스로가 그대로 집이 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 영혼과 육체가 어우러져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태어나게 하고 생명을 갖게 하는 자가 있어야만 하지, 영혼과 몸뚱이가 스스로 태어나 생명을 가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저 두 기운이라는 것은 영혼도 없는 사물인데, 무슨 수로 서로 엉켜 하늘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하늘은 단연코 창조되어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 pp.240~241
양광선이 역법의 원리에 대해 터럭만큼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대지가 둥글지 않다고 한 말 한마디에서 모두 드러난다. 대지는 틀림없이 둥글다. 여러 가지의견이 있더라도 그것은 모두 억설일 뿐이다. 여기에서 세 가지로 요약해 말하겠다.
첫째, 월식의 모양새이다. 월식은 지구가 해와 달 사이에 있어 해가 달을 비추지 못하는 까닭에 생긴다. 그래서 지구가 자기 그림자를 달에 던진 것을 보면 그 또한 둥글다. 이에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째, 대지에는 동쪽과 서쪽이 있어서 월식이 드는 시각이 지역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순천부에서 월식이 자시子時에 나타났다면 달은 하늘의 한가운데 있으며 지평선 위의 70도에 있을 것이다. 순천부의 동쪽에 있는 곳에서 월식이 축시丑時와 인시寅時 사이에 나타날 때, 달은 하늘 중천의 서쪽 30도나 60도에 있으며 지평선 위의 40도나 20도에 있다. 순천부의 서쪽에 있는 곳에서 월식이 술시와 해시 사이에 나타났을 경우에는 달이 하늘 중천의 동쪽에 떨어져 30도나 60도에 있으며 지평선 위의 40도나 20도에 있다. 만약 두 곳이 90도로 떨어져 있다면 동쪽에서는 자시에 월식이 나타나고 달은 하늘 한가운데 있을 것이며, 서쪽에서는 월식이 묘시卯時에 나타나고 달은 지평선 위로 솟아오르고 있을 것이다. 만일 대지가 동쪽에서 서쪽까지 네모나고 원형이 아니라면 지면 위에 사는 사람들은 동쪽에 살거나 서쪽에 살거나를 말할 것도 없이 모두 자시에 월식을 볼 것이며, 달이 하늘의 한가운데 있거나 지평선 위 70도에 있는 것도 어느 지방에서 보나 모두 같아서 순천부에서 보이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보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검증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셋째, 사람들은 사는 곳이 북쪽에 가까울수록 북극이 지평선에서 더욱 높은 고도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사람들은 사는 곳이 남쪽에 가까울수록 북극이 지평선에서 더욱 낮은 고도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광동廣東에서 북극이 지평선 위의 약 24도에 있는 것을 보았다면, 강서江西에서는 28도에 있는 것을 볼 것이며, 강남江南에서는 32도에 있는 것을 볼 것이고, 산동山東에서는 36도에 있는 것을 볼 것이며, 순천부에서는 40도에 있는 것을 볼 것이다. 만약 지구가 네모나고 원형이 아니라면 천하의 각 성에서 북극을 보는 것은 모두가 〔지평선 위〕 40도로 순천부에서 보는 것과 다름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로서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지구가 원형이라는 것을 검증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대지가 네모나고 원형이 아니라면 천하 각 성에서의 지평선은 모두 한가지이고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각 지방의 지평선 위에 보이는 별들에 어찌하여 높고 낮은 구별이 있는가?
--- pp.415~420
이 책은 흡현 출신의 벼슬 없는 선비 양광선의 저술이다. 양공은 강희 초년(1662)에 북경에 가 서양인들이 사교인 천주교로 중국에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현혹시키니 반드시 큰 재난이 될 것이라고 고발하였는데, 2백 년이나 앞서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다. 진실로 그는 우리 왕조(청나라)에서 식견과 담력을 가진 최초의 인물이었고, 그의 책 역시 명교名敎에 관련되고, 성학聖學에 공을 세우며, 민생을 구제한 최초의 책이었다. 그때에 사악한 세력이 올바른 세력을 당해내지 못하니, 묻고 심판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밝혀져서 탕약망 등은 파직되었고, 감관으로서 천주교에 붙어먹은 다섯 사람은 죽임을 당했으며, 중국 사람들이 천주교를 익히는 것이 금지되었다. 다시 하늘의 해를 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재물을 가지고 신통한 재간을 부려 자리를 틀고 들어앉아 떠나지 않았다.
〔서양인들이〕 한인漢人 가운데 힘 있는 자들에게 두루 뇌물을 주어 잠시 양공에게 흠천감 감정의 벼슬을 주게 한 다음, 틈을 노리다가 그를 죽을 자리로 몰아넣으려 한 것이 틀림없었다. 양공은 그들의 계략을 환히 꿰뚫어 보고 다섯 번이나 소장을 올려 사양하였고, 또 여섯 가지 두려운 일과 두 가지 부끄러운 일을 적어 소장을 갖춰 올렸는데, 그 내용과 표현이 명백하고도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예부에서 의논하였으나 몰래 사주를 받았던 까닭에 끝내 〔사직의 요청이〕 허락을 얻지 못하였다. 부득이 그 직책에 나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윤달을 두는 문제에서 착오가 있어 대신들 사이에 대벽죄로 다스리기로 의론이 되었는데, 황제의 은총으로 칙지가 내려 사면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에 서양인들에게 독살당하였다. 그 후에 서양 역법이 다시 시행되니 너무도 견고하여 없앨 수가 없었다.
양공이 관직을 받기 전에 죽었다면 그의 잘못을 지적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리되었다면 서양의 기술은 〔중국에서〕 다시 흥성할 수 없었을 것이며, 흥성했다 하더라도 끝까지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러한 함정을 만들어놓고 저들의 분憤을 토해내었던 것이다. 그렇게 간악한 수작을 펴고 지독한 음모를 꾸몄으니 어찌 두렵지 않으랴? 그러나 천주교는 공공연히 전파되지 못했으니 중국 백성들이 공공연히 천주교를 받들어 섬겨 모두 아비도 임금도 없는 짐승으로 되지 않은 것은 모두 양공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고 사설邪說을 그치게 한 사람은 맹자 이후에 그 한 사람뿐이다. 어떤 이들은 나의 말이 지나치다고 할 것이지만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판별해주기 바란다.
--- pp.491~4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