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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으로 읽는 100명의 인생철학

명언으로 읽는 100명의 인생철학

[ 양장 ]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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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26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512g | 128*188*24mm
ISBN13 9788974472672
ISBN10 8974472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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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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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의 완성자로 세계 음악사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 음악가로 평가받는 베토벤. 그가 많은 이들로부터 아낌없는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은 단지 그가 뛰어난 음악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가장 중요한 청력을 잃어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음악을 놓지 않았다. 귀가 들리지 않으면 마음으로 소리를 들으며 주옥같은 곡을 써 내려갔다. 대중은 베토벤의 집념에 감탄했고 그의 삶으로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물론 베토벤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청력을 잃어간다는 사실에 슬퍼했고 절망했다.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 두 동생에게 유서를 쓰기도 했다. 죽음만이 절망과 슬픔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죽지 않았다. 살아서 하고 싶은 음악을 계속하는 것이 자신을 진정으로 위하는 일이고 목숨처럼 소중한 음악을 배반하지 않는 길이라며 삶의 의지를 다졌다. 그는 힘들 때마다 자신의 음악을 통해 위로받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에게 많은 사랑을 주었던 사람들을 위해 보다 아름답고 멋진 음악을 들려주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복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베토벤은 음악과 대중을 아끼고 사랑한 예술가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것이 자신의 소망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 주는 대중을 위해서라면 시련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는 피나는 노력을 한시도 거르지 않으며 음악에 정진했다. 사람들을 향한 베토벤의 애정은 어린 시절 그가 처했던 환경의 영향이 크다. 그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동생들을 거두는 가장이 되었다. 가족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없으면 가장이 될 수 없다. 그 역시 가족을 끔찍이 아꼈는데 이런 가족 사랑은 음악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가장 큰 기쁨과 행복으로 여겼다. 베토벤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남을 위해 일 한다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나의 최대의 행복이었고 즐거움이었다.” 말속에서 그가 사람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가 느껴진다. 베토벤은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자애롭고 따뜻한 품성을 가진 음악가였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 앞에 ‘음악의 성자’라는 뜻의 ‘악성’이라는 말을 붙이며 최고의 음악가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동료 음악가들에게도 존경의 대상이었다. 특히 가곡의 왕으로 불리는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그 누구보다 존경하였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이 너무나 닮고 싶은 나머지 베토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머리와 옷 입는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했다. 베토벤의 몸과 마음을 그대로 복제하고 싶었던 것이다. 슈베르트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도 주변 사람들에게 베토벤의 곁에 묻어 달라고 할 정도로 그를 동경했다.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베토벤의 넉넉한 마음은 그를 최고의 음악가로 만들었다.
---「001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고 즐거움이었다 _ 베토벤」중에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봄 직한 작품들이다. 특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제목 자체가 하나의 시구다. 그는 글재주가 탁월한 작가였으며 투철한 작가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실제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소설로 유명하다. 헤밍웨이는 1929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운전병으로 참전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발표와 동시에 많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소설가로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스페인을 무척이나 좋아해 네 차례나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제5열〉이라는 희곡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특히 스페인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판매 부수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헤밍웨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종군기자로 전쟁터를 누볐다. 전쟁은 그의 생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전쟁의 경험은 고스란히 그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행동파 작가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바다 빛이 아름다운 쿠바의 해변가에 기거하며 소설을 쓰고 낚시를 즐겼다. 그는 이것을 소재로 『노인과 바다』를 썼다. 『노인과 바다』는 평단으로부터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1953년에는 퓰리처상을, 1954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안겨 주었다. 마침내 세계 문단에 한 획을 긋는 작가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헤밍웨이의 작가 정신은 강인한 프로 정신에서 기인한다. 그는 작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 두 번이나 자원한 헤밍웨이. 다른 작가들은 꿈조차 꾸지 못할 시도를 통해 그는 생생한 작품을 써내려 갔다. 헤밍웨이가 탁월한 작가로 기억되는 것은 결국 그의 노력과 열정에 있었다.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다. 그의 노력과 열정이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 묻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이들은 나의 성공을 운이 좋아서 혹은 재능이 뛰어나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나는 우연히 성공한 것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으로 성공한 것입니다.” 헤밍웨이는 꿈을 이루는 데 끈기와 노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분야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을 부러워하며 찬탄하지만, 장점을 배우려 하지는 않는다. 만약 자신이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헤밍웨이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꿈꾼 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미국 문학의 거장 헤밍웨이. 그는 끈기와 열정이 무엇인지 보여 준 진정한 작가이다.
---「014 나는 우연히 성공한 것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으로 성공한 것이다 _ 헤밍웨이」중에서

중국 동진 말기에 태어나 남조의 송나라 초기에 살았던 시인 도연명. 그는 흘러가는 청춘을 주제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盛年不重來 성년부중래 一日難再晨 일일난재신
及時當勉勵 급시당면려 歲月不待人 세월부대인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새벽은 하루에 한 번뿐이다. 좋은 시절에 부지런히 힘쓸지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의 표현대로 한 번 지나간 청춘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시간의 소중함을 깊이 깨달아 시간 낭비를 스스로도 엄격하게 다스렸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귀거래사」는 고향을 떠나 살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적 화자의 마음이 절절하게 배어 있어 읽는 이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울린다. 도연명은 29세에 벼슬길에 올랐지만 늘 전원생활을 동경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을 흘려보낸 뒤 그의 나이 41세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로 관직을 사임하고 낙향하였다. 다음은 그가 사임한 또 다른 이유에 대한 일화이다. 도연명은 405년 되던 해 팽택 현령이 된 지 80여 일 만에 사임했다. 그해 말 심양군 장관의 직속인 순찰관이 순찰을 온다고 하여 아랫사람이 진언했다. “어서 의관을 정제하고 맞아 주십시오.” 도연명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벼슬을 내려놓았다. “오두미(월급)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의 소인을 섬기는 일을 할 수는 없네.” 그의 대답에서 강직하고 올곧은 성품을 알 수 있다. 그는 큰 벼슬을 지내지도 않았고, 뛰어난 공적을 세운 적도 없지만, 전원시를 개척한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무욕의 품성으로 언제나 검소하고 소박하게 생활했다. 매사에 억지로 꾀하지 않았으며 순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였다. 노자의 무위와 맥락이 비슷한데 그만큼 그는 순수하고 자연 친화적인 사람이었다.

도연명은 가정사에 있어서도 매우 모범적인 삶을 추구하였다. 당시 관리들이나 유명 인사들은 처첩 생활을 했지만, 그는 성적인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다. 그의 삶은 학처럼 고고하고 유유자적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당시 현실로부터 도피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따랐고, 진리를 추구하며 삶의 진정성을 획득하였다. 도연명은 본질을 잃지 않는 삶을 지향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인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거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인위적인 것은 자연의 섭리를 그르치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 있는 도연명의 시문은 4언 시 9수, 5언 시 115수, 산문 11편이다. 작품에는 그의 고결한 성품이 그대로 담겨있어 북송의 시인 소식은 도연명을 중국 역사상 최고의 시인이라고 극찬하였다.
---「015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_ 도연명」중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조각가, 건축가인 미켈란젤로. 그는 다방면에서 뛰어난 인재였다. 한 사람이 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여러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뛰어넘는 놀라운 노력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그에게 멋진 차림을 한 귀족이 찾아왔다. “내 흉상을 만들었으면 하는데 만들어 주시겠소?” 미켈란젤로는 그의 부탁을 받고 흉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하루 종일 흉상을 조각하며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먹는 것, 마시는 것도 간단히 해결하고 쉬는 시간도 잠깐이었다. 그는 오로지 조각하는 데만 집중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자다가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작업했다. 그가 일에 쏟는 열정은 곁에서 보는 사람들이 감탄할 정도였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자 흉상의 모습이 거의 갖춰졌다. 미켈란젤로는 세심한 부분까지도 세밀하게 조각하였다. 표정이나 눈썹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작업한 끝에 마침내 귀족의 흉상을 완성하였다. 그는 귀족에게 흉상이 완성됐다고 알렸다. 귀족이 와서 보더니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 이렇게 멋질 수가. 멋지게 만들어 주어 감사하오.” 미켈란젤로는 그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더니 작품 비용으로 금화 50개를 청구하였다. 귀족은 비용을 듣더니 흡족해하던 때와는 달리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작품이 훌륭하다지만 10일 동안 만든 것치고는 너무 비싸군요.” 귀족은 작품비가 비싸다며 투덜거렸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흉상을 10일 만에 만들 수 있었던 것은 30년 동안 조각에 바쳐 온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켈란젤로의 말에 귀족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금화 50개를 건네주었다. 귀족은 단순히 10일 동안 일한 것만 생각했지, 그가 어떻게 단기간에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일화에서 보듯 미켈란젤로는 예술 정신이 투철할 뿐만 아니라 열정이 뜨거운 예술가였다. 그는 오직 예술 정신에 입각하여 활발히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예술가로서 명성은 높았지만 그의 삶은 어려웠다. 그는 열심히 가난과 싸운 끝에 〈피에타〉, 〈다비드〉, 불후의 명작이라 불리는 〈최후의 심판〉을 그렸으며,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였다. 미켈란젤로가 불후의 명작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작품에 대한 열정 덕분이었다. 그는 신약과 구약성서와 많은 고전을 탐독하며 상식을 쌓았는데 풍부한 상식은 상상력의 기초가 되었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품을 남기는 데 일조했다. 지금도 그의 예술혼은 살아서 빛을 반짝이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020 10일 만에 흉상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30년 동안 조각에 바쳐 온 노력 덕분이다 _ 미켈란젤로」중에서

미국의 위대한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백인들의 인권 탄압의 고통으로부터 흑인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꿈을 꾸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보스턴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서 하버드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공부에 대한 그의 집념은 집착에 가까울 만큼 열성적이었고 마침내 침례교 목사가 되었다. 그가 공부에 열정을 다한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흑인들의 인권을 되찾고야 말겠다는 강한 신념 때문이었다. 마틴 루터 킹은 비폭력 저항과 인종차별 철폐 및 식민지 해방 등을 주장한 간디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목사가 되어 활동하던 그는 ‘몽고메리 시에서 운영하는 버스에 흑인은 탈 수 없다는’ 규칙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며 본격적인 흑인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투쟁 후 1년 만인 1956년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그는 그리스도교 지도 회의를 결성하고,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투쟁을 지도하였다. 수차례나 투옥되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인권 운동을 펼쳐 나갔다. 이 일은 결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민권 법안 통과의 계기가 되었다. 그는 흑인들에게 가슴 벅찬 희망을 안겨 주었다.

그는 명연설가로도 유명한데 자유를 향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인간이 모두 형제가 되는 꿈입니다. 나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나서서 절망의 산에 희망의 터널을 뚫을 것입니다. 나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여러분들과 함께 나서서 어둠의 어제를 밝음의 내일로 바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새날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의 자유를 향한 연설 중 일부분이다. 흑인들의 자유와 평화를 찾기 위한 열망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연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마음은 흑인들의 인권을 되찾기 위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은 그의 헌신적인 흑인 해방운동은 전 세계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는 196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헌신적인 삶과 달리 그는 암살로 생을 마감하여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그가 죽음도 불사하며 인권 운동에 앞장설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의 인권 운동은 두터운 신앙심과 신념에 기초했다. 강철 같은 신념과 믿음은 강도 높은 압박과 탄압을 버텨내는 힘이 되었다. 그의 죽음은 또 다른 흑인 인권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의 죽음마저도 거룩하게 여겼다.

그는 인권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출간했는데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투쟁에 관하여 쓴 『자유를 향한 대행진』, 『왜 우리는 기다릴 수 없는가』 등이 있다. 그의 저서에는 흑인들의 꿈과 희망이 담겨 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영혼은 수많은 사람들을 희망으로 이끄는 강한 에너지를 발한다. 누군가의 가슴속에 영원한 전설로 남아 있다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다. 누군가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는 삶이란 얼마나 향기로운 목숨인가. 마틴 루터 킹은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021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_ 마틴 루터 킹」중에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그가 백인들이 주도하는 미국 사회에서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공화당 후보인 존 메케인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의 역량이 미국 사회에서 인정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바마가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 준 사례는 지금도 전세계인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2007년, 그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예비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누구도 그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의 경쟁 상대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미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손꼽히는 힐러리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흑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보란 듯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로 4년이 지난 뒤 오바마는 2012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롬니를 큰 표 차이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하며 전 세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출중한 능력 외에도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 내는 데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상대를 배려하는 그의 태도는 그가 자라 온 성장 배경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그는 자신의 피부 색깔이 어머니와 다른 것을 보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아버지는 케냐에 거주하고 있어 어머니의 보살핌 아래서 자라야 했는데 거기에 피부색 때문에 받는 차별이 가중되면서 그의 정신적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이 겪은 차별을 통해 피부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다양한 민족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폭넓은 문화를 즐기며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폭넓은 세계관을 품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용서와 화해,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굳게 믿으며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상대의 관점에서 생각했다. 오바마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 지역사회 운동을 벌이며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었다. 그는 어려운 시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의 실천적인 삶은 시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었고, 자신 역시 삶을 통해 행복해했다. 그가 행한 모든 일들은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데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그가 사회 활동을 통해 경험한 일들은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귀한 자산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내게 강조한 간단한 원칙 ‘네게 그렇게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니?’라는 말을 정치 활동의 지침 중 하나로 삼고 있다. 만일 CEO가 직원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그들의 건강보험 지원비를 삭감하면서 수백만 달러의 상여금을 챙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용자의 압박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내가 조지 부시와 아무리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의 시각에서 국제 상황을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공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오바마는 상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공감을 형성하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다수의 지지와 공감을 형성해 대통령이 되었고 자신의 인생을 성공의 길로 이끌어 낼 수 있었다.
---「057 네게 그렇게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니? _ 버락 오바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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