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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책

12월의 책

: 고양이와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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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3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28*188*20mm
ISBN13 9791195556533
ISBN10 1195556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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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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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코를 골고 기지개를 켜는 것이 좋다. 그러면서 내는 소리가 좋다. 항상 다른 소리를 낸다. 골골송도 좋다. 밥 달라고 우는 것도 좋고. 한지는 소리가 많은 고양이다. 나도 소리가 많은 사람이다.
--- p.12

내 선언을 망치러 와달라는 초대. 이것이 선언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내가 없어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 이것이 선언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오늘 저는 쉽사리 무언가를 선언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너무 많은 선언을 했고, 이미 내가 그 선언들을 번복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당신들이 내 선언을 폐기하고, 더 훌륭한 선언을 할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의 미래를 믿고, 시가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한 사람으로서, 미래의 시인이 나의 선언을 폐기한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야 정상이겠지만. 오늘 저는 정상이 아닙니다.
--- p.71

고양이가 내 품에 파고들어 잠을 자면, 내 몸은 고양이가 있을 자리가 된다. 그러면 나는 비로소 행복감과 불안감에 젖어 무(無)를 감각한다. 나는 고양이를 위한 공간일 뿐, 공간일 뿐, 나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고양이의 덕으로 나는 자신의 뿌리 깊은 자의식 과잉에서 해방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내가 움직일 것 같아서. 그러면 고양이가 나를 떠날 것 같아서 불안하다. 그리고 이 양가적인 감각은, 나는 언제나 양가적인 상태를 불편함으로 감각한다. 나는 불편하다. 가장 행복하고 따뜻한 상태에서도, 나는 불편하다.
--- p.79

쓰고 있는 글이 마음에 쏙 들지 않으면 다시 쓰는 편이 좋다. 그러나 쓰던 글을 날려버리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서 나는 질문한다. 왜 쓰고 있지? 소재가 좀 마음에 들어서. 내가 쓴 어떤 문장이 조금 흥미로워서. 아니 그게 아니라. 이 글을 왜 쓰고 있지? 적절한 답변이 생각나지 않을 때. 거의 항상. 왜 쓰고 있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답할 수가 없고. 그래서 나는 다시 쓰기로 한다. 쓰던 글을 과감히 지워버리고. 무엇을 왜 쓰려고 하지? 조금이라도 마음이 동할 때까지. 질문 앞에서 눈을 감는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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