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11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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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8쪽 | 382g | 128*188*30mm |
ISBN13 | 9788925577609 |
ISBN10 | 8925577607 |
발행일 | 2022년 11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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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8쪽 | 382g | 128*188*30mm |
ISBN13 | 9788925577609 |
ISBN10 | 8925577607 |
저자의 말 달팽이 식당 초코문 옮긴이의 말 |
이상하게 난 먹는 게 귀찮다. 하루 속히 알약이 개발됐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치자 사람들이 하나같이 야유를 보냈다. 음식을 씹는 질감이 좋다는 사람부터, 알약 하나로 허기를 달랬다가는 삶에 아무런 낙도 없을 거 같다는 사람까지. 이유는 가지가지였다. 그들은 음식을 신봉 아닌 신봉하고 있었다. 음식이 주는 힘이 강렬하단 건 잘 안다. 배가 부르면 사람은 너그러워진다. 어쩌면 두뇌회전 또한 평소 이상으로 잘 이루어질 것이다. 정성스레 만들어진 음식이 지닌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아마도 저자는 잘 알았던 듯하다. ‘달팽이 식당’이라는 이야기를 써 내려간 이가 음식의 힘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주인공 린코는 부모의 사랑이라고는 도무니 느껴 본 적 없는 것만 같은 인물이다. 일찌감치 독립했고, 미래를 함께 약속해도 좋겠다 싶은 인도인 남자친구가 그에게는 전부였다.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그는 강렬한 인도의 향신료 냄새를 맡으며 행복에 젖어 들고는 했다. 향긋한 꿈은 생명력이 그리 길지 않았다. 무엇이 원인이었던지 사랑은 깨어졌고, 그는 홀로 남겨졌다. 주변에 대화를 나눌 존재가 전혀 없다 하여 충격으로 목소리를 잃은 일이 비극이 아닌 게 되진 못했다. 살 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돈을 훔쳐 달아날 요량으로 이젠 남이 된 엄마가 사는 집을 침입했다가 그만 발각되고야 말았다. 타협은 역시 불가능했다. 그는 엄마가 기르던 돼지를 돌보는 조건으로 집에 머물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엄마는 그에게 식비, 난방비, 월세 등도 요구했다. 돈이 필요했기에 일을 해야만 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 있던 요리를 하기로 했다. 정해진 메뉴는 없다. 예약 받은 손님의 사연에 집중해 요리를 만드는 게 전부다. 그저 취미로 즐기는 것과 타인에게 요리를 내놓고 평가 받는 건 사뭇 달랐다. 어떤 반응이 쏟아질지 긴장의 연속이었으나 그는 제법 성공적으로 식당을 경영한다. 달팽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진다.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
스토리는 간결했다. 린코와 엄마와의 불편한 관계가 밋밋한 이야기에 굴곡으로 작용하긴 하나 매우 비중이 높지는 않다. 나에게는 오히려 저자가 요리의 과정을 묘사하는 일에 보다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비추어졌다. 그가 어떠한 재료를 사용했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하나의 음식을 완성했는지, 저자는 아낌없이 독자들에게 펼쳐 놓았다. 특히, 자신이 마음을 나누던, 어쩌면 유일한 친구와도 같았던 돼지 엘메스를 이용해 요리를 만드는 과정은 끔찍할 정도로 상세했다. 아,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비둘기를 요리하는 대목도 마찬가지. 비록 글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상상하게 됐다. 이런 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면 과연 어떤 맛이 날까. 닫힌 마음이 열리고, 심지어 사랑에까지 빠졌다면 음식 말고도 혹 다른 요인이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이어지는 궁금증은 많았고, 평소 요리와 담을 쌓고 지내온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어지는 ‘초코문’은 달팽이 식당을 방문한 손님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었다. 가지각색의 사연을 지닌 인물들의 방문이 이어진다던 달팽이 식당. 초코문의 주인공은 게이 커플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우연히 식당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돼 방문한 그 곳의 주인은 이들의 허니문 소식을 어떠한 편견도 없이 받아들였으며, 자신이 선보일 수 있는 최상의 요리를 제공했다. 상처를 지닌 두 인물이 어쩌면 처음으로 누렸을 행복한 시간. 맛깔스러운 요리에는 이들을 향한 배려가 가득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솟구치는 듯했다. 식당 주인의 마음과 손님의 마음이 만나 빚어낸 기적이야말로 달팽이 식당이 지닌 무기였다.
맛난 음식은 비쌀 때가 잦다. 이미 널리 알려진 탓에 오래도록 긴 줄을 형성한 채 기다리기도 한다. 돈을 지불한 만큼 제공받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순간 식사는 거래로 전락한다. 어디 식사 뿐인가. 많은 관계가 그러했다. 내가 이만큼 너에게 주었으므로 난 너로부터 이 정도는 받아야만 한다는 계산적 사고에 얽매이는 순간 나는 너로부터 멀어졌고 ‘우리’는 ‘남’이 되었다. 그렇게 양산된 많은 실패를 짧은 이야기를 읽으며 되돌아보게 됐다. 그 과정은 묘했다. 나는 지금 달팽이 식당을 방문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