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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

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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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222g | 125*200*20mm
ISBN13 9791197710735
ISBN10 1197710736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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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땅에 부서진 재처럼 남은 메마른 풀과 잔뿌리를 밟으며 고요한 겨울을 지나면, 마른 나뭇가지와 컴컴하던 땅에도 푸른 새순이 돋는 봄이 내려앉는다. 겨우내 발등만 보며 걷던 습관은 해가 깊숙이 드는 봄이 오면 자연히 사라진다. 푸른 잔디와 굵어진 나무, 그 위에 내려앉은 작은 새들을 올려다보며 걷는 걸음은 나른한 봄기운에 취해 왈츠처럼 우아해지곤 한다.
---「사계절이라는 축복」중에서

사계절의 순환이 없었더라면, 작업과 삶에는 긴장과 이완이라는 밀고 당기기도 없었을 거다. 무한정 늘어진 삶을 살거나 매초 스스로를 다그치기만 하며 현재의 기쁨과 슬픔의 맛을 알지 못 했으리라. 그리하여, 나에게 날마다 새로운 배움을 전해준 계절들을 지나며 문장들을 엮었다.
---「사계절이라는 축복」중에서

그리운 적 없던 그를 떠올린 것은 틀림없이 눈 때문이었을 거다. 해묵은 기억들이 하얀 눈에 둘러싸여 둥글둥글 뭉툭해져서 마음 속으로 굴러들어왔을 거다. 지난 시절을 떠올려 보다 가만히 속으로 안부를 묻는다. 눈이 오는 날이면 여전히 그 노래와 그 영화를 보는지.
---「눈이 오면」중에서

이방인과 주변인 사이를 오다가 보면 언젠가는 이름을 새기지 않아도 내 것인 것들이 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낙관적인 마음은, 오늘 아침 산책에서 입은 것이다. 목적 없는 아침 산책은 작고 나약한 고민의 터널을 지나며 몇 줄의 선명한 문장이 된다. 삐뚤빼뚤하게 쓰인 문장을 조용히 웅얼거리고 나서야 나의 긴 산책은 끝이 난다.
---「깨끗한 마음으로 쓰는 산책」중에서

움츠러들었던 몸을 이끌고 오랜만에 산책길을 나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추운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죽은 것처럼 보이던 거리의 나무들에서 어제보다 짙어진 푸른 싹을 발견했다. 내일은조금 더 향기로운 꽃과 단단한 열매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거리의 나무들도, 작은방 안의 나도.
---「뻗어나갔다는 것만으로도」중에서

함께 웃고 울고 떠들던 여덟 번의 여름은 선명한데 마지막 메일과 문자를 나누었던 아홉 번째 여름은 희미하다. 마치 누군가 필름을 뚝 자른 것처럼 맺음 없이 남겨진 마지막 여름 끝에는 옅은 감정만이 잔부스러기처럼 남겨져 있다. 소란하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네 번째 여름을 맞았다. H는 지금 어떤 여름을 지나고 있을까.
---「소란하던 여름이 지나고」중에서

그래, 우리는 서로의 그늘을 읽는 중이었지.쓰는 자리와 읽는 자리를 숨가쁘게 오가는 나에게 시간은 여전히 부족하고, 좁은 마음은 쉬이 넓어지지가 않는다. 잘 지내는 듯하다가도 이따금 괴롭고 외로운 밤이 방문한다. 그러나 아주 환한 새벽도 있다. 모든 것을 미루고 싶다가도 당장에 모든 걸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줄다리기를 하는 여름이다.
---「그늘을 모으는 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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