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회피는 조세 준수와 탈세의 중간쯤 되는 회색 지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지대는 많은 회계사, 법률가, 은행가, 조세 전문가 들이 차지하는 영역으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지대다. 엄격히 이야기해서 조세를 회피하려는 개인이나 회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 하나를 추구한다. 첫째, 거주하는 국가의 법을 합리적으로 해석했을 때 내야 하는 금액보다 적게 세금을 내려고 한다. 둘째, 실제로 이윤을 벌어들인 국가가 아닌 다른 국가에서 이윤을 신고하고, 신고지에서 세금이 부과되기를 원한다. 셋째, 실제로 이윤이 발생한 시기보다 어느 정도 뒤에 세금을 내기 위해 조정을 한다.---pp.18~19
조세회피처에 대한 정의는 필연적으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조세회피처를 그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이 조세와 규제를 피할 목적으로 수행하는 거래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률을 의도적으로 제정하고, 또 그런 거래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비밀의 장막을 법적으로 보장해서 조세와 규제를 쉽게 피할 수 있는 지역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이 정의를 따르더라도 어떤 국가가 조세회피처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다.---p.64
누구나 아는 다국적기업 대부분은 조세 관련 업무를 취급하기 위한 특별 부서를 만들어 왔다. 이런 부서는 이윤센터 또는 가치창출센터로 인식되고 부서의 직원은 회사의 조세를 절약해 주는 능력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Slemrod 2004, 11). 대기업에서 일하는 조세담당 부서의 부서장 1,000명을 조사한 2000년 《포춘》지의 조사에 따르면 그들 중 46%가 회사가 납부해야 하는 실질세율을 감소시키는 능력에 따라 보수를 받고, 16%는 가장 중요한 임무가 조세 납부와 관련해 합법적인 납부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음에 설명하는 사람들이 조세회피처 활동의 중심에 있다.---p.156
현재 조세회피처는 모든 주요 금융센터와 상업센터로서 전 세계에 퍼져 있다. 현대의 조세회피처는 여전히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로 여전히 가장 큰 그룹은 영국 혹은 대영제국을 근거지로 하는 조세회피처다. 이 조세회피처는 시티 오브 런던을 중심으로 유로시장에서 자금을 공급받는데, 이 그룹은 크게 왕실보호령, 해외 영토, 태평양 산호섬, 싱가포르, 홍콩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번째 그룹은 유럽의 조세회피처로서 회사본부센터, 금융계열사, 프라이빗뱅킹에 전문화되어 있다. 세 번째 그룹은 이질적인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지역에는 파나마, 우루과이, 두바이와 같이 예전의 조세회피처를 모방한 국가, 이행경제, 아프리카의 새로운 조세회피처가 포함된다.---pp.232~231
국가 간 조세 경쟁은 이중 제로섬 게임이다. 한 지역이 벌어들이는 조세 수입은 다른 지역이 잃어버린 조세 수입이고, 어떤 지역의 감소된 재정적 부담은 다른 지역의 증가된 재정적 부담으로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경쟁이라는 신고전주의적 용어는 사회의 특정 그룹이나 특정 부분의 지엽적 이익에만 부합할 뿐이다. 이것은 세계경제에 조세회피처가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 사용하는 분석적 도구가 아니다.
조세회피처 그 자체를 살펴보자. 조세회피처가 세율을 낮추는 데 선구적이었다거나 공헌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스위스나 룩셈부르크에 사는 평범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세율은 다른 나라의 중산층에 적용되는 세율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낮지 않다. 저지와 같은 몇몇 조세회피처는 주민이 다른 조세회피처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엄격한 법을 가지고 있다. 저지가 근처에 있는 건지를 통한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해 만든 반조세 회피 규정이 여기에 속한다.---pp.240~241
탈세는 전통적으로 정의되는 형태의 부패와 동일한 효과를 가지고 있으며, 이 둘은 같은 정치적·사회적 역학 관계를 공유한다. 또 자신들을 지탱해 주는 사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엘리트와 관련되어 있다. 이 ‘엘리트들의 반란’은 두 가지 주요 구성요소를 갖는다. 첫째, 그들은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 둘째, 주로 로비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부의 민주적 (혹은 다른) 과정에 참여한다. 탈세와 부패는 빈곤을 악화시키고 정치적·경제적 통치구조의 청렴도에 대한 믿음을 좀먹는다. 또한 특정 집단의 이기주의를 강화해서 공공의 이익을 희생한다. 이런 탈세와 부패의 핵심에는 바로 조세회피처가 있다.---p.280
1990년대 후반 조세회피처에 대한 정책이 양자주의에서 다자주의로, 이목을 끌지 않고 압력을 행사하는 정치에서 국제기구가 채택한 이름을 공개하여 창피를 주는 전술로 뚜렷하게 변했다. 1990년대 후반 가장 중요한 계획은 유해한 조세 경쟁에 대한 OECD의 캠페인인 것처럼 보였다. 다른 많은 계획의 정책 발의는 중요한 국제금융기구에 의해 추구되었다. 그러나 조세회피처에 대한 국제적인 계획은 특히 부시 정부의 정책 때문에 5년 혹은 6년 후 흐지부지되었다. 그동안 유럽연합이 조세회피처와의 국제적인 전투에서 가장 핵심적인 선수로 부상했다. 유럽연합의 사업과세 행동강령이 유럽의 조세회피처와 유럽 국가의 속국 중의 조세회피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p.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