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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도 되는 마음, 땅속의 귀신들도 이미, 여름의 봄

몰라도 되는 마음, 땅속의 귀신들도 이미, 여름의 봄

리뷰 총점9.0 리뷰 3건 | 판매지수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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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15*185*20mm
ISBN13 9791198023315
ISBN10 119802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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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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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여권을 만지작거렸다. 오랜만에 맡는 공항 냄새에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느낀다. 여권 사이에는 끼워둔 항공권이 있었다. 워킹 비자를 준비해오다가 두 달 전 예약한 항공권이었다. 출국 사실을 아는 지인은 없다. 그게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가족에게는 비행이 끝난 후 연락할 참이었다.

과거를 청산할 것. 지난날을 유기하고 떠날 것. 문은 그간 이 두 가지가 삶의 목표인 사람처럼 굴었다. 자신이 아는 한 과거의 기억은 잊히거나 희미해지거나 둘 중 하나. 잊히지도 희미해지지도 않는 기억은, 떠오를 때마다 괴로움을 동반하는 기억은, 제발 버려버리는 수밖에 없지 않나. 내 일이아닌 척, 나에게 그런 일은 없었던 척 살아볼 수 있지 않나. 기억이 되살아나는 걸 유예시켜볼 수 있지 않나.
---「몰라도 되는 마음」중에서

“선생님, 비 오니까 무서운 얘기 해주세요!”
영성초등학교의 미술 교사, 김중호는 교과서에서 떼어낸 시선을 아이들 쪽으로 돌렸다. 그의 입에 어느새 미소가 걸렸으나, 아이들은 모를 터였다. 코로나 시국이고,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까.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못 이기는 척 운을 뗐다.
“내가 너희 반에 이 얘기를 했나?”
“뭔데요?”
“음악실 엘리제를 위하여.”
아이들이 아우성을 쳤다.
“아, 그건 저번에 했어요. 다른 거 해주세요!”
“사파이어 얘기도?”
“사파이어요?”
어느새 조용해진 미술실에서, 그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잿빛 구름이 맞부딪치며 우르릉, 울었다.
---「땅속의 귀신들도 이미」중에서

새벽 바다 앞에 혼자 앉아서 파도 소리를 듣고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 부서지는 파도는 아름다웠다. 저 물거품은 돌아갈 곳이 있는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고백하던 진우를 세계에 처음 넘어왔을 때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정하게등을 두드리며 손수건을 건네던 윤희 아주머니는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엄마 같아서 그립기만 하고, 촉촉한 코로 무릎을 콕콕 찌르며 꼬리를 흔들던 찹쌀이의 온기가 아쉬웠다. 이들을 또 언제까지 떠올릴 수 있을까. 세계를 넘을수록 기억하고 싶던 존재들이 점점 희미해진다는 게 슬펐다.

세계를 넘어와서 처음 만난 사람이 운명적인 사랑의 후보였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을 제일 먼저 만나게 될까. 이제는 그 사람이 내 운명이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나쁜 사람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마음 나눌 생각을 포기하고 때가 되면 다른 세계로 가버릴 수 있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바다만 보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여름의 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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