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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시금치라고 불러

고양이시금치라고 불러

현대시세계 시인선-145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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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212g | 153*224*20mm
ISBN13 9791165121457
ISBN10 116512145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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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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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버블 고양이

얼음과 수정이 담긴 계절에서 왔지
부풀다가 긁힌 자국들

뱃속에 말아넣은 수선화
다섯 뿌리가 자라고 있어

간지러워 간지러워
거스러미 이는 목젖

시큼하게
더부룩해진 봄을 한입 물고
손목과 무릎이 얇아질 때까지

알뜰히 뜯어먹은
몇 개의 해와 달
새로 뜯어먹은 자리에
돋는 밤과 낮

뿌리들이 저녁을 옮겨오고
너는 영혼을 닫고 몸을 구부리지

다친 눈동자는
구름을 문지르는 노란 빛을 가졌지
흔들리는 노을 편으로 기울지

곧 아물겠지
곧 잊겠지

깜깜했다가 사라진 모든 고양이에게

나는
봄이 아니라 고양이시금치라고 해
---「고양이시금치*라고 불러」중에서
* 괭이밥의 다른 이름, 강원도에서는 고양이시금치라고 부른다.

여자를 굳이 비유하자면 꽃에 비유하는 게 맞지요
일테면 이전에 본 장미를 다시 봐도 반갑고 아름답지요 이전에 비할 바 없이 또 새롭고 향기롭지요

꽃이 벌이나 나비를 기억할 리 만무이니 남자들을 굳이 벌이나 나비로 비유하는 데에야말로 화가 날 일이지요 나비나 벌이야 매번 꽃을 찾는 것이 일이니 늘 생각할 테지만 꽃은 꽃의 일만으로도 바쁜 법이니까요

사실 알고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있으려구요
꽃을 꺾다니요 그건 옳지 않아요 가지를 내는 일이 얼마나 치열하게 허공에 밧줄을 매어두는 일인지 안다면 말이에요

생각해보면 벌이고 나비 아닌 것들이 또 있으려구요
화분을 모아 꿀을 만들고 발효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죽음에 이르는 것이 우리네 삶이거니 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꽃이어야 맞지요
아름다운 것들이
해당화
작약
라일락의 이름인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는 말입니다

부르는 동안 향기가 불러오는
평화로운 환대 같은 것을 우리는 천국이라고 부르기도 하니까요

물봉숭아
수국
다시 동백
그렇게 첫눈 오는 날을 기다리는 일처럼 말이죠
---「황송하게 꽃꽃하게」중에서

참외는 럭비공같이 생겼어
들고 뛰어오르면 골대를 향해 던질 수 있을 거 같아

아니 참외는 배꼽이야
탯줄을 감고 있다가 뚝 떨어져 나왔잖아
싱겁지만 우주가 낳은 우주야

참외는 로켓이야
힘껏 나아가는 저 빛깔을 좀 봐
흉내낼 수 없이 견고해

참외는
모든 것의 바깥이야

참외 하나를 깎아서
접시에 놓는 순간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말했어

참외는 뭉클한 것들을 베는 칼이야
헐겁고 무성한 여름을
베고 또 베어서 참 촘촘하게도 묶어놨지 뭐야

혀는 꼼짝없이 당했어

비열한 말들은 참외하고
우물우물 입 안 가득 씹혔지

웃음들이 새어나왔지
그래 그렇게 웃었어
---「참외는 말이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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