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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 러시아 음악가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의 전기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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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23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576쪽 | 1042g | 156*217*38mm
ISBN13 9791189346386
ISBN10 118934638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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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비극적 요소는 그 모습을 천천히 드러내는 법이며, 그것을 인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성공이나 화려함, 명성의 경우보다 더디 흐르는 편이다. 외로움, 망가진 사랑, 질병, 죽음 따위는 개인 숭배와 신화의 단골 소재이긴 하지만, 마리아 칼라스나 매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글렌 굴드,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어두운 면모는 때로 그들이 죽고 난 이후에 세상의 주목을 받곤 했다.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의 신화는 그들과는 조금 다르다. 화려한 조명과 고독 사이의 골은 무척 깊었고, 성공과 파멸, 천재성과 운명, 빛과 어둠 사이의 줄타기는 매우 위태위태했다. 한편으로 리흐테르의 신화는 순수하게 음악과 관련된 신화이자, 아찔한 높이까지 올라간 음악가의 이야기다. 고된 노년에 든 그는 육체라는 껍데기가 손을 맞잡아주지 않는 상태에서는 음악가의 정신력이 목적지를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리흐테르라는 존재의 비극적 측면은 예술의 무대가 아니라 인생의 무대에서 펼쳐졌다. 예술에서의 완벽성과 무결성은 어차피 달성할 수 없는 꿈으로 남기에 비극적일 이유가 없다. 그것이 예술가로서 삶의 조건인 까닭이다.
--- p.9~10

“나는 작곡가가 쓴 것을 연주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p.13

리흐테르는 악보 속에 침묵하고 있는 음표들을 되비추는 이름 없는 거울이 됨으로써 잠자고 있는 음악을 되살리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자기만 중히 여기는 예술가가 되기보다는, 영묘한 공명의 매체이자 음악이 가지는 영적 의미를 전달하는 수로水路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음표 속에? 피아노에? 음파에? 귓속에? 마음속에? 리흐테르는 불변의 이상 혹은 ‘진실’은 존재하지 않음을, 그리고 음악 작품은 오로지 언제나 새롭게 탄생하는 근사치로서만 존재함을 잘 알고 있었다. 작품 혹은 음악을 확고 불변의 형태로 말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 p.13~14

리흐테르는 언제나 사랑을 앞세웠다. “내가 가장 아끼는 작곡가는 언제나 해당 시점에 내가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작곡가들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작곡가를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 스스로를 믿어야 하지요!”
--- p.34

마치 한 마리 카멜레온처럼 리흐테르는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의 색깔을 입는다. 슈만을 연주하는 그의 피아노 소리는 따뜻한 노래처럼 들리고, 리스트를 연주하는 소리는 불꽃을 튀기는 듯 빛이 나고 기운을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들리며, 브람스를 연주할 때의 소리는 묵직하고 옹골찬 음색이 두드러지고, 프로코피예프를 연주할 때의 소리는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공격성이 부각되며, 드뷔시를 연주하는 소리는 파스텔로 채색한 것만 같은 빛이 난다. 따라서 리흐테르는 어떤 특정한 음색이나 사운드, 연주 스타일을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다. 대신 그가 가진 브랜드는 단단한 신체적 힘, 무한대로 섬세한 피아니시모, 소리의 밀도, 음악의 구조를 명쾌하게 드러내는 능력, 그리고 아찔한 비르투오시티 같은 요소들로 구성된다. 또한 리흐테르의 음악에서는 주변을 모두 산화시킬 것만 같은 격렬함과 신중한 내향성이 서로 번갈아 나타난다. 음악 작품을 구성하는 여러 소우주의 맥동에 마음으로 공감한뒤 세부와 총체, 표현과 형식, 육체와 영혼이 각각 서로를 발견하는 그 지점을 찾아내는 능력, 그것이 바로 리흐테르가 가진 유일무이한 자질이다. 이런 지점들에서 음악은 피아노라는 형태의 구속을 벗고 오히려 피아노가 특정 음악 작품의 형태 그 자체가 된다.
--- p.44

만약 리흐테르가 이러한 “맹렬한 망각”을 모면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건 필경 그의 예술이 가진 뭐라 정의하기 힘든 보편적 면모, 즉 음악이 스스로 말문을 열게 만드는 일종의 영매이자 대변인과도 같은 해석자로서의 능력에 힘입은 바일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역설-음악 주변을 겸손하면서도 필수불가결한 영기靈氣처럼 감싸는 해석자-이 존재했기에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던 것이리라. [...] "나쁘지 않았어요. 솜씨 좋고 전문적이고 모든 것이 알맞았지요. 그러던 중 문득 내 눈이 촉촉해지더니 양쪽 뺨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어요. 누군가 내 심장을 움켜쥔 것만 같았어요."
--- p.49-50

미국 작곡가 모턴 펠드먼은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 음악을 내 뜻대로 함부로 다루려고 들 때마다 곧 어디선가 ‘도와줘!’ 하는 외침이 들려온다.” 어쩌면 리흐테르 역시 도움을 요청하는 이 고요한 외침을 듣는 청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는 언제나 전적으로 음악의 편에 선다. 결정권을 쥔 것은 음악이다. 작곡가도 아니요 피아니스트도 아니며 관객도 아니요, 음악 그 자체인 것이다!
--- p.50~51

그가 진정으로 관심을 보인 쪽은 피아노 연주가 아니라 ‘독보讀譜’였다. 악보에 담긴 음악을 소리로 ‘끄집어내’고 싶어 했던 것이다.
--- p.82

누가 보더라도 그는 피아노 연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진 않았다. 리흐테르는 우리가 CD나 MP3 플레이어를 사용하듯이, 즉 음악을 듣는 수단으로써 피아노를 사용했다.
--- p.83

“자택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리흐테르의 연주를 듣는 행운을 누렸다. 그는 우리를 위해 바그너와 차이콥스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드뷔시, 슈레커의 오페라, 말러와 먀스콥스키의 교향곡을 연주해주었다. 나로서는 리흐테르의 독주회와 이런 종류의 ‘음악 만들기’ 가운데 어느 쪽으로부터 더 큰 인상을 받았는지 그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 겐리히 네이가우스
--- p.84

그가 음악적 흥미를 유지할 수 있었던 생명선은 피아노가 아니라 오페라에 대한 열정이었다. 리흐테르는 아버지가 빈에서 구입한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전곡을 피아노 악보로 근사하게 묶은 악보책을 아홉 살에 처음으로 눈에 담았고 연주를 시도했다. 열두 살 되던 해의 여름은 〈발퀴레〉 악보를 달달 외우며 보냈다. “내 교육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모두 오페라에서 배웠다”고 했던 그였다.
--- p.86

“나는 이 연습곡을 너무 빠른 템포로 연주한다고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프레스토’ 템포 지시가 있는 곡이다. 빠른 건 쇼팽의 연습곡이지 내가 아니란 말이다!"
--- p.99

네이가우스의 가르침을 받은 그는 “내가 언제나 꿈꿔왔던 노래하는 음색”을 발견했다. 네이가우스가 남긴 동곡 녹음에 담긴 시적이고 노래하는 듯 선명한 음색을 실제로 들어보면 리흐테르의 소회를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다. 리흐테르는 한때 베토벤의 “저열한 취향” 운운했던 발언을 모조리 취소해야 했다. 피아노 소나타 31번은 베토벤의 작품 가운데 리흐테르의 프로그램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아이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 p.115

리흐테르가 하이든을 연주한 다음 슈만을 연주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바뀐다. 다른 악기, 다른 음색, 다른 리듬, 다른 표현의 특성이 대번 두드러진다. 앞선 연주와의 차이는 무척 뚜렷하다. ‘저건 하이든이요 이건 슈만’이라고 확실히 선을 긋는 것이다 … 전체를 파악하는 동시에 작품의 가장 작은 세부까지 놓치지 않는 그의 독보적인 능력은 마치 한 마리 독수리가 높은 창공으로 날아올라 저 멀리 지평선을 한눈에 품고 아울러 풍경의 아주 자그마한 세부를 일별해내는 능력과 닮았다. - 겐리히 네이가우스
--- p.118

리흐테르의 연주는 언제나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했으며, 잠시도 정주定住하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방랑자적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야누스와도 같은 피아니스트여서, 육중한 쇼팽 연주에는 독일 억양이 실리는 듯했고 신경질적이고 격정적인 슈만 연주에는 슬라브적 특징이 나타나곤 했으며 바흐 연주에는 낭만적 색채가 입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리흐테르는 영감이 찾아오지 않을 때조차 영감을 믿고 따르는 예술가의 권리를 고집했다. 그는 호기심과 사고 능력이 연주를 지배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할 권리와 템포, 음색, 페달 사용 등을 실험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주장했다. 그러한 선택은, 자신이 뚫고 들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음악 그 자체와 음악의 고유한 신비와 물음에 부합한다는 전제만 충족된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p.119

그의 기품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기백이 넘쳤지만 그러면서도 어딘가 달라진 듯했다. 주관적인 낭만성이 사라지고 객관적인 절대성을 획득한 것 같았다. 허나 이러한 객관성은 의고적인 고전성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종류의 것이었다 … 그것은 야망과 권력을 단념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위엄과 힘이었다. - 알프레드 시닛케
--- p.120

리흐테르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나 〈뉘른베르크의 장인가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나 〈엘렉트라〉 같은 대규모 오페라도 곧잘 연주했고, 동료들과 함께 브루크너와 먀스콥스키의 교향곡, 말러의 거대한 교향곡 3번 등을 연탄했다. 모두 당시 소련에서는 접하기가 불가능한 곡이었다.
--- p.129

리흐테르는 좀처럼 첫 곡부터 끝 곡까지 사이클 전체를 주파하는 타입의 연주자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잡식성 피아니스트”라 즐겨 불렀고, 좋아하는 곡이 아니면 연주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나는 음악을 너무도 좋아하고, 음악에 대한 사랑을 듣는 이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욕망을 아무래도 단념할 수 없다”고 했던 그였다. 작품에 대한 사랑이 생기지 않으면 연주 욕구도 일지 않았다. 가령 그는 쇼팽의 연습곡이나 드뷔시의 전주곡을 전곡 모두 연주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역시 마음에 드는 곡만 골라 쳤다. 심지어는 저 인기 있는 〈월광〉 소나타도 그는 외면했다. “모두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닌데 당연지사 아닌가!”라고 무뚝뚝한 얼굴로 말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연주를 결심할 때부터 전곡을 암보로 칠 수 있을지, 다시 말해 자신의 정신적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된 음악에 대해서는 평생 외경심을 품었다.
--- p.157~158

여든두 살의 노인 리흐테르는 역설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러시아 사람들은 내가 독일인이라 하고 독일 사람들은 내가 러시아 사람이라 하더군요” 하고 투덜댔다.
--- p.163

“내가 싫어하는 게 둘 있어요. 분석과 권력이죠. 그런데 지휘자는 이것도 저것도 피할 수가 없는 직업이더군요. 나는 다른 이들을 대신해 악보를 분석하는 일도 원치 않고 내 견해를 강요하는 일도 원치 않습니다.”
--- p.226~227

“모두가 완전히 미쳐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루한 인간이 되는 지경을 면치 못할 테니.”
--- p.262

슈만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자기 보호적인 성격을 가졌던 리흐테르에게 미디어가 창조한 위장막은 반가운 은신처가 되었다.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스핑크스 노릇에 만족했다.
--- p.317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라는 피아노의 두 전설을 비교할라치면 전자의 연주는 “피아니스틱”하고 후자의 연주는 “오케스트라 같다”는 평가가 가능할 법도 하다. 리흐테르는 평생에 걸쳐 관현악곡을 피아노로 연주했으며, 호로비츠와는 달리 실내악 뮤지션 및 가곡 반주자로 왕성히 활동했다. 동료들과 함께 연주하는 경험은 언제나 그를 살찌웠고, 보로딘 사중주단, 벤저민 브리튼, 다비트 오이스트라흐,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들은 그저 함께 연주하면 신명이 나는 음악적 동반자에 그치지 않고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만년의 리흐테르는 올레크 카간과 나탈리야 구트만 부부, 비올리스트 유리 바슈메트 같은 모스크바의 친한 벗들과 함께 자주 콘서트 무대에 섰다.
--- p.334, 336

올드버러 음악제와 투렌 음악제는 공통점이 있었다. 음악제의 규모는 작아도 그 체감은 단연코 컸다는 점이 그랬다. 리흐테르의 세계적 명성 덕분에 투렌 음악제는 설립되자마자 유럽 제일급의 음악행사로 떠올랐다. 세계 정상급의 음악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먼 곳까지 찾아온다는 점에서 투렌 음악제는 특별했다. [...] 수백 명의 사람들은 해마다 6월 달력에 루아르 계곡으로 향하는 음악 순례길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리흐테르는 이후 사반세기 넘는 기간 동안 이곳에서 다양한 레퍼토리를 실황 녹음했다.
--- p.352

리흐테르가 관객으로 찾는 연주회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공연 시작 직전에 도착해 연주자가 무대에 오르고 조명이 어두워지는 바로 그 시점에 객석 맨 뒷줄에 착석했다. 떠날 때도 연주자의 마지막 음이 사멸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관심을 보이면 관객의 음악 감상에도 지장이 있을 거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 p.353

시베리아에서는 때에 따라 매일같이 무대를 가지기도 했고 같은 마을에서 한 차례 넘게 연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남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엄청난 스케줄이었던 셈이다. 그해 봄에 있었던 연주회까지 합치면 1986년 한 해 동안 최소한 150회 넘는 연주회를 소화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의 일정에 포함된 오십여 개의 러시아 및 시베리아 마을 이름은 대부분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낯선 이름들이었다. 이를테면 벨리키예 루키, 나우모보, 르제프, 오레호보주예보, 라킨스크, 수즈달, 체복사리, 카잔, 우파, 첼랴빈스크, 쿠르간, 치타, 타이셰트, 아바칸, 슈셴스코예 같은 곳들이다. 무조건 한지閑地로만 돈 건 아니어서 이르쿠츠크나 프스코프, 울란우데, 크라스노야르스크, 니즈니노브고로드 같은 이름난 도시들도 거쳐 갔다. 십인십색의 공연장에서 각양각색의 피아노를 가지고 천차만별의 관객들과 만난 일정이었다. 어딜 가나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가 인적 드문 오지까지 찾아와준 데 대한 사람들의 감사였다. 개런티를 두둑이 줄 형편이 되지 않는 도시나 마을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 먼 곳까지 찾아와 달리 접할 길 없는 음악적 경험을 창조해주었던 리흐테르였다.
--- p.365

“나는 같은 장소에 오래 머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 장소가 어디건 말이다. 새로운 지역, 새로운 소리, 새로운 인상, 그것 역시 나름의 예술이다. 그러니까 나는 미지의 어딘가를 향해 떠날 때 행복감을 느낀다. 그게 없는 삶은 내게는 지루한 것일 뿐이다.”
--- p.366

콘서트 홀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패자와 승자를 따지지 않는다. 아울러 연주회장을 채우는 음악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관한 것이다. 가령 어느 청자가 연주회장에서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경험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은 시작과 끝을 가진 삶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며, 이 시간은 다른 관객들과 공유된다. 불과 몇 분 만에 음악은 소리로 된 삶의 주기를 펼쳐 보이지만, 음악은 삶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상징하고 긍정한다.
--- p.377

리흐테르는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의 고유한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했으나, 그에게 관객은 결코 루빈스타인이 ‘군중’으로 묘사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다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리흐테르에게 관객이라는 존재는 쇠렌 키르케고르가 ‘당신 개인’이라고 칭했던 개인들의 집합에 가까웠다. 이들 개인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고유한 경험을 가지고 음악과 만난다. 그들은 멱살을 잡고 을러댈 수도, 설득하거나 유혹할 수도, 혹은 접대할 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음악 그 자체가 개인의 상상력과 감정을 자극하는 초대장이기 때문이다. 리흐테르에게는 웅장한 콘서트 홀에서 만나는 수천 관객이나 시베리아 오지의 공장에서 만나는 오십 명의 관객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리흐테르를 향한 관객들의 호오好惡나 그의 연주와 그의 개성을 향한 호오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 p.379

“오직 관객을 위해서만 연주할 만큼 내가 이타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아니요, 나는 다른 누구보다 나를 위해 연주합니다. 만약 나를 위한 연주가 썩 잘 이루어진다면 관객 역시 뭔가를 얻어갈 수 있겠지요. 언젠가 어느 유명 음악학자가 내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연주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벽으로 주변을 감싸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에섭니까? 관객에게 관심을 둘 순 없나요?’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이랬습니다. ‘아니오. 나는 관객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아예 의식조차 되지 않습니다.’”
--- p.380

그는 관객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콘서트를 자주 개최했다. 스폰서들이 난색을 표하면 그는 검은색 실크해트를 뒤집어 무대 정중앙에 놓고 돈을 내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내도록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응수했다. 그는 쳄베르지에게 무료 공연을 선호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번은 암표상들이 공연 입장권을 모조리 사들인 적이 있었어요. 두둑한 주머니 덕에 돈을 내고 와서 고상한 체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공연하는 게 내 절실한 바람이지요.”
--- p.388~389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의 끄트머리에 앉을 수 있었던 건 둘도 없을 경험이었다. 그는 말 그대로 뭔가에 홀린 듯 보였다. 두 눈은 부릅떴고 호흡은 묵직해졌다. 일종의 자기 최면이랄까, 리흐테르는 마치 음악과 자신 앞에 놓인 피아노 외에 이 세상 모든 것을 잊어버린 듯 보였다.”
--- p.400

1950년대와 1960년대 원숙기 리흐테르를 규정하는 특징은 무엇보다도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려 했던 그의 초인적 의지였다. 다수의 러시아 라디오 방송 녹음이 보여주는 뒷일을 걱정하지 않는 대담무쌍, 죽기 아니면 살기를 각오한 느낌, 안전제일의 태도와 훌륭한 예술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결의 등은 리흐테르가 관객에게 행사한 가히 최면적 주술의 본질적 요소였다. 그의 대담성은 정신적이고 예술적인 견지의 대담성이었고, 우리 시대 스타 피아니스트들에게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성질의 대담성이기도 했다.
--- p.401

오로지 머릿속으로 선율을 흥얼거려 본 사람은 알 터이지만, 음악은 정적을 딛고 울려 퍼지는 것이다. 음악이 침묵의 경계선 너머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음악은 음악이기를 멈추지 않는다. 침묵의 영역에 접어든 음악은 오직 소리이기를 멈출 뿐인 까닭이다. 음악은 그 스스로를 넘어서는 동시에 그 스스로를 넘어 세상 속으로 그리고 사람의 정신 속으로 파고든다.
--- p.402~403

“어쩌면 음악의 가장 깊은 소망은 아예 들리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소. 심지어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길 바랄지도 모르지요. 다만-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면-감각과 감상의 저편 그 어딘가에서 순수한 정신, 순수한 영혼으로서 인지되고 사색되길 원할 따름이겠지요.” [...] 이는 심지어 악기와 음악, 인생이 하나로 만나는 그곳을 향한 염원을 나타내는 경지라고도 볼 수 있었다. 어쨌거나 리흐테르에게 그 경지는 달성하지 못한 가능성으로만 남았다. 그 길을 따라 더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들 가운데 리흐테르의 진정한 적장자라 부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 p.403

음악의 마법을 가능하게 하는 선결 조건인 즉흥성과 영감, 음악과 하나 되는 능력,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기 무섭게 홀연히 사라지곤 하는 신비로운 개성은 리흐테르와 소프로니츠키라는 두 러시아 피아니스트에게 공통되는 요소였다. 리흐테르라는 수수께끼는 양자 물리학의 현상에 견주어 설명할 수 있다. 확실히 측정하려고 덤비는 순간 물질의 상태는 바뀌게 마련이다. 리흐테르의 연주는 마술사의 날랜 손재주와도 같다. 그는 능수능란하고 우아한 솜씨로 스스로와 본인의 예술을 나타나게 했다가 금세 사라지게 할 줄 알았다. 마치 마술사가 모자에서 토끼를 꺼냈다 사라지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 p.407

리흐테르는 음악의 신비를 보존하려 애썼다. 악보를 손에 든 채 음악을 듣는다면 음악의 신선함과 즉흥성, 놀라움이라는 요소가 사라져 결국에는 음악의 마법이 실종되게 된다. 리흐테르는 ‘신선함’을 핵심적 개념으로서 여러 번 강조했다.
--- p.408

대체 리흐테르는 어떻게 그처럼 선형적 연습 전략을 유지하면서도 작품 전체의 모양과 형식에 대한 시각을 키울 수 있었을까? 어쩌면 리흐테르는 아예 그런 시각을 키우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놀라움이라는 요소를 강조하고 언제나 ‘신선함’을 추구하던 그였다. 자유롭게 내달리는 상상력, 위험을 기꺼이 떠안는 자세를 중시하던 그였다. 그랬기에 음악 전체가 사전 계획 없이 떠오르게 하는 것이 중요했으리라. 어쨌거나 그것은 이미 악보에 존재하는 것이기도 했을 테고 말이다.
--- p.414~415

리흐테르와 관련된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 중 하나가 바로 즉흥 연주다. 즉흥 연주는 작곡에 흥미가 있었던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표현의 수단이 되었을 텐데, 애석하게도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빅토르 젤레닌은 리흐테르의 즉흥 연주 솜씨가 대단했다면서 심지어 만년에는 오로지 즉흥 연주만으로 무대를 꾸민 연주회 기획도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리흐테르는 자신의 상상력이 ‘막다른 골목’에 몰릴까 걱정하여 끝내 이 생각을 현실로 옮기진 못했다.
--- p.423

이탈리아의 잡지 편집장 움베르토 마시니는 이렇게 썼다. “걸신이라도 들린 듯 소설과 영화를 먹어치운 음악가, 예술가, 인간 리흐테르는-친애하는 독자들이여 내 말을 믿어주시라-내가 지금껏 어디서도 보지 못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삶은 무대였고, 그의 삶은 매일이 창조였다. 그는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 쉬지 않고 연기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일상적’인 것은 무엇이든 경멸했고, 이미 행해진 것과 이미 본 것의 반복을 혐오했다. 그는 따분함을 견디지 못했다.”
--- p.440

“리흐테르는 워낙 가면이 많은 사람이라 첩보원을 했어도 문제없었을 거다. 반면 자신이 종사하는 예술을 향한 그의 진솔함은 광적으로 치열했다. 이런 면에서 그는 대단한 롤 모델이었고, 나는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너무도 가까워 나로서는 그의 어두운 면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리흐테르는 둘로 쪼개진 모순덩어리였다. 그는 한번 품은 원한을 결코 잊지 않았다. 자그마치 40년 전에 케이블카에서 누군가에게 발끝을 밟힌 기억마저 버리지 않고 살았으니 말이다! 그가 좋아한 영웅은 하나같이 복수에 성공하는 인물들이었다.”
--- p.443~444

리흐테르는 평생 지속적인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고, 그 대가로 자그마한 충격에도 부서지고 마는 정신적 체질을 안고 살아야 했다. 이것이 바로 슈만과 닮았던 어두운 측면이다. 리흐테르의 경우 이는 장기간의 우울증이라는 형태로 나타났고 이는 특히 그의 인생 말년에 더욱 심화되었다. 그의 말마따나 “한 사람의 인생을 음악에 바친 데 따르는 비용”이었던 것이다. 우울증에 빠지면 오랫동안 침대 신세를 지며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택했다.
--- p.458

리흐테르는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곡 피날레의 반짝거리는 패시지를 들은 루체비츠는 그 음색이 멘델스존과 비슷하다고 의견을 냈다. 그러자 리흐테르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 이 음악은 오페라 같아. 극장과 가까운 음악이지. 언제나 조바꿈이 있고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지지. 반면 멘델스존은 모든 게 완벽한 음악이고.” 그러면서 리흐테르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베버의 피아노 소나타 네 편을 한참 추어올린다.
--- p.490

모두가 훌륭한 음반이라 동의하는(짐작건대 리흐테르 본인을 포함하여) 녹음들도 있다. 가령 그가 평생에 걸쳐 연주한 베토벤 소나타 가운데 피아노 소나타 7번 D장조, 소나타 12번 A플랫장조,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d단조, 그리고 소나타 31번op.110(네이가우스가 문하생 리흐테르에게 강요하다시피 연주하게 한 레퍼토리다)이 여기에 해당한다.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과 소나타-예를 들어 소나타 a단조, 소나타 B플랫장조, 유작 소나타 c단조와 미완성 소나타 C장조-에서는 심지어 슈나벨과 브렌델마저 뛰어넘는 극적 너비와 깊이를 달성했다.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g단조와 환상곡 C장조, 1958년 부다페스트 실황 녹음인 〈토카타〉를 제일의 해석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1번과 2번 런던 녹음은 작곡가 스무 살 때의 작품다운 젊고 격정적인 낭만성을 십분 살린 연주다.
--- p.526~527

하이든의 음악에서는 다소 메마른 해석에 안주하던 과거의 전통에서 탈피하면서도 악보에 충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는다. ‘파파 하이든’ 음악의 풍성한 색감, 독창성, 유머를 모두 발굴해낸 연주다.
--- p.531

리흐테르는 레퍼토리가 방대했기 때문에 그가 남긴 음악 유산의 표현 범위 역시 마치 하나의 거대한 식물원처럼 모두의 개인적 욕망과 편애, 매료에 활짝 열려 있다. 그의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호기심, 본인의 직감을 향한 흔들림 없는 믿음, 순간의 판단을 믿는 성향, 우리가 영감이라 부르는(그리고 그는 보통 “신선함”이라 묘사했던) 미지의 뮤즈를 향한 끊임없는 구애 덕분에 우리는 그의 음반 속에서 역사적·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한 사람의 인간을 만나게 된다. 리흐테르가 남긴 음반들은 음악 공연이 언제나 정신이자 삶이며 영혼이자 육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 들을 때마다 가슴이 훈훈히 데워진다. 리흐테르는 그가 남긴 음반에 서린 특유의 물리적 실재감을 통해 지금도 멋지게 살아 있다.
--- p.53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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