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계포란은 또 무엇이냐?”
“닭에도 금닭과 은닭, 동닭이 있습니다. 금닭은 벼슬에 금테를 두른 닭으로 귀한 자손을 본다는 닭입니다. 은닭은 좋은 관직에 출사한다는 뜻이며 동닭은 말 그대로 똥닭으로서 사람의 목구멍에 들어가는 식용 닭을 일컬으며 천한 신분을 말합니다.”
“금수저는 영원히 금수저이듯이 금닭으로 태어났으면 죽을 때까지 금닭이지 어찌 동닭으로 갑자기 신분이 변할 수도 있단 말이냐?”
“입신양명해서 잘나가던 정승 판서가 어느 날 갑자기 역모 혐의로 저잣거리에 목이 걸리면 그 자식들은 하루아침에 죽임을 당하거나 노비가 되지를 않습니까?”
“너는 맞는 말을 해도 왜 그렇게 싸가지 없게 하느냐?”
자신의 비밀을 꿰뚫어 보며 희롱하는 것만 같았다.
--- p.40
“내 어찌 대감을 살릴 수 있겠소이까.”
대원군은 싸늘한 대답을 날렸다. 대원군과 민겸호는 처남 매부 사이다. 민겸호는 대원군의 부인과 남매 사이로 손아래 남동생이다. 때문에 임금에게는 외삼촌이 된다. 훈련도감 군졸들을 하루아침에 실직시키고 별기군을 창설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민영환은 그의 아들이다. 한편, 민겸호를 놓친 난군들은 운현궁으로 몰려갔다. 왕당파와 대척점에 있는 대원군 이하응을 만나기 위해서다.
“대원위 대감을 만나면 무슨 수가 있겠지. 가자! 운현궁으로!”
성난 구식군대 출신들이 운현궁에 도착했다.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자초지종을 말하게.”
--- p.80
“훠이~훠이~훠~어이!
갈 곳 없다 동대문 떠돌지 말고, 배고프다 시구문 배회 마라.”
살점 세 조각을 동쪽에 던졌다.
“원한 맺혀 광화문 떠돌지 말고 억울하다 숭례문 떠돌지 마라.”
살점 두 조각을 남쪽에 던졌다.
“한 맺혀 영추문에 머물고 서대문을 떠도는 귀신은 물렀거라.”
살점 한 조각을 서쪽에 던졌다.
“숙정문에 걸린 너도 물러나고 신무문에 매달린 너도 꺼져라.”
나머지 살점을 북쪽에 던졌다.
--- p.130
“중전! 고정하시오.”
“세자를 못 볼 줄 알았는데 기뻐서 그렇습니다.”
“서로 합심하여 민심을 수습합시다.”
뼈있는 한마디다. 민승호, 민겸호, 민태호로 대표되는 민씨 일족과 거리를 두고 국정을 헤쳐 나가자는 제안이다.
“그들이 뭘 잘못했다고 그러십니까?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왕비는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살아있는 부인을 죽었다고 발표한 줏대 없는남편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었다. 왕비가 국혼을 행한 곳은 운현궁이다. 친정 역할을 했던 운현궁에서 초야를 치른 왕비는 3일 후, 창덕궁에 들었다. 창덕궁에서 신혼을 보낸 왕비는 대원군이 주도한 경복궁이 완공되어 경복궁으로 이어했다.
--- p.150
“관묘 위에 신묘한 약수터가 있습니다. 그 약수터로 말할 것 같으면 한강에 입을 대고 있는 용의 왼쪽 수염에 해당합니다. 전하께서 약수터 물을 매일 마시면 황제가 될 수 있습니다.”
천기누설이다. 평범한 사람이 발설했다면 임금을 희롱했다고 능지처참이다. 하지만 이 여자는 자신의 여자가 애지중지하는 여자다. 또한, 자신이 진령군이라는 군호를 내려준 신하다.
“황제는 천하에 하나, 연경에 한 분 계시는데 또 하나의 황제라니 당치 않은 말입니다.”
“전하! 전하는 틀림없이 황제가 되실 것입니다. 제 말이 거짓이라면 제 목을 쳐도 달게 받겠습니다.”
“전하! 전하가 황제가 되면 소첩이 황후가 되니 이 아니 좋습니까?”
왕비가 맞장구를 쳤다.
“중전마마! 아니, 황후마마! 감축드리옵니다.”
--- p.180
“천자 둘이 나올 명당 터를 알려줄 터이니 아버지 묘를 이장하십시오.”
“정말이오?”
“개인 이하응을 위한 조언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고언이니 서둘러 주십시오.”
대원군이 아버지 묘를 이장하기 위하여 정만인이 비정한 가야산 자락을 찾았다. 허나, 그곳에는 절집이 있었다. 더구나 명당의 혈(穴)이라고 짚어준 곳에는 석탑이 있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대원군이 아니다. 계략을 꾸며 절을 불태우고 석탑을 부숴버린 대원군은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 묘를 이장했다. 이곳이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의 남연군 묘다. 그로 부터 7년 후 대원군은 둘째 아들 명복을 낳았고 그가 현재 왕의 자리에 있다. 신통방통을 느낀 대원군이 정만인을 불렀다. 이제는 찾아간 것이 아니라 운현궁으로 부른 것이다.
--- p.214
1892년. 평화로운 농촌 마을 고부에 조병갑이 부임해 왔다. 고부는 김제 정읍을 흐르는 만경강을 끼고 있는 곡창지대다. 지방관들은 생산물이 많이 나오는 지역을 선호했다. 평강이나 강릉처럼 높은 사람들이 산천 경계 좋은 곳을 유람하다 들리는 고장은 고관대작들 뒷바라지에 고달팠지만, 농토가 많은 지역은 그렇게 접대할 필요도 없고 콩고물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조병갑은 양주 조씨 집안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조병갑의 증조부는 의령현감을 지낸 조종철이고, 조부는 진주목사를 지낸 조진익이며 아버지는 태인군수와 호조참판을 지낸 조규순이다.
--- p.240
“똑바로 말하지 않겠느냐? 신명시가 무어냐?”
“신명신이오.”
“날리면 이라고?”
“신, 명, 신이오.”
“앞으로 신어도 신, 뒤로 신어도 신, 네 신은 앞뒤가 없구나. 몇 살 먹었느냐?”
“마흔아홉이오.”
“이년이 왕비보다 더 먹었으면서도 언니, 언니하고 사기 쳤구나.”
“신을 모시는 신딸은 인간 세상의 나이를 별로 따지지 않습니다. 나이 먹은 사람이 신방을 찾아가 점을 볼 때 나이 어린 무당이 야, 너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국모를 속여 먹어? 이 나쁜 년 같으니라구.”
--- p.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