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부터는 세상 어느 남자도 이 사람보다 내게 가까운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전에 이 아파트에 세들어 살던 사람에게서 거의 공짜로 사들인 이 중고 더블베드에서 새벽녘까지 몸을 뒤척였다. 그 침대는 온통 아라베스크 무늬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번쩌거리는 갈색 얼룩이 있었다. 대부분의 오래된 가구들과 마찬가지로 이 침대도 쓸데없이 넓었다. 너무 넓어서 한번은 잠에서 깨서 미카엘이 일어나서 나갔나보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는 저기 멀리에 자기잠자리에 푹 파묻혀 있었다. 그는 거의 확실하게 새벽에 내게로 왔다. 육감적이고 격렬하게. 그는 검고 유연하고 조용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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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만났다. 어느 겨울날 아침 아홉시에 나는 계단을 내려오다가 미끄러졌다. 한 낯선 청년이 내 팔꿈치를 잡아주었다. 그의 손은 강하고 엄청나게 자제력이 있었다. 나는 짧은 손가락과 납작한 손톱을 보았다. 관절 부위가 약간 거뭇한 창백한 손가락이었다. 그는 서둘러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막아 주었고 나는 아픔이 사라질 때가지 그의 팔에 기대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넘어지는 것은 당활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탐색하고 묻는 듯한 눈과 심술궂은 미소들. 그가 나를 잡아 주었을 때 나는 어머니가 짜주신 푸른 울 옷소매 사이로 그 사람 손가락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예루살렘의 겨울이었다.
--- pp. 8-9
보통사람이 철저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거짓은 늘 저절로 드러나버린다고 말이다. 그건 마치 너무 짧은 담요 같은 것이다. 발을 덮으려고 하면 머리가 드러나고 머리를 덮으면 발이 삐져 나오고. 사람은 그 구실 자체가 불유쾌한 진실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채 뭔가 숨기기위해 복잡한 구실을 만들어낸다. 반면에 완전한 진실은 철저하게 파괴적이고 아무런 결과도 가져다 주지 못한다. 보통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용히 서서 지켜보는 것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것은 그것 뿐이다 조용히 서서 지켜보는 것
--- p.44
나는 남편을 잠에서 깨우곤 했다. 그의 담요 밑으로 파고들고, 온 힘을 다해 그의 몸에 달라붙고, 그의 몸에서 내가 원하는 자기 통제를 쥐어짜내고, 우리들의 밤은 어느 때보다도 더 격렬해졌다. 나는 미카엘이 내 몸과 자신의 몸에 놀라게 했다. 소설책에서 읽었던 다채로운 방법으로 그를 이끌었다. 영화에서 대충 배운 고통스러운 방법들. 사춘기 때 들었던 키득거리는 여학생들의 소곤거림에 나왔던 모든 것. 가장 흥분되고 고통스러운 남자들의 꿈에 대해서 내가 알고 짐작해 낸 모든 것. 나 자신의 꿈이 가르쳐준 모든 것. 떨리는 환히의 불꽃. 얼음같이 차가운 웅덩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타오르는 경련의 물결. 기분 좋게 부드러운 쓰러짐.
--- p.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