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종교 서적을 좋아하시나요. 아니, 성경조차 멀리하고 싶으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을 알기에 신부도 아니고 목사도 아닌 제가 이런 책을 썼습니다.
---「5p. 이 책을 읽는 분에게」중에서
물론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도 그리스도교를 오해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적이 있습니다.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 괴로워했지요. 그뿐만 아니라 더 본질적인 문제인 ‘하느님의 존재’에 관해, 오늘까지도 의문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하느님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의문을 품었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신앙은 99%의 의심과 1%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19p. ‘1장 그리스도교와 나’」중에서
예수는 슬퍼하면서도 모든 것을 이해해 줍니다. 배우자는 그런 모든 것을 무시하고, 단지 ‘바람을 피웠다’는 이유로 비난하지요. 그런데 예수가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 동반자 같은 존재가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갈색 수염을 가진 서양인인지 동양인인지 알 수 없는 초상화를 보여 주며, “이 사람이 당신 곁에 늘 함께하는 예수입니다.”라고 했을 때, 거부감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22p. ‘1장 그리스도교와 나’」중에서
‘예수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가 없다. 버터 냄새 나는 서양인이 아닌가? 그가 말하는 것은 우리와 거리가 있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당시의 제자들 역시 예수가 자신들의 생각과 아무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그들과 공통점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31p. ‘1장 그리스도교와 나’」중에서
그런데 신약 성경에 쓰여 있는 하느님의 이미지란 그러한 무섭고 엄한 아버지의 이미지가 아닙니다. 엄한 아버지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머니에 가까운 이미지입니다. 요즘의 어머니는 너무 간섭을 많이 해서 여러분이 싫어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신약 성경에서 예수가 말한 하느님은 우리의 이상적인 어머니입니다. 요컨대, 아이와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아이가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결국 용서하고, 아이의 슬픔을 마음으로 위로해 주는 어머니입니다.
---「59~60p. ‘2장 성경에서 드러나는 예수의 진실’」중에서
아무도 예수의 진의를 몰랐습니다. 그의 진의는 오직 한 가지, 하느님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뿐이었는데 말입니다. 그의 내면이 모두 이 일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73p. ‘2장 성경에서 드러나는 예수의 진실’」중에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예수를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이윽고 그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 눈물만으로 그때까지 겪어 온 자신의 슬픔을 하소연했던 것입니다.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였다’는 간결한 표현이 그 순간 그녀의 비참함과 괴로움을 뚜렷하게 전해 줍니다.
---「83p. ‘2장 성경에서 드러나는 예수의 진실’」중에서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여자가 예수를 보려고 모인 군중 뒤에 숨어 머뭇머뭇, 그의 옷에 손을 대어 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머뭇거리며 손가락을 댔을 뿐인데, 예수는 그녀가 겪어 온 지난 모든 고통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이해합니다.
---「88p. ‘2장 성경에서 드러나는 예수의 진실’」중에서
“당신은 하느님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이 가혹한 현실에 하느님의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하느님은 침묵을 지키거나, 분노하는 모습으로만 보일 뿐입니다. 예수, 당신은 사랑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인간은 사랑보다도 당장 현실에서 도움이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유다의 심리는 복잡했습니다.
---「134p. ‘2장 성경에서 드러나는 예수의 진실’」중에서
영웅적인 화려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그래도 견딜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해받으며 사람들에게 모멸의 대상이 되어 그들이 뱉는 침을 맞으면서 죽는 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자신이 맞이하게 될 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 영웅적이지 않은 죽음임을. 오해의 시선을 받으며, 조소 섞인 말을 들으며, 사람들이 뱉는 침을 맞으며 죽어 갈 것임을 예수는 알고 있었습니다.
---「139~140p. ‘2장 성경에서 드러나는 예수의 진실’」중에서
저는 성경에서 예수가 병자를 고친 기적 이야기를 육체적 고통을 고쳤다기보다는 인간의 고독을 함께 나누려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읽고 있습니다. 제가 성경을 그런 방법으로 읽게 된 것은, 병을 앓고 난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기적 이야기도 저에게 매우 의미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191p. ‘3장 성경의 수수께끼’」중에서
이번에는 제 신앙의 위기, 정말 부끄럽지만 제가 신앙을 버리려 했던 일을 잠깐 이야기하겠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신앙의 위기가 있었다 해도 좋습니다. 저는 ‘아멘’이라는 말조차 싫은 적이 있었으니까요. 뭔가 의미도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것을 되뇌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좀 더 강해지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팔도 다리도 없는 아이가 태어난다. 그리고 수술을 해도 몇 개월이나 고생하다가 결국 죽어 간다. 왜 이런 어린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가? 만일 하느님이 있다면 왜 이 갓난아이에게 이런 무의미한 고통을 겪게 하는가?’
---「200p. ‘3장 성경의 수수께끼’」중에서
아름다운 것을 끌어안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고 쉬운 일입니다. 쉬운 일은 사랑과 무관합니다. 아름답지 않은 것, 추한 것을 끌어안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성경에 분명히 쓰여 있습니다.
---「214p. ‘3장 성경의 수수께끼’」중에서
하느님을 믿으면 현실적인 이익이 없음을 예수가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 줬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있는 동안, 하느님은 전혀 구원의 손길을 보내지 않은 듯 보입니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도 구해 주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현실적인 그 어떤 도움도 예수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을 때까지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조금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 점이 다른 종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34~235p. ‘3장 성경의 수수께끼’」중에서
저는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하느님도 부처님도 없는 걸까.’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순간, 오히려 거기서 신의 의미를 인정하게 되며, 거기서 비로소 참다운 믿음을 가지게 된다고 믿습니다. 이 점은 예수가 자신의 삶을 통해서 모두에게 드러내 보인 것으로, 제가 계속 언급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역시, 신이 하는 일에는 다 의미가 있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 꽤 긴 세월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진심으로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35~236p. ‘3장 성경의 수수께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