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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314g | 128*188*20mm
ISBN13 9791170401605
ISBN10 11704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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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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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는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머니의 얼굴이 낯설었다. 무엇엔가 씌워 있었다. 아니 세상 전체가 달라져 있었다. 어제의 하늘, 어제의 산, 어제의 길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땅에 와 있는 듯싶었다. 아니 하늘과 산과 땅과 길은 같은데 그가 달라져 있는 것 같았다. 어제의 그는 죽어 없어지고 전혀 새로운 아이로 바뀐 것 같았다. 해는 머리 위에 있었고, 그림자가 발에 밟히었다. 밟히는 그림자를 보며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 p.29

사나운 꿈을 꾸고 있는 듯싶었다. 빨리 그 꿈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혀끝을 아프게 깨물었다. 혀끝의 아픔이 정수리와 가슴으로 번졌다. 꿈이 아니었다. 아들인 그를 조선 제일의 뱃놈 장사꾼으로 만들고 집안의 한빈에서 벗어나 떵떵거리고 살고 싶어 한 아버지의 삶을 흙 속에 파묻고 싶었다. 아버지의 몸부림은 탐욕이었다. 초의는 그 탐욕을 매장하고 있었다.
--- p.62

“아, 풀옷이라는 뜻의 초의! 아주 좋습니다. 누구의 시에 ‘초의’란 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벽봉이 찬탄하고 초의에게 말했다.
“초의가 무슨 뜻인지 너는 잘 알 것이다. 자기한테 남다른 재주가 있다고 건방지게 까불지 말고, 항상 풀옷을 입은 사람같이 소박하고 늘 인욕과 하심으로 세상을 살라는 뜻이다.”
--- p.159

절 아랫마을의 주막 앞을 지나면서 몇 번이든지 들어가서 처녀를 만나고 싶었다. 그녀에게만은 작별 인사를 하고 가고 싶었다. 가슴이 아렸다. 소중한 어떤 것인가를 잃어버리고 가는 것 같았다. 이제 헤어지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듯싶었다. 일단 주막을 지나쳤는데 걸음이 자꾸 주춤거렸다. 몸을 돌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발을 돌리지 않았다. 이제 그는 철부지 행자가 아니었다. 계를 받은 사미승이었다.
--- pp.176~177

“그런데 초의 스님, 자칫하면 스님의 발랄한 재주와 총명함과 세상을 뚫어보는 눈이 오만에 떨어질 수도 있음을 아십니까?”
“빈도는 가끔 한 마리의 기러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사옵니다. 지금 내가 날아가고 있는 이 길은 옳은 길인가 의심하고 선지식에게서 확인받고 싶어지곤 하옵니다. 빈도가 정 대감을 찾아온 것도 그 까닭이옵니다.”
--- p.244

중은 탱화 그려 장엄하고 범패하고 바라춤 추고 향기로운 차를 내어 부처님과 중생들을 즐겁게 하는, 실질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참선을 핑계로 벙어리 중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신도들의 시주만 얻으려 하고 절밥만 축내는 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 쓰고 글씨 쓰는 것은 여기로 할 일이지 그것만 앞세우고 빈둥거리는 풍류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천 강을 비추는 달 같은 중이 되어야 한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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