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페넬로페 스미스 여사를 존경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녀가 대자연이라는 큰 무대 위에서 늘 인간과 자연의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담당해 온 훌륭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을 인간세계의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며 방관자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대자연을 ‘구경’만 하지, 제대로 ‘관찰’하지는 않습니다. 스미스 여사의 이 책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뛰어 넘어 대자연이 가진 내면의 영적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인간이 육체와 영혼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듯이 대자연 역시 영혼의 메시지가 외형적 형체를 통해 표현된 것입니다. 형체의 아름다움에 이끌릴 수도 있지만, 애니멀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바로 대자연이 품고 있는 영혼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사랑입니다.
현대인들은 본인의 의사와 달리 대자연으로부터 격리되어 살아왔습니다. 방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듯이 두 눈을 통해 대자연을 바라볼 뿐입니다. 누구나 ‘저 밖에’ 존재하는 대자연을 만나고 싶어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문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독자들이 대자연과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합니다. 이 책에서 깨달은 내용을 가슴 깊이 새기고 진정한 애니멀 커뮤니케이션을 해 본다면,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자연, 인간, 삶을 전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대하는 글」중에서
지난 몇 년 동안 동물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깨달은 가장 큰 교훈은, 동물이 전체적인 존재이며 그들과의 관계에서 얻은 지혜가 바로 애니멀 커뮤니케이션이 추구하는 핵심이라는 점입니다. 동물이 지닌 영적인 본질을 인정하게 되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동물은 인간보다 지능이 낮은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며, 무조건적 반응이나 무조건 반사의 법칙에 따라 반응하는 하등의 존재가 아닙니다.
물론 동물은 인간과 다릅니다. 다양한 종들이 서로 다른 신체적 특징, 유전적 배경, 감각의 패러다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경험합니다. 동물은 자신이 속한 종의 신체적 특징과 개별적인 정신적, 영적 본질을 결합하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삶의 목적을 추구합니다.
동물을 인간과 다른 ‘대상’이나 생태학적 형체로만 판단하면 그들을 깊이 이해할 수 없으며, 그들과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사회, 문화적으로 세뇌된 편견이나 선입견을 없애고 동물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 인간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본성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일반적인 습성과 종에 따른 특징을 이해하는 데 생물학과 행동학 관련 서적들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동물 각자의 특성, 생각, 기대, 목적, 꿈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살아 있는 존재의 영적인 부분과 육체적인 부분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동물을 바라볼 때 그들을 영혼과 육체, 감정과 생각, 의도와 목적을 가진 총체적인 존재로 인식해야 합니다. 영적인 관계를 맺을 때 육체의 문제는 모두 사라집니다. 영혼이 현실에서 개별적인 형체로 창조되어 표현된 것이 바로 육체입니다. 본질적이고 영적인 만남이 이루어져, 존재가 존재를 만날 때, 하나가 되는 느낌과 친밀감이 자리 잡습니다.
이 깊은 친밀감과 존경심을 느끼는 순간은 마법과 같습니다. 이런 만남을 통해서 열린 커뮤니케이션과 신뢰,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싹틉니다.
동물을 감상적으로 접근하거나, 나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대하는 사고방식은 진정한 관계를 맺을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깊은 배려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람이나 동물과 영적인 관계를 맺어본 사람이라면, 영적인 존재로서의 통합과 하나됨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됩니다. 사람이 미처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동물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동물이 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차분히 행동하며 커뮤니케이션에 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물도 경험을 통해 두려움과 고통을 인지할 수 있으며,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생화학적인 반응과 자연의 본능에 따라 사람에게서 도망치거나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영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고 관계를 맺는 능력이 탁월한 동물도 있지만, 인간이나 다른 동물과 관계를 맺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 동물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차분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면서 공격성을 버리고 동물을 존중하며 관계 맺기에 나선다면 대부분의 동물은 마음의 문을 열고 관심을 보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적어도 사람을 주변 환경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입니다. 평생을 사람과 가까이 살아 온 가축들은 인간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야생동물보다 커뮤니케이션을 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야생동물보다는 반려동물과 소통하는 게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이 두 부류와 모두 커뮤니케이션을 경험하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입니다. 야생동물이 사람을 친근한 영혼의 존재로 인정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동물을 깃털이나 털로 온몸을 감싼 또 다른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동물은 동물 그 자체로 존재합니다. 서로 다른 감각, 생각, 자기표현의 방법,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각자 살아가는 세계를 영적으로 교류하고 공유하는 일은 큰 기쁨을 줍니다. 그러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구분하고 차별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차이점을 인정하고 축복하며 총체적인 본질로 하나가 되는 진정한 통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서 배우고 지혜를 나누며 함께 조화롭게 성장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애니멀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자 목적입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