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은 네 복음서 중에서 가장 명백하게 신학적이며, 모든 주요한 기독교 교리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데, 그것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 타락했고 구속된 인류,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스도의 사역, 성령의 인격과 사역, 교회와 교회의 사명, 새로운 세상에서의 삶 등이다.…그러나 이 복음서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적 초점은 그리스도의 인격이다(이것이 결코 그분의 사역과 분리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한, 신약성경에서는 요한이 아마도 가장 분명하게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신성은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분은 신적인 동시에 인간적이시다. 어떤 순간에는 이것이다가 다른 순간에는 저것이다가 하는 게 아니라 매 순간 둘 다인 것이다.
---「서론」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이 진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택하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신 것을 이해하는 방식과도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 복음서의 많은 부분에서 만나게 될 진리다. 자신의 백성을 택하시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보다 ‘선행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몰래 행하시는’, 말하자면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였을 때는 우리에게 ‘그렇다’라고 말씀하셨음에도 심판 날에는 ‘아니다’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는 그런 하나님이란 없다는 것이다. 성자는 성부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선택하시는 하나님이다.
---「1장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하신 하나님」중에서
우리는 요한이, 세상의 창조에 그 말씀이 밀접하게 관여했다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과학적으로 우주의 기원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쓰고 있지 않음을 주목하게 된다. 그의 요점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이고 송영적인 것으로, 그리스도의 위대함은 그분이 눈에 보이는 우주를 창조할 때 중재자가 되신 데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모든 존재의 핵심에 있는, 통합시키는 원리다.
---「2장 예수 그리스도와 창조된 우주」중에서
이 복음서 기자는 ‘육신이 되신 말씀’의 영원하신 영광에 대해 요약한 이 경이로운 서론 부분을, 그분이 오신 것이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증언하는 말로 마무리한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그분이 신적 충만함의 무한한 풍요로움을 그분의 백성에게 “은혜 위에 은혜”로 나누어 주셨다. 이 구절은 종종 계속되는 ‘은혜의 은사들’, 그래서 ‘연이은 축복들’(NIV)로 이해된다. “삶 전체에 걸쳐 우리는 끊임없이 ‘은혜 대신 은혜’를 받고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어떤 상황을 다루더라도 성공적이며 적합하기 때문이다.
---「3장 예수 그리스도와 구속사」중에서
계속해서 예수님을 추구하기 위해서 우리의 동기가 완전히 공평무사해야 하는 건 아니다. 엄격히 말해서, 이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순수한 동기란 없다. 하지만 예수님의 질문은 위선적인 비현실성에 대한 건전한 도전이다. 그것은 인생의 매 단계에서 부딪히는 엄중한 질문이며, 그분은 우리가 새로운 경험의 기로에 설 때마다 우리에게 ‘무엇을 구하느냐?’라는 질문을 들이대는 짓궂은 취미를 갖고 계신다.
---「4장 왕의 출현」중에서
예수님은 우주의 왕으로 오신다. 그분은 “온 세상이…따르는”(19절) 왕이시다. 이는 물론 과장된 표현이다. 궁지에 몰린 바리새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는 적절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요한복음이 종종 그렇듯이, 이 말에도 은연중에 진리가 담겨 있다. ‘세상’은 실제로 예수님을 좇았다. 이는 그 종려주일의 순례자들이 인종적으로 다양했기?예수님을 찾는 몇몇 헬라인에게서 즉각 구현된 다양성(20절)?때문만도 아니고 실로 오순절 때 새로 탄생한 교회의 핵심이 될 군중들 때문만도 아니며(행 2:9-11) 심지어는 요한이 그의 복음서를 쓸 때 이방 나라들로 교회가 감동적으로 퍼져 나갔기 때문만도 아니다. “온 세상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인류의 삼분의 일 이상이 넘으며(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열방 가운데서 시시각각으로 늘어나는 우리 시대의 국제적 그리스도인 공동체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왕이신 어린양이, 자신의 피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사서 하나님께 드리신”(계 5:9) 분으로서 자신의 보좌 위에 환호를 받으며 앉으실 그 날을 기대한다.
---「5장 왕의 행진」중에서
수십 세기 동안 위대한 꿈을 꾸고 세계 전체에 자신의 왕국을 구축해 온 인간 구세주들의 큰 문제는, 그 과정 속에서 개인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희망과 고통, 갈등과 성취라는 개인의 작은 세계는 위대한 포괄적 계획 옆에서 존재 의의가 희미해진다. 따라서 개인은 소모품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골고다의 십자가 위에서 다스리시는 이 왕은 다르다. 여기에 세계 전체를 포괄할 만큼 포용력이 있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마 28:18)를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우리 각자를 개인적이고 사랑 가득한 헌신으로 포용하는 왕이 계시다.
---「6장 왕의 대관식」중에서
여기에는 믿음으로의 초대가 있다. 이 복음서가 결론부에 이르면서 요한의 목적과 도전은 분명하고 뚜렷해진다. 그가 복음과 그분의 삶과 사역의 ‘표적들’과 그분의 가르침 및 주장들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예수님을 제시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요한은 ‘믿음’으로 반응하라고 권한다. 즉, 그분의 죽음이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희생양의 죽음임을 믿고 제자의 길을 가면서 그분을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따르고, 우리 자신을 주님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라는 것이다.
---「7장 왕의 현현」중에서
그들이 함께 나눈 식사는 또 다른 차원을 지녔다. 그 성찬 축하연은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상징하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다(계 19:9). 그때 사람들은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할” 것이다(눅 13:29). 지금 그분의 초청에 응답하는 것은 그때의 축제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음을 보장하는 것이다.
---「8장 선교의 시작」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