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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맑은 낙타를 만났다

푸른사상 시선-170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3건 | 판매지수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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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3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96g | 128*205*7mm
ISBN13 9791130820156
ISBN10 113082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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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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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 사람들끼리 국숫집에서 국수를 먹는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기어이 흥을 놓다 콧물 훌쩍인다
여름비는 차갑게 내리고
집에 갈 생각 안 한 채
버스 끊긴 지 오래
선한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불어터진 국수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달빛 몸 불어오고
파꽃 여물어간다
---「비는 내리는데」중에서

꿈에서 본 낙타는 없었다
등에는 낡은 시간과 하품하는 오후가
끄덕끄덕 가고 있었지
방향과 출구는 달라도 평생 동안 한 길로
가는 뒷모습
지는 해 닮았어

붉은 것 속에는 말하지 못한 노래가 살고 있지
희미한 방울 소리 내며 세상으로 갔던 느린 길

길이 없을 때 길을 만들고
길 잃었을 때 눈 맑은 낙타를 만났어
뒤돌아보지 않고 쉼 없이 가야만 했던
고단한 생 한 점 한 점 찍으며
꿈 접지 못한 채
파닥거리며, 쓰러지며, 잠을 이기며
눈먼 호랑이 찾아 순례길 떠났다는 소식

낙타 등에서 울어본 사람만 아는
풍경 소리 들으며
---「느린 길」중에서

고라니 입술 사이로 저녁이 잠들면
새벽까지 총소리에 벌벌 떨던
숨소리 아슴하게 들리는 오월
선량한 연둣빛 사람들 살고 싶다고
울음 쌓인 금남로 거리

눈 감지 못한 자식 보듬고 오열하는 어머니와
미얀마 어머니는 하나이다

총으로 얻은 것은 결국 총으로 돌아가고
평화는 승리로 일어나
빨간 코트를 입은 오월이 힘내라고
임을 위한 행진을 부른다
---「빨간 코트를 입은 오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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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진원의 시는 “절룩이는 시간과 죽음의 통로를 거쳐/겨우 달리는 꿈”(「뼈의 집」)을 꾸는 사람의 시다. “울어서 될 일이면 날마다 울겠지만/울어서 될 일”(「운다고 옛사랑이 오겠냐마는」)은 아니기에 숨죽여 우느라 시의 미학까지 죄다 먹어치워버렸다. 그래, 이런 지경에서 시가 무슨 대수인가? “한 나무가 쓰러지면 옆에 나무들 따라서/시들어가기에”(「서서 먹는 밥」) 서서 밥 먹으며, 야간 일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는 사람의 원망과 미움과 “돌덩어리처럼//진드기처럼//단물 빠진 껌처럼”(「상처」) 달라붙는 상처를 다만 보아라. 그러다 보면 “길이 없을 때 길을 만들고/길 잃었을 때 눈 맑은 낙타를”(「느린 길」) 만나게 되는 비법을 함진원 스스로 잘 일궈내고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되리라. 비로소 이쯤에서야 시는 정녕 살아야 할 의미를 못 느껴 죽고 싶다는 사람들을 “엄마 같은 마음”(「숨이 붙은 엽서」)으로 달래는 이야기가 되고 노래가 되기도 한다.
- 고재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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