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울에게서 다른 모든 초대교회의 기독교 저술에 비해 더 분명하게 발전되고 심오하게 통찰된 공동체관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그가 공동체 사상에 대한 어떤 체계적인 연구물을 제시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대부분 특정 공동체의 문제들에 대응하여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기 때문이다. 그의 서신들 중 소수만이 더 폭넓은 청중을 염두에 두고 좀 더 일반적인 용어로 주제를 다룬다. 그리고 이 소수조차 철저하게 조직적인 사고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바울이 이론적 성찰과 미묘한 쟁점을 모두 다룰 능력을 겸비한 활동적이고 창조적인 사상가임을 보여 준다. 그의 서신들은 또한 그가 자기 견해의 실천적 중요성에 충실하게 관심을 가졌고 자신이 권장하는 바들의 실제적 결과에 직접 관여한 사람이었음을 밝혀 준다.
---「들어가는 글」중에서
1세기 중엽 그리스-로마 세계의 두드러진 특성은 광대한 다양성에 있다. 로마 제국이 당시 지중해 전역을 지배했고 그리스 문화가 제국의 가장 먼 변방까지 침투하였지만, 지역적인 통치 형태와 생활 방식들은 계속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사회 조직에 대한 새로운 형태들도 번성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이 관여하는 공동체는 주로 두 가지 형태가 있었다. 하나는 ‘폴리테이아’(politeia)로, 이는 그들이 사는 도시나 국가의 공적인 생활을 의미하고, 또 다른 하나는 ‘오이코노미아’ (oikonomia)로, 이는 그들이 출생하거나 합류하게 된 가정의 질서를 가리킨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두 유형의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만족을 제공했다. 그러나 많은 노예와 일부 피부양자들 그리고 지역사회의 유동 인구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1 사회문화적 배경과 종교적 배경」중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과 같은 전형적인 가정에서는 열 명에서 열두 명 정도의 성도와 아이들이 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더 넉넉한 규모의 가정집에서 모인 “온 교회” 모임은 아마도 식당과 여분의 공간이 포함된 더 큰 윗다락에서 열렸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40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 번에 이런 모임을 가졌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더 작은 모임 또는 더 큰 모임을 월등히 큰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회당에서와 같이 열 명의 사람들이 있어야 모임이 구성된다는 증거는 분명히 없었다. “온 교회”가 모인 경우에도, 구성원들 간에 서로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 규모는 작았다. 그리고 그들이 가정집에서 모이는 환경을 유지하는 한, 모임은 분명 제한되었다.
---「3 가업 거주지에 있는 교회」중에서
바울은 모임에 대해 지극히 일상적인 용어(ekkl?sia)를 사용하고 모임의 장소도 제의적 장소가 아닌 일상적인 환경을 택함으로써, 이 모임을 사람들이 관여하는 평범한 모임들과 굳이 구별하길 원치 않음을 드러낸다. 그는 이 모임을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는 다른 어느 활동보다도 성격상 더 종교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 모임의 색다른 점은 모임 자체의 행위나 그 모임의 특별히 종교적인 의도 또는 그 모임의 가정적 환경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것들은 다른 모임에도 모두 있었다.…바울의 공동체들이 1세기 경쟁자들과 구별되는 점은 가정에 기반을 두었다는 사실보다 그들 모임의 성격과 그 역동성의 원천에 있었다.
---「4 지상에 현존하는 하늘의 실체로서의 교회」중에서
바울이 공동체를 몸으로 말할 때의 대부분은 분열의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지역 교회 안의 하나됨은 달성해야 할 잠재적 가능성이 아니라 표현되어야 하는 현실이다. 바울은 현존하는 또는 가능한 분쟁 앞에서 그러한 하나됨을 유지해야 한다고 자주 호소한다. 그럼으로써, 고린도에서 나타났었고 로마와 골로새에서도 일어날 위험이 있었던 분쟁들을 피하려 했다. 바울은 공동체들 사이에서보다는 공동체 내부에서 더 많은 분열을 보았다. 이 분쟁은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서로 돌봄이 부족했을 때의 결과로 생겨나며(고전 1:12; 11:21), 육신의 일 중의 하나라고 진술한다(갈 5:20). 이 말은 교회 안에 의견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다만 그 의견 차이가 타인들에 대한 용납의 부족과 합쳐져 교회의 한 부분이 나머지 부분에 대해 강퍅해지고 자기들끼리만 행동할 때, 분열이 나타난다.
---「6 유기적 조화로서의 공동체」중에서
주의 이름으로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은 바울 이전부터 있던 기독교 관습이었다.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고전 11:18)라는 구절이 암시하듯이, 그것은 아마도 교회로 모이는 모든 모임의 중심이었을 것이다(행 2:42-46; 고전 11:18; 참조. 14:23). 어느 경우든, 더 큰 모임일지라도 주의 만찬의 배경은 일반적으로 가정이었을 것이다. “만찬”을 의미하는 ‘데이프논’(deipnon, 고전 11:20)은 주의 만찬이 기념 식사(이후에 그렇게 된 것처럼)라든지 식사의 일부(종종 그렇게 상상하듯이)가 아니라, 충분히 먹는 일상적 식사였음을 말해 준다. 이것은 가족끼리 즐기거나 손님을 초대하는 이른 저녁의 주된 식사를 가리키는 일반적 용어였다. 최후의 만찬이 예수님에게 그랬듯이, 바울에게 만찬은 기념 식사(token meal)로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전형적인 식사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8 공동 식사와 교제의 표지들」중에서
바울의 공동체 사상은 믿는 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개인들 사이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화해를 반영한다. 이는 바울의 공동체들을 언급할 때의 초점이 어떤 책이나 의식, 특정한 활동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일련의 생생한 관계들에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과 전통을 통해서나 신비 체험과 제의 준수를 통해서가 아니라, 믿는 자들을 통해서 주로 말씀하신다. 이 경험은 확실히 성경에 근거하고 공동 식사를 포함하지만, 깊은 관계적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여타의 단체들 모두 일정 정도의 교제가 전무한 것은 아니나 그들은 동일한 질, 깊이,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바울의 견해는 복음과 성령에 대한 그의 이해에서 나온 것으로, 회당과는 단지 부차적인 부분들만 겹치고 이교들과는 공통점이 거의 없으며 조합들과는 몇 가지 형식적 유사점만 있다.…바울의 접근 방식은 고대 세계에서 혁명적이었다.
---「10 은혜와 질서의 상호작용」중에서
여러 서신에서, 바울은 교회 모임의 구체적 면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러 결정의 근거가 되는 원리들을 명확히 하고, 그에 따르는 조치들에 대해 실제적인 조언을 한다. 잠시 후에 더 자세히 설명할 두 명의 팀원을 제외하고, 그가 이런 문제들을 처리할 책임을 오롯이 지도록 공동체의 한 사람 또는 특정 그룹에게만 이야기를 전하는 경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는 끊임없이, 이런 문제들을 처리할 의무가 공동체 전체에 있음을 상기시키고, 또한 모든 지체가 그 임무를 수행할 것을 촉구한다. 그의 서신들은 일관성 있게 지역 공동체 전체를 수신자로 삼으며, 우리가 보겠지만 그들 내부의 특정 그룹을 가끔 혹은 부차적으로만 언급한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조직에 관한 문제가 논의되는 곳은 말할 것도 없이, “형제들”이라는 표현이 그의 입에서 끊이지 않는다. 분명히,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이 그 공동체의 실제적 운영에 대한 책임을 공유한다.
---「13 지체들 간 종교적 구별의 철폐」중에서
바울의 선교팀은, 그가 세운 교회의 구성과 마찬가지로, 당시 다양하게 얽혀 들던 민족적·사회적·성별적 상호작용에 부분적으로는 도전하고, 부분적으로는 이를 반영하고, 부분적으로는 확장시켰다. 적어도 헬레니즘 사회에서는 바울이 명백하게 종들을 대동하지 않은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의 동료들이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것은 그의 가장 모험적인 실천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바울의 선교가 발전하는 가운데, 특히 마케도니아와 로마에서 여자들이 현저한 역할을 했다는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이는 그러한 영역에서 여성이 누린 더 큰 자유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허용된 범위 안에서 실행한 바울의 융통성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접근법은 종교적 활동에서는 당대의 유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위치까지 여성의 지위를 상승시켰다.
---「15 방문 선교사들의 역할」중에서
바울의 공동체 사상은 실현 가능한 것일까? 의심할 여지 없이 바울의 교회들은 그가 제시한 공동생활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했다. 바울도 분명 이 사실을 충분히 알았다. 하지만 그의 견해를 이상적인 것으로만 결론짓는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의 사상은 인간의 현실이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 교회들의 잠재력을 냉정하게 평가하여 나온 산물이다. 인간관계의 실패와 덧없음을 다루는 데 있어서 바울보다 실제적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공동체들 앞에, 그들의 공동생활이 어떠해야 하며 언젠가 어떠하리라는 비전을 계속 제시한다. 그의 공동체관은 필연적으로 그가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복음이 인간 존재의 실질적 모순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를 펼쳐 보여 준다.
---「나가는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