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뫼길은 월산면의 옛길들이다. 이름처럼 이쁜 길을 마을마다 꼭꼭 숨기고 있는 월산면은 산으로 빙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월산천 물줄기는 습지로 이어지고 세월 묵은 다리가 그림처럼 놓인 곳, 꾸밈없는 옛 모습을 간직한 담장들이 순하게 열어주는 달뫼길이 여기 있다.
근데 전 이 소박한 골목길도 이뻐 보여요. 금방 무너질 듯 서 있는 흙돌담도, 시멘트 블록도, 파란 양철담도, 아무렇지 않게 잘 어울려 있잖아요. 햇살과 그늘조차도 편안하게 어울리잖아요. 아, 꾸밈없는? 네, 음, 진짜 미인의 민낯 같은 그런 거요.
---「01 달뫼길」중에서
‘느리게 사는 사람들의 마을’이 있다. 단순한 ‘느림’이 아닌 삶의 방향에 관한 것이다. 느리게 사유하며 걸어감으로써, 마음이 한결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 이 소박한 꿈이 달팽이길 이야기에 담겨 있다. 더 느리게, 내면과 마주하며 걸어보자
삼지천 돌담길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곳곳에 한옥 카페와 민박들이 있고, 꽃과 나무들이 담장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교감하고픈 여행자들을 쉬게 하기 충분하 다. 천천히 돌담을 기어올랐을 담쟁이와 인동초 넝쿨, 기와 위에 매달린 조롱박, 여행객들은 대문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집들의 편안한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다. 매화나무집, 겁나 많은 석류나무집, 아궁이가 이쁜 엿집, 나무를 사랑하는 집, 돌탑을 사랑하는 집, 정원이 아름다운 집은 대문을 활짝 열고 구경하라고 길손을 맞는다.
---「02부 달팽이 길」중에서
관방제림 뚝길 주변으로 종대거리, 오일시장, 국수거리, 벽화 골목길로 이어지는 이야기길이 펼쳐진다. 물과 나무와 이야기로 연결되는 읍내길은 시대의 변화를 함께하면서 주민들의 삶을 담고 있다
경쟁하고는 거리가 먼 작은 소로길과 옛담장과 나무들이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인정받고 있는 곳, 도시인들이 와도 생경하고 불편하지 않은 쉼터들이 있는 곳,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고 도시와 시골이 공존하는 작은 고장에서 그저 편히 걷고 쉬고 싶었다. 담양 읍내길은 이방인을 받아주는 공존의 공간이라고 주연은 생각했다. 그 공간의 중심에 관방제림이 있다.
---「03부 읍내 길」중에서
담양은 골짜기마다 산막이 길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영산강 시원지 용소길을 시작으로 용마루길, 비녀실길, 무정면의 은사시나무 길과 감나무언덕길을 비롯한 수많은 산막이 길이 숨어있다. 곳곳에 숨은 비경을 간직한 산막이 길은 옛 산골 고향의 추억을 일깨워주고, 치유와사색의 산책길이 되어준다.
글쎄 가도 가도 똑같은 산길이라 무서워지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기사님은 민가도 없는데 어디로 택배를 다녀오신 거예요? 아, 배달이 아니라 오늘은 휴일이라 바람 쐬러 왔어요. 이 길이 이쁘잖아요. 그렇죠? 정말 좋은 곳이에요. 어머, 섶다리다. 어려서 저 다리 건너서 학교 다녔어요. 다리를 보고 여자가 소녀처럼 환한 얼굴로 탄성을 질렀다. 젊어서 참 고왔을 미모다. 지금 가뭄 때문에 다리가 드러난 거 같은데 한번 가서 걸어보세요. 오랜만에 고향에 오셨는데... 그래야겠어요.
---「04부 산막이 길」중에서
지곡리 마을은 시와 소리의 대표 마을이다. 송강 정철 선생과 박동실 명창, 김소희 명창, 박석기 선생이 대표적 인물이다. 선조때 마을을 열었으니 연일정씨가 그 개척자이며 조선 중엽 낙향한 선비들이 세운 소쇄원. 식영정, 면앙정과 함께 가사문학과 소리길의 산실로 잘 보존되고 있다.
주연의 눈에 호수에 비친 나뭇가지들이 들어왔다. 몇백 년의 시간을 부유해 온 슬픔을 매달고 잠겨있는 듯했다. 땅 위에 뿌리를 내리고 굳건히 서 있는 나무들도 남모르는 슬픔을 저렇게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누구보다도 강인했던 엄마의 숨어 울던 흐느낌을 몰래 훔쳐보았던 날의 가슴처럼 아릿함이 번져왔다. 기개 있고 담대해서 여사로 불리었던 덕봉도 남모르는 여인의 슬픔을 안고 살았으리라.
---「05부 시와 소리의 길」중에서
영산강 시원 상류의 맑은 물길에 형성된 담양의 습지는 다양한 퇴적물 입자와 식생으로 구성된 생태계의 보고이다. 철새들과 각종 희귀 생물들의 보금자리이며, 사시사철 자연형 하천의 절경을 보여준다. 위로는 관방제림을 시작으로 아래는 대나무군락 제방까지 둑길을 따라 형성된 습지길을 걸으며 고요히 반짝이는 물결과 다양한 생명을 품어 온 습지의 경이로움에 빠져보자.
눈앞에 놓인 찻잔을 바라보다가 창밖을 바라볼 때가 있다. 창밖을 보다가 담 너머를, 담너머를 보다가 골목길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때 걸었던 그 골목 어디에선가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올 것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 마음 오래 창가에 걸어두고 싶을 때가 있다.
---「06부 습지 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