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입장은 극단의 엄격주의와 극단의 방임주의 모두를 배척한다. 즉 적응을 구실로 하는 기회주의적 타협이나 야합(방임주의)도, 그리고 순수성을 수호한다는 빌미로 내세우는 극단적 원리주의(엄격주의)도 거부한다. 교회는 소수의 특별한 사람에게만 엄격하게 적용했던 윤리?도덕이나 계율을 모든 사람에게 확대해 일반화하는 주장을 배척해왔다. 이러한 교회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엄격주의는 경건주의(종교적 신념을 강요하는 권위적이며 독단적인 사상)와 결탁해 여전히 우리 신앙생활 주변을 맴돈다.
--- p.26
헤링은 이러한 고해성사의 모습은 예수나 복음정신에 기초한 것이 아니며, 고해사제는 재판관이 아니라 돌아온 탕자를 기쁨으로 맞이하는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해사제의 역할은 죄인을 단죄하고 벌을 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화해를 촉진하고, 위로와 용기를 주며, 희망을 품게 하는 것이다. 고해사제는 죄의 경중을 따지면서 어떻게 살라고 지시하거나 어설픈 질문으로 호기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죄의 고백을 통해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지원한다.
--- pp.38~39
교회는 제도적으로 잘 꾸려진 튼튼한 요새 같아서 안정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1453년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함락당했을 때 유럽교회는 당황과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슬람 세력은 그리스도교 세력과 비교해볼 때 더욱더 너그러운 태도로 지배했던 까닭에 귀족들과 백성들의 환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교황의 삼중관보다 술탄의 터번을 더 반기는 상황이 되었다. 이 시기에 성지회복을 명분 삼은 십자군전쟁과 신앙을 보호한다며 행해진 종교재판은 교회의 흑역사에 속한다.
--- p.41
인간이 긴장을 수용하기로 선택할 때, 더 이상 병적이거나 무기력한 긴장이 아니라 창조적 긴장이 되어 우리 삶에 의미와 동력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경계에서 용서와 화해라는 창조적 긴장을 수용할 때, 그 창조적 긴장은 과거와 현재의 것을 변경하거나 달리할 수는 없지만 창조적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원리가 된다.
--- p.68
자유는 하느님의 창조의지와 그리스도의 구원의지 그리고 성령의 성화의지를 관통하는 가치다. 자유의 가치는 내부나 외부의 압박이나 강요가 아닌, 완전한 자유 안에서 구현된다. 더불어 인간의 창조적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지며, 하느님의 창조 역사 안에서 이미 구현된 가치다. 또한 자유에 대한 침탈과 상실의 경험이 자유의 가치와 우월성을 입증해준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할 때 더 큰 자유를 분별하고 선택하고 추구할 수 있다. 그 말씀은 성경에 드러난 하느님의 의지뿐만 아니라, 특정 시대와 문화를 통해 당신의 의지를 드러내시는 시대의 징표에 주목하고, 내면의 양심을 추구할 때 성취되는 창조적 자유다.
--- p.84
예수의 유다인 우월주의, 종족 우선주의, 배타적 선민주의가 다른 가치관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방인에 의해 도전받았다. 이러한 인식론적 회심체험은 예수의 내적 태도와 생활방식에 큰 영향을 끼쳐서 공동 인간주의, 인류 박애주의로 확장해 이끌게 된다. 따라서 낯선 이방인에 의해 그의 메시아적 신원의식이 종족주의적 사고방식에만 머물지 않고, 보편적 인간주의로 확장되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 p.107
선을 위한 양심 형성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필수적인 목표이며, 이는 현실의 삶에서 개인적 식별을 수행해갈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음성이 울려 퍼지는 자리인 ‘양심이 숨 쉴 공간’을 마련(Giving space to consciences)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공간은 주로 인간의 거주를 위한 장소로, 여러 요건이 부합할 때 거주에 적합한 곳이 된다. 에토스(윤리)의 어원이 거주를 위한 장소인 것처 양심도 역시 살아 움직이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다. 인간이 욕망과 탐욕으로 공간을 독식하고 차지할 때 양심을 위한 자리와 공간은 쇠퇴하고 소멸한다. 양심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면 양성된 양심, 교육된 양심은 상처받고 훼손된 사람들과 자연에 대한 깊은 연민의 마음과 영적 친밀감으로 우리를 묶어줄 것이다.
--- pp.124~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