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미디어에 의해 세뇌되는 건가요?
논두렁 시계는 권력기관에서 흘리고, 대형 언론사에서 받아쓴 가짜뉴스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1) 그리고 그 시계는 한 인간의 인격을 살인한 살인 도구가 되어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참극을 만든 원인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가짜뉴스임이 밝혀진 것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습니다. 다음은 또 다른 사례입니다.〈조선일보〉의 두 기사입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 이재명(이하‘이재명’)은 졸지에 정치적 괴물, 스탈린, 마오쩌둥 백두혈통 라인이 되었습니다. 가짜 이재명이 창조2)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가짜 뉴스가 가짜 이재명을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짜 뉴스는 한 두 번 그치지 않습니다. 수많은 변조와 변형과 교묘한 언어적 조작장치를 활용하여 우리를 세뇌합니다. 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 학자 푸코는 세뇌라는 단어를‘신체에 각인3) ’이라는 표현으로 확장해서 썼습니다. 비판적 담론학자인 페어클로프는 이를 Inculcation4)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우리말로‘뿌리 내리기’,‘착근’이라고 번역하면 될까요?
미디어에 의해서 생산되고 증폭되는 가짜 뉴스는 가끔 살인 가스처럼 무색무취하게 우리 곁에 와서 뇌는 물론 심장과 팔다리 피부까지 우리를‘자연스럽게’중독시킵니다. 가짜 뉴스는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곁에 와서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자극적으로, 때로는 우리를‘드라마틱하게’중독시킵니다. 그 결과 아직도 가짜 뉴스에 의해서 많은 사람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을‘당연하고 자연스럽게’빨갱이로 알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똑똑한 대한민국 국민이 왜 이렇게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미디어 앞에서는 헤매는 걸까요? 왜 꼼짝도 못 하고 당할까요? 왜 그럴까요? 연탄가스에는 우리가 냄새도 소리도 느낄 수 없는 일산화탄소라는 치명적 성분이 있듯이 미디어에 숨어있는 가짜 뉴스도 우리가 느낄 수 없는 치명적인 성분이 있습니다. 바로 언어적 장치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본 책의 목적은 바로 살인 가스처럼 우리를‘당연하고 자연스럽게’바보로 만드는‘언어적 장치’를 세상에 드러내어 진짜를 찾는 방법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자주 접하곤 합니다.
A: 수많은 사람이 구조조정으로 자신의 직장을 잃어버렸다.
B: 반도체 생산이 늘어났다.
그러면 다음 문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A′: 고용주가 구조조정을 이유로 수많은 사람을 해고했다.
B′: 노동자들이 반도체를 생산한다.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비슷한 문장 아닌가요?
처음 A문장은 해고한 행위주(Agency)가 없습니다. 그리고 B문장은 누가 반도체를 생산하는지 삭제되어 있습니다. 그럼 A′문장을 보시죠. 내용은 같은데 해고를 한 행위주,‘고용주’가 있습니다. B′문장을 보면 반도체를 생산을 하는 주체,‘노동자’가 있습니다. 이처럼 미디어는 행위주 삭제라는 언어적 장치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여러 표현 중 하나의 표현을 선택하거나 다른 표현이 가능한 문장을 삭제하거나 배제합니다.
한때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 폭도들의 난동쯤으로 생각하고 전두환 정권의 광주시민에 대한 폭력과 학살을 옹호할 때도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인혁당 관련자들을 빨갱이 간첩으로 조작하여 사형 선고를 내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은 18시간 만에 사형 선고를 집행할 때도 미디어는 그들을 간첩단으로 몰아갔습니다. 그 당시 국민 대부분은 미디어를 보면서 광주시민은 폭도로, 인혁당 관련자는 간첩인 줄 알고 사형 집행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정도 차이는 있지만, 아직도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을 용공 분자로 알고 있는 국민이 많습니다.
미디어가 다양한 언어적 장치를 통해 국민에게 근거 없는 사실을 현실처럼 만들어 끝없이 세뇌한 결과입니다. 더욱이 대의민주주의 채택한 우리나라에서 미디어의 현실 조작으로 인해 민의가 제대로 국정에 반영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잘못 선택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미디어를 보는 방법을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디어에 속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가 모두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이러한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미디어가 현실을 재현하고 변형시키는 교묘하고 치밀한 언어적 장치를 알기 쉽도록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목표를 충실히 하기 위해 꼭 해야 할 작업이 있습니다. 바로 미디어 현장 비평입니다. 의과대학에서 배우는 의학도들이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인체해부학을 공부하면서 실제로 인체를 해부하는 실습을 해 보는 것이 가장 도움이 많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미디어가 현실을 재구성하는 여러 방식과 기법을 알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텍스트를 선택해서 실제 비평과정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실제 텍스트를 해부하는 현장을 그대로 보여드리는 것이 미디어 담론을 분석하는 방법론만 딱딱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미디어 담론을 이해하는데 좀 더 쉽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네 가지 사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부부와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부부의 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 탈원전 담론경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제안한 기본소득 공약에 대한 담론갈등 등을 선택하여 비평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림으로써, 미디어 담론분석 방법을 좀 더 피부에 와 닿도록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지면의 한계로 인해 이 책은 모든 미디어를 다룰 수 없습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중심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미디어 중에 〈한겨레〉와 〈조선일보〉는 우리나라 언론의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신문으로 기사 담론의 대립적 구도를 명확히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강진숙 2006; 김원섭·남윤철·신종화 2015; 변영수 2015; 서희정 2013; 신예원·마동훈 2019; 허윤철·박홍원 2010). 또한, 질적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언론의 진보와 보수의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므로 두 언론사의 기사를 비교하고 분석해서 각 담론에 숨어있는 가치와 이념적 내용의 구별되는 점이 쉽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미디어 담론분석의 접근법에는 언어학 및 사회언어학적 분석, 대화 분석, 기호적 분석, 비평적 언어학과 사회 기호학 분석 같은 접근법이 있습니다(Fairclough, 2001, 5∼11). 본서에서는 최신 기법의 하나로 평가되는 비판적 담론분석(Criticul Discourse Analysis, 줄여서 CDA)을 채택하겠습니다. 비판적 담론분석은 언어학적 분석을 기본으로 합니다. 어휘분석과 의미론 문장 및 좀 더 작은 단위의 문법, 소리 체계 그리고 글자 자체 등을 망라합니다. 이런 이유로 비판적 담론분석은 일반인이 접근하기가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비판적 담론분석이 보편타당한 분석방식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면 비판적 담론분석은 기존 담화분석 연구와 다른 특징을 몇 가지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우선 비판적 담론분석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언어학적 분석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담론을 단지 언어적인 측면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사회구조 내의 사회적 실천으로 간주합니다. 특히 지배-피지배 관계를 생산·재생산하고 강화하는 담론과, 담론 안에 담겨있는 있는 언어적 장치들을 들추어내고, 담론의 이데올로기성을 밝혀내는 것이 비판적 담론분석이 추구하는 목표 중의 하나입니다(신진욱, 2011).
즉 담론이 하나의 사회적 실천을 표현하기에 텍스트 내부에만 주목하는 기존의 전통적 언어학적 분석을 넘어서 권력이자 이데올로기로서의 담론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사회적 문제와 정치적 이슈에 있어 기계적 중립성을 거부합니다. 간 학문적 성격의 분야로 부상한 비판적 담론 분석은 탄압받는 자들의 입장을 중시하며 이들의 불평등에 대한 투쟁에 도움을 줍니다(Wodak, 2001). 즉 비판적 담론분석은 뚜렷한 “피지배계급의 입장”의 담론분석 방법이며 인식의 해방을 지향합니다(박해광, 2007).
이 책에서도 비판적 담론분석이 추구하는 목표와 지향점에 맞도록 미디어 담론분석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네 말도 맞고 내 말도 맞다’라는 식의 결론을 내놓은 가치중립성을 배격하겠습니다. 미디어 담론 내에 깊게 달라붙어 있는 지배-피지배 관계를 밝혀내고 그곳에 상식(Common sense)5)이라는 이름의 담론 내의 이데올로기를 세상에 드러내겠습니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던 미디어 비평이라는 연구 분야의 시야를 넓히는 계기를 마련하도록 해보겠습니다. 미디어 비평을 처음 배우려는 학생, 미디어 비평을 다른 학문연구 분야에 접목하거나 참고할 필요성이 있는 연구자들과 학자들, 나아가 모든 시민이 함께 미디어 비평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