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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7

: 5부 2권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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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07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428쪽 | 134*194*30mm
ISBN13 9791130699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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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은 삼일까지 쉬기 때문에 홍이는 집에 있었다. 물론 아이들도 집에 있었고 식구가 모두 지내지도 않는 설 때문에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 달포 전부터 임이가 와 있었다. 나이는 쉰여덟, 아직 환갑이 멀었는데 칠십 노인처럼 늙고 초라해진 모습을 본 홍이는 차마 가라 하지 못하였고 돈을 쥐여주는 것도 한두 번, 흐지부지하는 홍이 태도에 얼씨구나 잘되었다 싶었던지 눌러붙어 있었는데 한 달 전이던가 보연은 입술이 툭사발같이 부어서 남편에게 임이를 보내라 했다.
---「밀수사건」중에서

여행 가방을 메고 간편한 차림의 중년 사내가 허공로(許公路)에 있는 운회약국으로 들어왔다. 매우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는 일본말로 소화제를 달라고 했다.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돌아서서 약을 꺼내는데 머리를 걷어 올린 목덜미가 눈이 부시게 희었다. 여자는 포장을 하다 말고 사내를 쳐다보았다. 동시에 사내도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두 사람은 돌이 된 듯 행동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본다.
---「송화강의 봄」중에서

찬하와 함께 오가타는 유인성의 집 앞까지 왔다. 집주인의 성품처럼 조촐하고 단정해 보였던 옛날과는 다르게 밖에서 바라본 집은 노쇠하여 허덕이는 것 같은, 묘하게 어둡고 찬 바람이 이는 느낌이었다. 오가타는 잠시 동안 눈을 감았다. 지난 일들이 발밑을 감아올리는 삭풍과 같이 그의 의식 속을 휘몰고 지나갔다. 그것은 사건이기보다 세월이었던 것 같았다. 세월이었다는 느낌 속에는 한 아이의 해맑은 얼굴이 있었다.
---「서울과 동경」중에서

전차에서 영광이 내렸다. 가벼워 뵈는 여행 가방을 들고 헐렁하고 얇은 회색 잠바 차림이다. 땡땡 종을 치며 우둔한 몸짓으로 떠나는 전차를 잠시 동안 영광은 바라보다가 역 광장으로 들어선다. 땡땡 치는 전차 종소리가 경쾌하게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으나 눈에 뵈는 모든 물체는 침묵과 안개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보따리를 이고, 짐짝 가방을 들고, 아이 손목을 잡고, 여자 남자, 젊은이 늙은이 형형색색의 사람들은 광장을 질러서 역 대합실로 사라지고 있었다.
---「명정리 동백」중에서

하얼빈에서 신경까지, 언덕 하나 없는 광활한 대륙이 눈앞에 떠올랐다. 숨이 막히게 끝이 없었던 광막한 대지, 그것은 어떤 공포감이었다. 홍이는 영광에게 바다는 불안하다고 말했다. 만주의 그 끝없는 벌판을 연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들고나고 하는 배들의 그 뱃고동 소리 때문이었을까. 떠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더욱 견딜 수 없는 일이다.
---「황량한 옛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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