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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242g | 127*196*20mm
ISBN13 9791170800163
ISBN10 1170800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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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다시 한번 말했다. 하지만 아까와 똑같은 뚜렷한 대답이 다시 들려 왔다.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안 하는 편이 더 좋겠다니.” 나는 흥분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을 성큼성큼 건너가며 그의 말을 흉내 냈다. “무슨 소리야? 자네 정신 나갔나? 나를 도와 여기 이 문서를 같이 비교해 보자고,자,받아.”그에게 문서를 내밀었다.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냉정할 정도로 침착했고, 회색 눈은 흐릿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심적인 동요를 암시하는 주름살 하나도 꿈틀거리지 않았다.
--- p.25

다음날 바틀비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창가에 서서 정면의 창문 없는 벽만을 응시하며 몽상에 젖어 있었다. 왜 글을 베끼지 않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쓰는 일은 이제 더 이상하지 않기로 했다고 대답했다.
--- p.51

그는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맞으며 하루 종일 서서 톱질을 했다. 눈보라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말을 좀체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톱질만 했다. 쓱싹, 쓱싹, 쓱싹. 눈은 내리고, 내리고, 또 내렸다. 그의 톱질과 눈보라는 두 개의 자연물처럼 조화를 이루었다. (중략) 그는 젖은 신문지에 싼 상한 빵 한 덩어리와 소금에 절인 소고기 큰 조각 하나를 들고 깨끗한 눈 한 움큼을 입속에 넣어 딱딱한 음식을 적셔 먹고 있었다.
--- p.116

“저 같은 가난한 사람? 왜 제가 가난하다고 말합니까? 제가 기르고 있는 저 수탉이 이 수치스럽고, 황량하고 형편없는 땅을 찬양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 수탉이 선생님에게 활기를 북돋워 주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저는 선생님에게 이 모든 찬미를 공짜로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위대한 자선사업가죠. 저는 부자입니다. 엄청난 부자지요. 그리고 더없이 행복한 사람이고요. 울어, 트럼펫.”
지붕이 흔들렸다.
--- p.131

처녀들은 옆에 있는 바구니에서 길쭉한 넝마 조각들을 끄집어내, 예리한 칼날 위에 갖다 대고 앞뒤로 긁으면서 모든 이음매를 갈가리 뜯어내 넝마 조각을 보풀처럼 만들었다. 유독성 미립자가 공기 속에서 사방으로 떠돌며 감지할 수 없는 햇빛 속의 먼지처럼 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곳이 넝마 작업실이에요.” 소년이 기침을 하며 말했다.
“정말로 숨 막히는 방이군.” 나도 콜록거리며 대답했다. “그런데 저 여자들은 기침을 하지 않네.”
“오, 저들은 습관이 돼버렸어요.”
--- p.174

나는 모피 옷을 걸치고 묵상에 잠긴 뒤 이내 악마의 지하 감옥을 벗어나 언덕길을 올라갔다. 검은 협곡에서 썰매를 세우자, 나는 다시 한번 템플바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통과해 불가사의한 자연에 홀로 남아 외쳤다. “오! 총각들의 천국이여! 오! 처녀들의 지옥이여!”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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