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 시대 이스라엘에는 두 주류(主流)가 있었다. 그들은 바로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레위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였다. 사사 시대에 일어났던 그 많은 불행들은 이 두 지파가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에 충실하지 않은 결과였다. 항상 그렇지만 그 시대 그 사회의 주류가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의 비주류(非主流) 중에서 당신의 사람을 일으켜 세우신다. 비주류인 그들을 주류 대신 쓰신다. 그들을 통하여 언약 백성을 구원하신다. 그리고는 그들의 이름을 하나님 당신의 ‘명예의 전당’에 올리신다. 이번 책에서 다루게 될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가 바로 그들이다.
--- pp.75~76
기드온이 ‘여호와의 전쟁’의 시작을 의미하는 나팔을 분 뒤, 기드온의 고향 사람들인 ‘아비에셀 사람들’이 가장 먼저 그와 함께했다. 그리고 다음에 기드온과 함께 한 사람들은 ‘므낫세 지파’였다. 이 또한 ‘겉으로 보기에’ 당연한 순서다.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 출신(出身)이다. 이렇게 ‘아비에셀 사람들’과 ‘므낫세 지파’가 기드온에게 합류한 후, ‘아셀과 스불론 그리고 납달리 지파’가 합류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셀과 스불론 그리고 납달리’는 왜 기드온에게 합류했을까?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중 이들은 기드온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기드온의 나팔 소리에 응(應)한 것일까? 이 또한 이유는 간단하다. ‘므낫세와 이들 세 지파’ 모두 이스르엘 골짜기 주변에 살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드온의 고향인 아비에설 또한 이스르엘 골짜기에 있었다. 즉 지난 칠 년 동안 미디안에게 끊임없이 노략과 괴로움을 당했던 피해지역이 바로 이들 지파의 거주지였다. 이것이 특별히 그 사회의 주류세력(主流勢力)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그나마 공동체의 필요에 반응하는 세력의 특징이다.
--- pp.129~130
즉 언약의 성지(聖地)인 세겜 땅에 ‘바알브릿 신전’을 세운 세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을 보내셨다. 그 결과 그들은 서로 작당(作黨)해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기드온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참혹하게 살해했다. 이때 그들이 서로에게 했던 말은 “우리는 같은 골육(骨肉)이다”이었다. 그렇게 같은 골육임을 내세워 그들은 ‘아비멜렉의 골육’을 도륙했다. 그리고는 아비멜렉을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왕으로 삼았다. 그 순간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의 눈에는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권력을 잡기 시작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그리심산에 올라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라고 외친 요담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을 피해 브엘로 가서 거주했다. 브엘은 사해(死海) 반대편 모압 땅에 위치한 성읍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요담은 왜 약속의 땅을 떠나 모압으로 갔을까? 아마도 요담은 언약의 성지(聖地)인 세겜마저 하나님과 그의 아버지 기드온을 배신하고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웠다면, 더 이상 이스라엘 땅에 그가 머물 곳은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더불어 이제는 자신이 머무르는 성읍의 사람들마저 자신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 pp.230~231
드보라와 바락의 경우, 다른 사사들과 다른 점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대부분 이방 민족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도구로 쓰임 받은 인물’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하나님께서는 드보라에게 명령하셨지, 바락에게 직접 명령하지 않으셨다. 즉 다른 사사들의 경우 그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증인’이었다. 그러나 바락은 아니었다. 시스라와의 전투에 나서는 데 있어, 바락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직접적인 증인’이 아니었다. ‘증인’은 드보라였다.
철 병거 900대를 보유한 상대와 전쟁에 나서는 일이었다. 자신이 속한 납달리 지파와 스불론 지파 ‘만 명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일’이었다. 당연히 바락은 신명기 17장 7절 말씀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일은 증인인 “드보라가 먼저 손을 대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바락은 ‘비겁한 사내’가 아니라 오히려 ‘깨어있는 사내’였다. 당시는 여성을 증인으로 인정하지 않던 시대였다. 여성은 경제적인 계약의 주체마저 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바락은 여성인 드보라를 이 중대한 일에 증인으로 내세운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전투에 직접 임한 인물은 바락이었다. 하나님께서 비 벼락을 통해 시스라와 싸우시기 이전에, 바락은 만 명을 거느리고 철 병거 군단을 향해 돌격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락을 향해 ‘비겁한 사내’라고 혀를 차는 사람 중에 바락과 같은 상황에서 철 병거 군단을 향해 돌격할 수 있는 사내가 몇이나 될까?
--- pp.277~278
그렇게 삼손이 태어나자 이들 부부는 아들의 이름을 ‘삼손’이라고 했다. 삼손이라는 이름을 히브리어로 발음하면 ‘삼손’보다는 ‘심손’에 가깝다. 삼손은 ‘태양’이라는 뜻의 ‘셰메스’에 ‘작음’을 뜻하는 어미 ‘온’을 이어 붙여 만든 이름이다. 이 이름을 지을 때 삼손의 부모는 ‘태양의 집(벧세메스)에서 만난 하나님’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부부를 만나주신 ‘하나님의 약속’ 또한 기억했을 것이다.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삼손이 태어난 순간, 이들 부부는 장밋빛 꿈에 부풀어 있었을 것이다. 지난 사십 년간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할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온통 어둠만 가득한 것 같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비로소 그들 부부를 통하여 그 땅에 비취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은 태양’이라는 뜻의 삼손이라는 이름은 이들 부부의 ‘온 희망’을 담은 것이었다.
--- p.333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뒤, 입다는 그의 무남독녀 외동딸을 여호와의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으로 바쳤다. 그의 모든 꿈과 희망을 바친 것이었다. 이제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입다의 딸은 그녀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 그녀의 처지를 두 달간 애곡(哀哭)했다. 슬피 울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 당시의 시선으로 볼 때 이 일이 간단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시선으로는 쉽게 공감되지 않는 일이지만, 이 일은 입다의 뼈를 녹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딸이 산에 올라 두 달간이나 울부짖어야 그 한(恨)이 어느 정도 풀릴 일이었다면, 그 아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더군다나 입다의 딸 또한 입다와 비슷한 성정(性情)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녀의 무릎이 깨지면 부모의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입다와 같은 사내가 딸의 눈물을 보며 느꼈을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인생을 살아본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 있다. 몸이 힘든 것과 마음이 힘든 것 중, 사람의 뼈를 녹이고 건강을 잃게 하는 것은 마음이 힘든 것이다. 다시 한번 상기하지만, 암몬과의 전쟁에서 선봉에 섰던 입다였다. 그런 그가 6년 만에 죽음에 이르렀다.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라는 기록으로 보아 입다는 특별한 질병이나 외상없이 죽음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렇게 강건했던 그를 6년 만에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그의 서원과 관련된 일이었을 것이다.
--- p.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