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생명과학자인 할머니가 손녀에게 편지글 형식으로 들려주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생명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이 머릿속에 그려지지도 않을 만큼 긴 시간인 약 138억 년의 우주 역사를 완벽하게는 아닐지라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그 와중에 지구에서 생명의 시작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 ‘나’라 는 생명은 몇십 년 전에 시작한 생명체가 아니라 약 40억 년 전에 생긴 유전자 풀(Gene Pool)에서 출발했고, 5천 년도 더 이전에 살았던 아이스맨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이야기는 내 생명의 가치를 더욱 귀하고 아름답게 여기게 한다. 아니, 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이루는 물질들이 약 138억 년 전에 있었던 빅뱅(big bang. 빅뱅이론. 우주는 시공간의 한 점에서 시작되었으며, 대폭발이 일어나 계속 팽창하여 현재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는 이론)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인간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장엄하고 거대한 것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면서 더욱 겸손하고 소중하게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우주는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이거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우주 생명의 소중한 일부란다”라고.
맑은 날이면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보자. 항상 우리 곁에 있는 달은 어떤 신비로운 이야 기를 갖고 있을까? 달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마음속에 있는 물음표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숲길을 걸으며 눈에 보이는 풀, 꽃, 벌레에게 도 눈길을 보내 가만히 관찰해 보자. 이런 일상의 경험을 통해 자연 속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감성(The Sense of Wonder)을 길러 보자.
---「감수자의 말 · 추천의 글」중에서
먹는 것뿐만 아니라 번식도 밀물과 썰물, 달의 차고 이지러짐과 깊은 관계가 있어. 많은 생물은 수컷의 정자와 암컷의 알이 하나가 돼서 자손을 늘려가. 이것을 수정이라고 해.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야.
군부(몸이 납작하고 좌우대칭인 해양 연체동물)는 여름철 사리 때면 새벽녘의 바닷물이 가장 높이 차오르기 직전 30분 이내에 알과 정자를 일제히 물속에 방출해. 방출된 알과 정자는 물 속에서 수정되어 유생이 되지. 유생은 알과 정자가 수정해서 생기는 배(胚)에서 성장하는 동안 성체와는 전혀 다른 형태를 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해. 솔나방의 유충(애벌레)은 송충이지.
이런 동물 가운데 시간을 가장 잘 지키는 것이 일본깃갯고사리(학명:Oxycomanthus japonicus)야. 1년에 한 번, 10 월 초순(한 달이 시작되고 열흘간)에서 중순(초순 다음의 열흘간)의 상현이나 하현달이 뜨는 날, 오후 2시 30분에서 4시 사이에 알과 정자를 일제히 방출해. 알을 갖고 있는 암컷과 정자를 갖고 있는 수컷은 각각 다른 개체라서 동시에 방출되지 않으면 제대로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거든. 일본깃갯고사리는 시계가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오스트레일리아의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 세계 최대 규모의 산호초 군락.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에는 140종이 넘는 산호가 10월에서 11월의 삭이 뜨는 날로부터 5 ~7일째 되는 밤에 일제히 알과 정자를 방출해.
남반구에 있는 이 지역에서는 이때가 봄이야. 번식에 적당한 수온이 되는 시기라서 많은 종류의 산호가 일제히 산란을 하는 거란다. 그런데 140종이나 되는 산호의 정자와 알은 어떻게 상대를 찾을까? 궁금하지 않니 ? 이럴 때 바닷물 색깔은 어떻게 변하는지 보고 싶지 않아? 리나도 자연현상에서 떠올리게 되는 물음표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 면 세상이 훨씬 아름답게 느껴질 거야.
---「3. 얼마나 많은 생명이 달의 영향을 받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거야」중에서
하루살이는 주로 물가를 즐겨 나는데, 교미와 산란을 끝내면 수 시간 내에 죽고 말지. 유충은 물속에서 2, 3년 지낸 후에 비로소 성충이 된단다. 무리 지어 나는 것은 수컷이야. 그 무리 속으로 암컷이 뛰어들어. 그렇게 짝짓기하는 암컷과 수컷은 공중에서 몸을 포개듯 겹쳐서 날아다니고, 이윽고 짝짓기가 끝나면 암컷은 조용히 물로 내려앉아 알을 낳지.
깜짝 놀랄 사실을 하나 알려 줄까? 성충 하루살이에게는 입이 없어. 아예 먹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거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는 힘껏 위아래로 날고 짝짓기를 하면, 하루 정도 지나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단다. 그러니까 하루살이는 오직 짝짓기를 하기 위해 물에서 나온 거야. 그리고 알을 낳으면 더 이상 어미는 필요하지 않은 거지. 이후 물속의 알은 부화하여 유충이 되고 유충이 성충이 되는 불완전 변태를 하여 하루살이로 우화(羽化)해. 우화한 하루살이는 물 밖을 날지. 하루살이처럼 알을 낳으면 바로 죽는 곤충은 많아. 매미도 그랬지. 물고기 중에서는 연어가 알을 낳으면 바로 죽어 버려.
새끼를 남기는 것이 생물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으면 더 이상 부모는 필요하지 않아. 인간의 부모가 오래 사는 것은 자식을 교육하기 위해서라는데, 세상이 변하면서 이제는 꼭 그렇다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22. 오직 새끼를 남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중에서
리나야, 북방여우를 본 적 있니? 새끼 여우는 이른 봄에 태어나. 깊은 굴에서 어미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젖을 먹는단다. 굴을 덮고 있던 눈이 녹을 즈음에는 나무들이 일제히 싹을 틔우고, 들판에는 다양한 색깔의 꽃이 여기저기 피어 나. 봄이 깊어지면서 새끼 여우는 무럭무럭 자라서 라벤더꽃이 많이 피 는 여름 무렵이면 어미에게 이끌려 사냥을 간단다. 어미를 따라 다니면서 사냥하는 방법을 배우는 거야.
인간의 아이와는 상당히 다르지? 태어난 지 몇 개월 만에 자신의 먹이를 스스로 구해야만 하니까. 이렇게 해서 가을이 되면, 놀랍게도 어미가 갑자기 새끼를 공격하기 시작한단다. 새끼들은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도망을 쳐! 아직 어리고 귀여운 얼굴의 새끼는 이제부터 혼자 힘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돼. 그렇게 해서 혹독한 시련을 견딘 새끼만이 살아남는 거야.
어미가 새끼와 생이별을 하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자연의 혹독함을 생각해서 새끼에게 이 정도로 심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성적인 판단에서 나온 행동일 거야. 어미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다음 번식에 대비해야 하거든. 암컷도 수컷도 몸의 호르몬 시스템이 그렇게 행동하게 하는 거지.
야생에서는 이렇게 해서 살아갈 힘이 있는 개체만 살아남아 자손을 늘려가는 거야. 약하거나 사냥에 서툰 개체는 도태되어 죽고 만단다. 리나는 인간의 아이로 태어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인간은 약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주기 때문에 그들도 살아남을 수 있잖아. 그렇게 하면 인간의 강함을 상실한다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나는 강한 사람만의 사회보다는 배려하는 사람이 만드는 사회가 좋다고 생각해.
---「25. 자연의 섭리는 때론 잔혹하단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