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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 유목제국사

: 기원전 209 ~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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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734g | 153*225*25mm
ISBN13 9791169811453
ISBN10 116981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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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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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에 관한 사마천의 정확한 이해와 후대의 잘못된 인용
사마천은 (…) 유목민들이 고정된 주거는 없으나 목초지만큼은 정해진 범위를 ‘맴돌며’ 옮겨 다닌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 ‘맴돌며’ 옮겨 다닌다고 한 사마천의 표현이 전혀 주목받지 못한 결과 『사기』를 모범으로 삼아 서술된 후대의 「북적전」에서도 유목에 대한 설명만큼은 달라졌다. 반고에서 시작된 ‘붙박이로 머무는 곳 없이 옮겨 다닌다’라는 표현이 점차 굳어져 정사 「북적전」에서 유목을 설명하는 ‘원형prototype’이 되었다. 때로는 유목민을 비하하는 내용이 더해지기도 했다. ‘유목=이동’, ‘북방 주민=유목민’이라는 단순한 도식이 깊숙이 자리 잡았고, 후대에도 「북적전」의 내용이 계속 인용되면서 유목에 관한 전형적인 표현으로 쓰이게 되었다. 후대의 사가들은 자신이 사마천의 표현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착각했다. 사마천도 유목민을 정처 없이 떠돌면서 가축을 키우며 사는 존재로 설명했다고 견강부회하는 이들도 있었다. 연구자들 역시 최근까지도 이를 교정하지도, 비판하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사용한 결과 『사기』 「흉노열전」 모두의 내용을 전혀 다르게 이해했다. 유목의 특징을 사실에 가깝게 기록한 사마천의 이해가 오히려 후대에 관념적인 이해로 퇴보한 것을 고민 없이 반복 인용한 탓이었다.
--- p.64~69

전국시대, 기마궁사 호胡의 등장
전국시대에 중국 북변의 국가가 북쪽에서 맞닥뜨린 존재는 초원에 살던 호였다. 이와 관련해 조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무령왕武靈王은 풍속을 과감히 바꾸는 정책을 추진했다. 즉 “[중국에서 입지 않는 다른 족속의] 바지를 입고 말을 타며 활 쏘는 것(호복기사胡服騎射)”과 같은 신기술을 수용했다. 무령왕은 이를 통해 북쪽의 임호와 누번을 격파한 다음 장성을 쌓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사육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호의 탁월한 군사적 능력을 무령왕이 수용했다는 『사기』의 서술에서 알 수 있듯이 ‘기마궁사’는 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었다. 전국시대 이후 기록에 나타난 호는 모두 ‘기마와 궁술에 특화된 유목민’을 지칭했다. 사마천은 그들을 ‘활을 당기는 사람(引弓之民)’이라 했다. 그만큼 ‘기사騎射’는 곧 호를 설명하는 표현이었다. 한편 호는 초원에서 계절에 따라 순환 이동을 하며 주로 말과 소, 양을 사육하는 전문화된 목축, 즉 유목을 했다는 점에서도 융과 달랐다.
--- p.85~86

묵특 선우의 건국
진이 무너지면서 장성과 직도의 건설, 요새와 둔전의 설치 등이 중단된 것은 흉노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묵특 선우는 치밀한 준비 끝에 아버지를 죽이고 권력을 장악한 다음 주변으로 확장해나갔다. 즉위 이후 10여 년에 걸쳐 중국의 간섭 없이, 느슨한 연합 형태가 아닌 자신의 강력한 통제하에서 ‘호와 융을 통합한 새로운 국가’를 만들 수 있었다.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이후에는 비록 초보적이기는 하나 ‘분봉’으로 나뉜 각각의 영역을 하나로 묶는 다양한 통치 행위를 통해 자신을 중심으로 체제를 정비했다. (…) 건국에 성공한 묵특 선우는 세력을 확장하고 더 발전하기 위해 진한 교체기 중국에서 이탈한 주민이나 통일 과정에서 한에 저항한 세력을 포섭했다. (…) 이런 움직임에 부응하여 확장을 멈추지 않았고 거대한 통합 체제, 즉 ‘유목제국’으로의 발전을 도모했다. 이는 단지 호와 융만이 아니라 다양한 집단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었다. 묵특 선우는 막 통일된 중국에 공세를 가해 자신의 입지를 인정받으며 새로운 ‘대안 세력’이 되고자 했다.
--- p.125~26

서방 교통로의 장악, 흉노가 나아갈 방향
서방 원정 이후로 중국과 서방을 잇는 교통로를 장악한 흉노는 이전과 다른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 이제 동쪽의 조선에서 서쪽의 강거康居(지금의 카자흐스탄 초원)로 이어지는 ‘초원길’ 운영의 주체가 되어 개별 세력이 분점하던 교통로를 하나로 통합하고, 나아가 동서 교역을 장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흉노는 중국의 자원을 최대한 얻어내 흉노 사회의 질적 변화와 성장을 도모하고자 했다. 대선우가 된 묵특이 한에 화친을 강조하며 많은 물자 지원을 요구한 것은 이후 흉노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 p.144

흉노와 한의 각축
흉노의 입장에서는 요새로 연결된 한의 장성 체제를 무너뜨리기보다는 화친을 통해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쪽이 유리했다. 이는 대선우의 입지를 강화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의 지원은 늘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대선우는 장성과 그 주변에 대한 위협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되는 변경 침탈로 한을 압박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이후 흉노에 협조하던 반한 세력이 이탈하고 흉노 내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대선우의 이런 노력도 한계를 맞았다. 한은 건국 초기에 굴욕스러운 화친을 통해 흉노에 압도당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이를 적절히 이용하며 유리한 입지를 점했다. 흉노의 군사적 압박 속에서도 화친에서 정한 부분 이상의 요구는 들어주지 않았고, 장성을 굳건히 유지해 이익을 지켰다. 내부의 정치적 안정을 확보한 이후로는 장성 주변의 방비를 더욱 강화하면서 인근의 목축민마저 포섭해 흉노에 대항하도록 만들었다.
--- p.162

한 무제의 강력한 북벌 정책과 흉노의 막북 고립
한의 집요한 북벌로 계속해서 전투가 벌어지면서 계절의 변화에 맞춰 가축을 돌보는 일이 어려울 만큼 큰 타격을 입었다. 막북 초원은 막남보다 환경이 좋지 못해 목초지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다. 목초지를 새로이 지정하고 적절히 분배하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으나 어느 것도 여의치 않았다. 또한 다른 기후 조건에서는 가축을 제대로 건사하기도 쉽지 않았다. 가축이 임신이 되지 않았다는 간단한 기록만 있을 뿐이지만, 흉노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 해결 방법은 한과 평화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뿐이었는데, 무제는 재위 기간 내내 흉노를 인정하지 않았고 무력 정벌의 뜻도 굽히지 않았다. 기원전 87년까지도 무제의 의지가 꺾인 적이 없을 정도로 집요하게 공세를 가했다. 흉노는 무제 사후에야 비로소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었다.
--- p.227

몽골 초원에 유입된 정주민들
흉노는 국가 건설 과정에서는 초원의 유목민이 주를 이루었지만, 점차 세력을 확장하면서 중국 변경의 목축민과 농경 정주민도 포괄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다양한 주민을 아우르는 복합적 성격의 국가를 지향했던 결과 한에서 투항해 온 인물들이 활발히 활동했다. 한과의 전쟁 과정에서도 장수를 비롯해 많은 한인이 포로로 잡히거나 투항한 다음 흉노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릉과 이광리 등은 흉노에 투항한 다음 초원에 살았다. 이광리가 이끌었던 병력 7만 명 가운데 상당수가 포로가 되었다면 정주민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된 소무 같은 인물도 있었다. (…) 몽골 초원에 유입된 정주민을 위한 시설들은 초원의 모습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정주민의 생활 방식에 적합한 시설을 잘 갖춰 한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정주민의 역량을 동원하는 것이 위율의 구상이었다. 정주민은 행정 능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공성전에 능하지 못한 흉노에게 군사적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 p.230

호한야 대선우의 장안 방문, 추락한 흉노의 위상
호한야의 전격적인 장안 방문은 흉노에게 일대 사건이었다. 그만큼 흉노는 고비 너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계절도 겨울이라 식량 지원이 시급했다. 호한야가 머무르게 된 수항성 부근은 장성 이북에서는 그나마 목축하며 지내기 좋은 곳이었다. 살기는 좋아졌지만 이제 흉노는 한의 신하가 되어 그 통제를 받아야 했고, 황제와 대등한 존재라는 인식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게 되었다. 호한야는 대내적으로는 여전히 대선우였으나, 대외적으로는 이제 한의 신하를 칭한 여러 족속(蠻夷)의 하나에 불과했다. 이는 양국 관계만이 아니라 흉노 내부의 체제 변화로도 이어졌다.
--- p.258

흉노의 분열과 위축으로 인한 한 중심의 일원적 질서
48년 이후 흉노는 계속된 분열과 상쟁 상태였다. 한의 지원을 받는 남흉노와 한의 견제를 받는 북흉노를 통합해 초원에 과거와 같은 유목제국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갔다. 한이 이를 받아들일 리 없었고, 무엇보다 남북 흉노 모두 그럴 만한 역량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한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가 구축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과 흉노가 함께 이루던 ‘이원적 질서’는 흉노의 분열로 인해 한이 주도하는 ‘일원적 질서’로 바뀌었다. 이제 흉노는 스스로 아무리 ‘자존自尊’을 지키려 해도 한에 종속된 여러 변수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처지가 되었다. 이런 양상은 남북 대결 구도가 심화하면서 더 확고해졌다. 흉노는 이제 ‘각자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 p.331

흉노의 한계와 역사적 유산
흉노는 지배 집단 내의 계승 분쟁, 형제 상속으로 인한 대선우의 권위 약화 등으로 체제의 결속력이 점차 약화되어 한을 압도할 만한 틀을 만들지 못했다. 경제적 토대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고, 고등 종교나 외부 정치 체계 등을 수용하여 ‘불완전한 체제’를 보완할 장치를 만들지도 못했다. 이러한 한계를 그대로 떠안고 있었기에 거대 유목제국으로서 위상을 확립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흉노는 중국과 겨룰 만큼 강력한 유목제국으로 오랜 시간 존속했다는 인상을 남겼고, 유목제국의 ‘원상原象’으로서 이후 초원 유목민을 대표하는 통칭이 되었다. 이는 중국과 같은 하나의 ‘역사 단위’로서 초원의 유목 세계, 즉 북아시아사의 ‘시작점’에 흉노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흉노 유목제국사의 전개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고대 유목제국’의 성격에 새롭게 접근해볼 수 있다. 흉노는 이후 유목 세계의 중요한 전통이자 영광스러운 ‘유산’의 하나가 되었다. 6세기 돌궐, 13세기 몽골 같은 거대 유목제국에서도 자신의 정통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제의 하나로 흉노를 끌어왔다. 그 밖에 오호십육국시대 흉노의 계승 국가를 자처한 ‘후계’가 계속 등장한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p.378~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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