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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즈번드 시크릿

[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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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536쪽 | 140*210*35mm
ISBN13 9788947549073
ISBN10 894754907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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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아래층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황급히 과거에서 빠져나온 세실리아는 벌떡 일어섰고, 천장에 엄청나게 세게 머리를 부딪쳤다. 아우, 벽들은 정말 지겨워. 세실리아는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으며 비틀비틀 뒷걸음치다가 팔꿈치로 존 폴의 신발 상자를 쳤다. 세 개도 넘는 상자의 뚜껑이 열렸고, 그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이 쏟아졌다. 세실리아가 신발 상자를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세실리아는 다시 욕설을 내뱉으며 머리를 문질렀다. 정말 아팠다. 쏟아져 나온 종이들을 보니 1980년대에 받은 영수증도 있었다. 세실리아는 영수증을 신발 상자에 밀어 넣었다. 그때 문득 하얀 편지 봉투에 적힌 자신의 이름이 보였다. 세실리아는 봉투를 집어 들고 찬찬히 살폈다. 존 폴의 글씨였다.

나의 아내 세실리아 피츠패트릭에게
반드시 내가 죽은 뒤에 열어볼 것

세실리아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지만, 곧 멈추었다. 마치 파티에 가서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듣고 신나게 웃다가, 불현듯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 심각한 말이란 걸 깨달은 사람처럼.
--- p.27

“편지 찾았어.”
세실리아가 편지 봉투 앞면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말했다. 존 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세실리아는 자신이 편지에 대해 물을 것임을 알았다. 두 사람은 15년 동안 부부로 살았다. 두 사람 사이에 비밀은 없었다.
“무슨 편지?”
“자기가 나한테 쓴 편지.”
세실리아는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되도록 가볍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래야 이 편지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자기가 죽은 다음에 펴보라는 편지 말이야.”
남편에게 ‘자기가 죽은 다음에’라는 말을 할 때 목소리가 이상해지지 않는 아내는 없을 거다. 갑자기 전화기 너머에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멀리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세실리아는 전화가 끊어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존 폴은 지금 식당에 있는 것 같았다. 세실리아는 위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존 폴?”
--- pp.34~35

“지금 농담하는 거라면, 전혀 재밌지 않아.” 테스가 말했다. 윌이 테스의 한쪽 팔에 손을 올렸다. 펠리시티가 테스의 다른 쪽 팔에 손을 올렸다. 두 사람은 테스를 양쪽에서 떠받치는 북엔드 같았다.
“정말, 정말, 정말 미안해.” 펠리시티가 말했다.
“정말 미안해.” 윌도 따라했다.

두 사람은 꼭 노래를 부르는 듀엣 같았다. 윌의 얼굴이 곧 죽을 것처럼 새파랬다. 펠리시티의 목에는 붉은 반점이 뚜렷하게 세 개 나 있었다. 테스는 그 붉은 반점이 해답을 쥐고 있기라도 한 듯 잠깐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반점들은 새롭게 태어난 펠리시티의 목에 생긴 지문처럼 보였다. 마침내 테스는 시선을 들어 펠리시티의 눈을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아몬드 모양의 초록색 눈을. ‘뚱뚱한 아이의 정말 예쁜 눈’은 충혈된 채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지금 두 사람이…….” 테스는 말을 멈추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단 걸 네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펠리시티가 서둘러 말했다.
“우린 안 했어. 정말이야.” 윌이 말했다.
“그러니까 아직 잠은 안 잤단 말이지.” 테스는 두 사람을 보았다. 두 사람 모두 테스가 선을 넘지 않은 자신들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듯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자고 싶잖아.” 테스는 터무니없어서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한테 털어놓는 거잖아. 둘이 자고 싶어서.”
--- pp.35~36

“어머니.” 로렌이 말했다.
레이첼은 로렌을 보았다. 로렌은 엄청난 부탁을 하려는 사람처럼 잔뜩 긴장한 것 같았다. 그래, 로렌. 너희가 뉴욕에 가 있는 동안 내가 제이컵을 돌볼게. 2년이라고? 문제없어. 마음 놓고 가. 너희 시간을 마음껏 즐겨.
“이번 주 금요일이 성 금요일이잖아요. 그날이, 기일이잖아요…….” 순간, 레이첼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래, 그렇지.” 레이첼의 입에서 가능한 한 가장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 주 금요일 이야기는 로렌과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 누구와도 하고 싶지 않았다. 레이첼은 그 금요일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몇 주 전부터 온몸으로 느꼈다. 해마다 여름이 끝나고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면 그 사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온몸의 근육이 긴장하고, 온 피부가 공포에 질려 따끔거리면서 레이첼에게 기억하라고 재촉했다. 그래, 또 가을이구나. 정말 애석한 일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가을을 정말 좋아했는데.
--- p.71

자니는 마카롱을 좋아했을 거야.
레이첼의 손가락에서 마카롱이 빠져나갔다. 레이첼은 날아오는 주먹을 막으려는 사람처럼 급히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강한 주먹이 레이첼을 강타했다. 이렇게 아픈 주먹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떠 멍하게 있으면 갑자기 누군가 강하게 주먹을 날렸던, 자니가 죽은 뒤 처음 1년만큼이나 느닷없고 아픈 고통이 느껴졌다. 이제 는 복도 끝에 있는 방에 자니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느끼는 고통, 지독한 냄새가 나는 데오도란트를 뿌리는 자니도, 열일곱 살의 완벽한 피부에 오렌지색 메이크업을 덧바르며 마돈나 춤을 추는 자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느꼈던 그런 아픔이었다.

이건 너무나 불공평해. 레이첼은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심장이 비틀리고 갈가리 찢기는 것만 같았다. 내 딸은 이 바보 같은 과자를 좋아했을 텐데. 내 딸은 직업을 가졌을 텐데. 내 딸도 분명 뉴욕에 갈 수 있었을 텐데.
--- pp.92~93

천장에서 소리가 들렸다.
세실리아는 벌떡 일어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소린지 깨달으면서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존 폴은 다락에 있었다. 그는 결코 다락에 가는 사람이 아니다. 폐소공포증 때문에 힘들 땐 입술에 땀방울까지 맺히는 사람이다. 그런 존 폴이 다락에 올라가다니. 그 편지엔 반드시 찾아야 할 이유가 있는 거다.
“내가 거길 올라간다면 그건 죽고 사는 문제가 생겼기 때문일 거야.” 존 폴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 편지가 죽고 사는 문제란 말이야?

세실리아는 주저하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놓인 전등을 켜고 서류 정리함의 맨 위 서랍을 열고 ‘유언장’이라고 적힌 빨간색 서류철을 꺼냈다. 가죽 의자에 앉아 책상 쪽으로 몸을 돌리고 서류철에서 편지를 꺼내 전등에서 흘러나오는 조그만 노란 빛에 편지를 갖다댔다. 세실리아는 첫 번째 서랍을 열어 편지 칼을 꺼냈다.

천장에서 미친 듯이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쿵!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존 폴은 미친 남자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제야 세실리아는 존 폴이 지금 오스트레일리아에 있으려면 어젯밤에 세실리아와 전화를 하자마자 공항으로 달려가야 했을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세상에, 존 폴. 대체 이 편지가 뭐기에 그런 거야?
--- pp.207~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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