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진짜 그림이다. 공주를 지키기 위해서 저렇게 영웅적으로 싸우는 기사라니…….”
이야기가 좋았다.
너무나도 낭만적이라서 웬만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모두 빠져들 수밖에 없으리라.
그때 직원 한 사람이 갑자기 박수를 쳤다.
“앗!”
“왜, 무슨 일인데? 뭐라도 발견했어?”
“그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공주가 죽었는데요.”
“뭐, 뭐?”
“그러니까… 아래쪽의 화면을 보세요. 방치되어서 죽었습니다. 백마랑 같이요.”
“…….”
완전하게 전투에 몰입해 버린 위드는 공주와 백마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
혼자서 드레이크에 올라타고 나서 기사답게 호쾌하게 싸우다 보니 정작 공주는 몬스터들에 의해 죽어 버린 후였다.
--- pp.77~78
─ 나를 조각해 줘.
─ 제발.
─ 어서 나를 표현해 봐라. 네가 조각사라면 그 하찮은 재주를 발휘해. 크하하하하핫!
─ 우리를 외면하는 이유가 뭐지? 너까지 외면하면 우리는 영원히 세상에 나설 수가 없게 될 거야.
─ 왜 프레야는 조각하면서 우리는…….
영문도 알 수 없는 내용의 속삭임들이 귀를 간질였다.
“대체 뭘 조각해 달란 건지 얘기를 하라니까!”
참다못한 위드가 버럭 고함을 치니, 근처에 있던 유저들이 돌아봤다.
“왜 저러는 거야?”
“성질 참 안 좋네.”
“냅 둬. 예술가들이 다 저런 식이지.”
“뭔가를 창조하기 위한 조각사의 고뇌일 거야.”
다행히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넘어가 줬다. 당사자인 위드는 정말로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 나를 조각해라, 나를!
─ 조각하지 않을 거야? 네게는 굉장한 영광이 될 텐데…….
─ 무지한 조각사여, 우리를 구원해 줘.
무엇을 조각해야 하는지도 말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조각해 달라고 떼만 쓰고 있다.
--- pp.148~149
위드는 단순한 노가다라도 반갑게 받아들였고, 조각술의 상당 부분도 그렇게 성장시켰다. 하지만 그러면서 조각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지는 않은 것 같았다.
‘조각술로 받을 수 있는 의뢰들. 그것은 어쩌면 이렇게 한심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거대 조각상들을 특기처럼 만들었으나, 그게 조각술 의뢰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모험을 하고, 전투를 하고, 동료들을 구하는 이런 일들은 조각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골방에서 끝없이 조각품만 만들어야 될지도 모른다. 재봉사나 대장장이도 사실 그 형편이 그렇게 다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간에 조각사로서는 모험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들었다.
‘아니. 젠장! 이건 사실일 거야. 조각술로 모험을 하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잖아?’
위드는 절망에 빠져들었다.
--- p.347
“흙꾼 소환. 화돌이 소환!”
땅과 불이 일어나며, 다시금 소환된 흙꾼과 화돌이!
위드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위드 만세!”
“만세!”
철저한 세뇌 작업이 하루 종일 진행되었다.
존경심을 품지 않고는 못 배겨 나갈 치밀한 세뇌 작업!
“내가 누구냐!”
“절대 불멸하며, 하찮은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어 육체를 만들어 주신 창조자입니다.”
“나의 말은?”
“이 땅에서 소멸되더라도 지켜야 할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하찮은 이 몸뚱어리가 창조주의 명령을 수행하다 소멸되는 것은 더없는 영광일 것입니다.”
그다음 날, 흙꾼들이 야심차게 동원된 장소는 위드의 소유인 루비 광산이었다.
“조심해서 캐내라. 조그만 흠집이라도 생겨선 안 돼!”
정령술사들은 정령들을 친구처럼 대하며, 존중해 준다. 귀엽고 깜찍한 정령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베르사 대륙을 모험한다. 하지만 위드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 정령들은 일용직 노동자처럼 루비를 캐내는 데에 부려지고 있었다.
--- pp.477~478
김한서 부장은 그의 스승이며, 하늘이 내린 진정한 천재 과학자 유병준을 보고 있었다. 하얗게 센 머리에 핏발이 선 것처럼 충혈된 눈동자, 두꺼운 안경알.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유병준이었지만, 그의 두뇌는 천재라는 수식어조차도 실례가 될 정도다.
‘세상에서는 나와 17인의 과학자들이 함께 〈로열 로드〉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지만…….’
김한서 부장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외부로 알려진 것과 진실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실제로는 스승님께서 개념을 만들고, 선도 기술들도 개발하셨지. 나와 다른 과학자들은 스승님께서 만들어 준 뼈대에 살을 붙인 정도에 지나지 않아.’
김한서 부장과 다른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담당한 개발 파트들을 수행하기도 벅찬 지경이었다. 불가능하다고 일컬어지는 완벽한 가상현실 시스템은 말 그대로 신기루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실패의 악몽을 꾸며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던 것도 수십 차례. 길이 막혀 있을 때마다 유병준이 나서서 도움을 주었고, 시스템 전체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도 그뿐이다.
--- pp.516~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