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쇼(젠장)!”
바당을 힐끔거리던 서복의 고개가 쑥 들어갔다. 티나지 않게 눈알만 굴렸는데도 귀신같이 알아채고 불호령이었다. 세화댁과 한씨가 지주 앞으로 달려갔다. 지주가 쏘아대는 말을 판구가 더듬거리며 통변했다.
“에…… 나 땅이라는 마음으로 일허라게. 잡초 하나를 뽑아도 나가 주인이다 허고……. 조선 사름덜(사람들)은 그런 게 없어서 나라도 망허고 농사도 망허라 거라. 하이 하이, 이삭이 가불가불허다고 뭣이렌 햄신디(뭐라고 하는데), 금비를 진작에 뿌렸으민 땅이 이추룩 거칠었을탸?”
나 땅이라는 마음으로, 나가 주인이다 허고……. 개소리허네. 서복이 실소했다.
---「바당밭으로」중에서
돈을 받은 석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어제만큼 해왔는데 돈이 적다는 것이었다. 삼동이 망사리를 다시 저울에 올렸다.
“네 근하고 열 돈쭝. 어제는 네 근 반이었으니 족은 게 맞수다.”
저울을 보려고 고개를 빼는 석실을 보고 삼동이 피식 웃었다.
“보믄 알아지쿠강?”
삼동이 직접 확인해보라며 비켜서고는 장부도 내밀었다. 석실의 얼굴이 벌게졌다.
“마, 맞는 거 닮으다(같다).”
“맞는 거 닮은 게 아니고 맞는 거우다. 사름보다 정확헌 게 저울이고 저울보다 더 정확헌 게 이 배삼동이 눈이라마씨.”
---「조합이 악귀신이라」중에서
‘きたない, 出て行け, くそたれ!’
넉실이 칠판에 일본 글자를 적고는 유창하게 읽어 내렸다.
“기타나이, 데테이케, 구소타레!”
해녀들이 오오, 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나가 대판 가서 처음 배운 말이우다. 뜻은, ‘더러워, 꺼져, 빌어먹을 놈아!’”
탄성이 뚝 끊겼다.
“대판 가기 전에 왜말 공부헌답시고 나 이름은 어쩌고 열심히 공부해갔는디 그런 말은 노시 쓸 데가 읏어마씨. 나가 누군지 물어보는 사름이 아무도 읏어수다. 거기서 난 그냥 조센삐니까예.”
순식간에 침울해진 분위기를 의식한 넉실이 밝게 웃었다.
---「기타나이, 데테이케, 구소타레!」중에서
“빈대, 벼룩이 튀어봐야 누가 겁이나 먹나게? 때려죽이믄 그만인디.”
“그걸 알멍도 무사 일을 벌였시니?”
“계속 이렇게 싸우다 보민 달라진다 허드라고.”
“누게가?”
“막쓰 렌닌인가 허는, 엄청나게 유식헌 사름이 있는디, 그 사름이 우리같이 힘없는 사름덜이 다 같이 들고 일어나민 세상이 뒤집힐 거라 했다는 거라.”
힘없는 사름덜이 들고 일어나민……. 서복의 뇌리에 그러다 스러진 몇몇 이름들이 스쳤다. 그중에는 한실도 있었기에 서복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졌다.
---「이자 타타카완 이자」중에서
“테러리스트 조사는 어찌 되고 있나?”
승일이 조서를 훑어보며 물었다.
“아직은 이렇다 헐 만한 게…….”
“고 군은 테러리스트가 여기 왜 왔다고 생각하나?”
“그것이…… 테러리스트난 테러허레 온 거 아니쿠과?”
승일이 눈을 들어 판구를 보았다. 인상이라도 쓸 줄 알았는데 예의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정신 나간 놈이 아니고서야 이런 촌구석에서 무슨 테러를 하
겠나? 여긴 바다하고 똥 싸제끼는 망아지 새끼들밖에 없는데.”
다른 것도 많은디, 생각하며 판구가 예예, 대답했다.
“이 마을 누군가를 만나러 온 거다.”
“예예, 예? 누구를 만나러 와시카마씨?”
승일의 눈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판구가 제 실수를 알아차리고 황급히 덧붙였다.
“아, 그걸 제가 알아봐야 허는 겁주. 조용히, 티 나지 않게. 지금 당장 나가보쿠다.”
---「영허영은 못 살주」중에서
문득 저희들의 처지가 새삼스레 서글퍼졌다. 천여 명이 모이고서야 겨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러고도 알량한 약속 한마디 받아내는 게 전부다. 닷새 안에 뭘 어떻게 해주겠다 구체적으로 확약을 받아내고 싶어도 저들의 심기를 거슬러 일이 틀어질까 봐 그조차 하지 못한다. 마주 앉아 있지만 실상 해녀들은 한참 낮은 바닥에 겨우 엉덩이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들이 허락한 자리에, 저들이 허락한 방식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도사와의 독대」중에서
“아레와…… 난데스까?(저게…… 뭐죠?)”
잠시 후 일인 순사가 바당 저편을 가리켰다. 뱃전에 늘어진 승일이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돌아보았다. 징글징글한 파도만 보일 뿐 별다른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멍청한 놈이 물귀신에 홀렸나.”
승일이 조선말로 궁시렁거렸다. 일인 순사가 재차 저걸 보라고 손짓했다.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리던 승일이 눈을 비볐다. 시커먼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개가 장막 걷히듯 서서히 옅어지면서 둥그런 보름달이 드러났다. 훤한 달빛에 시야가 트이며 시커먼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위로 뾰죽 솟은 것은 지느러미였다.
“……쿠지라(고래)?”
---「먹돌아, 들러키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