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통해서 우리는 사물들 안에 깊숙이 감춰 두신 성부의 사랑을 깨닫는 계기를 얻는다. 그래서 저 사랑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깊이 숙고하겠다면, 《성경》에서 파악할 수 있는 하느님 사랑의 방식에만 한정하지 말고 계속해서 우리 앞에 펼쳐지는 창조 활동 전반에 걸쳐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을 음미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시야를 넓혀야 할 것이다.
--- p.29~30, 「1장 창조」 중에서
성자께서 개시하신 새로운 형국은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성자께서 영원히 머무르시는 나라다. 그 나라는 무한한 세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능가한다. 성자께서는 완전하게 실현하시지만, 인간적인 시각에서는 유한한 행위들로 비쳐지는 그런 것들로써 그때마다 무한성이 드러난다.
--- p.50~51, 「2장 인간적인 유한성의 극복」 중에서
처음 사람이 죄를 저지르고 타락한 직후 하느님께서는 그 죄인을 부르시어 말씀을 나누셨다. 사람의 변절에도 불구하고 영원하신 분이 한낱 사멸하고 말 존재와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 전혀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대화가 기도의 근원이다. 기도하는 이는 누구든 계속해서 하느님을 상대로 대화하는 기회를, 그러니까 인간적인 유한성이 하느님의 무한성의 일부를 공유하며 영원성에서 유래하는 일련의 답변을 들을 기회를 얻는다.
--- p.52~53, 「2장 인간적인 유한성의 극복」 중에서
신앙인은 자신의 사랑이 자신이 추구하는 의미에 국한해서만 결실을 맺길 바라지 않듯이 오직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웃)만을 집중적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랑을 하느님께 내맡긴다. 그로써 그 사랑 자체가 자라나도록 애쓴다. 그 사랑이 하늘나라로부터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말이다. 그와 같은 사랑은 기도와 마찬가지로 좋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92, 「4장 삼위일체적인 사랑의 중재」 중에서
성자께서 당신 자신이 아니라 성부를 계시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던 것처럼, 그렇게 성령께서도 단지 당신 자신을 돋보이게 하시거나 자신의 이름으로 매사를 처리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자의 이름으로 성부를 새로운 방식으로 알려 주기 위해서 파견되셨다. 그리하여 [성령께서는] 하느님 안에서 생기 넘치는 그 사랑이 우리 안에서도 생기가 넘치길 바라신다.
--- p.126, 「5장 성부께로 나아가는 길을 안내하시는 성령」 중에서
창조된 세상에 대해 “참 좋다!”고 시인하신 하느님의 말씀은 삼위일체의 세 신적인 위격이 서로를 향해 건네시는 말씀이요, 각 위격이 서로 구별되는 차이 안에서 다른 (두) 위격에 대해 선언(표현)하시는 의미에서 “참 좋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 p.179, 「7장 교회 안에서 성부와 그분의 계시」 중에서
하느님께서는 단지 말씀을 건네시는 행위로만이 아니라 침묵하시는 행위로도 세상과 관계를 맺으신다. 이러한 침묵은 분명히 말하지만 단순히 세상과의 관계를 단절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창조 이전부터 영원히 성부께서 성령 안에서 성자와 함께 계셨던 영원한 기억을 되돌리는 훨씬 더 폭넓은 관계로의 회복을 함의한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늘 사랑 안에 머물러 계신다는 또 하나의 표지다.
--- p.196~197, 「8장 성부와 성령의 침묵」 중에서
하느님께서는 환시를 통해서도 관조하는 어떤 것(관상의 대상)에 이르게 하실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우시다. 나아가 그분께서는 맹목적인 신앙을 다시금 관조하는 신앙으로 바꾸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조 역시 그분의 침묵에 속한다.
--- p.217, 「8장 성부와 성령의 침묵」 중에서
교회는 제도이자 하나 됨을 위한 울타리로서 개인적으로 초대받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교회 전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 p.267, 「10장 삼위일체 하느님의 초대」 중에서
비틀거리는 몸으로 뒤따르려고 애쓰는 사람은 스스로 헛발질을 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자신을 붙잡아 주는 것을 의식할 것이요, 나아가 마치 그가 스스로 전혀 헛디디지 않은 것처럼 느끼거나 하느님께서도 전혀 눈치채지 않으신 것처럼 느끼며, 그분이 그의 ‘예’라고 응답하는 나약해진 목소리를 염려하시어 완전한 것으로 끌어 올려 주시듯이 그가 잘못된 길로 새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붙들어 주시는 것을 느낄 것이다.
--- p.287, 「11장 사람의 응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