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왕이라는 사자의 사냥과 인간의 노동 사이에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인간은 의식적으로 노동을 한다는 점이다.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로 불리는 카를 마르크스는 그것을 ‘선취’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가령 꿀벌은 매우 정교한 솜씨로 집을 짓지만 자기가 짓는 벌집이 어떤 모양인지를 미리 생각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한다. 반면에 인간은 아무리 서툰 목수라 할지라도 어떤 집을 지을지 미리 생각하고 짓는다는 것이다.(44쪽)
고대 그리스?로마 사회에서는 노예제의 발전과 정복 전쟁, 상업의 발전이 서로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그리스와 로마의 시민계급은 노예제를 바탕으로 한 생산 토대 위에서 고대 문화를 꽃피우고 독특한 정치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노예제적 생산을 기반으로 형성된 이러한 순환 관계는 직접 생산자인 자영 농민과 수공업자를 몰락시키고 그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노예제 사회의 쇠퇴를 초래하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즉 고도로 발달했던 고대의 지중해 문명은 역설적으로 자기를 유지, 발전시켰던 생산 체제가 생산력의 한계를 보임으로써 몰락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82쪽)
중세 도시는 상공업의 중심지로서 화폐 경제가 발달했기 때문에 봉건적 경제 체제의 변질과 분해를 초래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봉건 사회가 해체된 주요한 이유는 지대 형태의 변천과 이에 따른 생산력 증대를 통해 자영 농민이 출현함으로써 봉건적 예속 관계가 붕괴하기 시작한 데서 찾을 수 있다. (165쪽)
비록 그 본래의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십자군 원정은 동방 지역과의 교역과 유럽 내부의 상업을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십자군은 동방의 대도시를 점령, 파괴, 약탈함으로써 아라비아권 도시의 쇠퇴를 초래했다. 반면에 십자군 원정을 통해 서유럽은 금은 등의 재화와 보물을 획득함으로써 커다란 부를 집적했으며, 특히 이탈리아의 상인들은 전리품을 수송하거나 점령 지역에 상업상의 거점을 확보해 유럽 상업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179~180쪽)
국가의 통제와 지원 아래 실시된 중상주의는 원래 안정적인 해외 시장의 확보를 목표로 한 것이었지만, 유럽 국가들 사이에 경쟁적으로 채택되어 해상 패권을 둘러싼 다툼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식민지배, 특히 아메리카에 대한 지배를 낳았다. 아메리카에서 약탈한 보물, 아프리카의 노예무역에서 나오는 잉여 노동의 착취, 강제노동에 의한 아메리카의 광산물과 농업 생산물 등 대외적 수탈에서 오는 엄청난 부는 자본주의 이행기의 과도적이고 불완전한 경제를 밖으로부터 보완하고 자극하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198쪽)
세계 시장의 갑작스러운 확장, 유통되는 상품의 배가, 아시아의 산물과 아프리카의 금은보화를 지배하려고 했던 유럽 국가들 사이의 경쟁과 식민제도의 확립은 생활에서 봉건적 한계를 무너뜨리는 데에 크게 공헌함으로써 근대 자본주의의 발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한데 묶어 상업혁명이라고 한다. 간단히 정의하면 상업혁명이란 15세기 말 신대륙의 발견과 신항로 개척으로 상업자본의 활동 영역이 확대됨으로써 일어난 상업 활동의 변혁과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변화를 말한다.(215~216쪽)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자본주의가 확립된 것은 봉건적 생산양식이 가장 먼저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14세기 후반 지대 금납화가 나타난 뒤 절대왕정기에는 봉건적 토지 소유와 길드적 생산 체제가 상당히 해체되거나 변용되었으며, 직접 생산자층의 양극 분해를 통해 새로운 생산관계가 형성되고 있었다. 국내적으로는 생산수단의 새로운 소유자와 임금노동자 사이의 계급관계를 기반으로 사회적 분업이 상당한 규모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봉건적 생산 체제가 새로운 생산 체제로 전환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1640년부터 시작된 시민혁명이다.(239~240쪽)
기계가 도입되면서 생산성이 급격히 상승하자 수작업에 기반을 둔 경영 방식은 해체되었고, 빈민과 대다수의 독립 생산자는 토지와 다른 생산수단에서 완전히 분리되었다. 이로써 노동자는 오로지 임금소득으로만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산업혁명 이후의 경제성장은 이전 역사에서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속화되었다. 요컨대 자본주의 생산 체제의 확립은 기계제 공장제도를 신속하게 도입한 산업혁명에서 시작되었다.(242쪽)
미국은 독립전쟁에서 승리해 정치적 독립을 획득했을 뿐 아니라, 경제 잉여의 국외 유출을 막고 국내 산업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계기를 마련했다. 전쟁은 영국에서 공업 제품이 수입되는 것을 중단시켰으므로, 전쟁 그 자체가 고율의 보호관세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래서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제철, 모직물, 면직물, 피혁 등의 공업이 급속히 발전했다. 이처럼 독립전쟁으로 미국은 남부에 노예제를 잔존시키면서도 산업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확립했다.(273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확산되면서 19세기 유럽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급속히 확장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급팽창하던 유럽과 미국의 자본주의는 1873년을 계기로 전례가 없는 경제 공황에 빠진다. 이를 대불황이라고 부른다. 20여 년 동안이나 진행된 대불황을 계기로 세계 경제는 산업자본주의 시대를 마감하고 독점자본주의 시대로 전환하게 된다.(280쪽)
경제적 민족주의와 영국의 공업이 패권을 상실한 것은 19세기 후반에 불어닥친 공황의 결과였다. 그런데 대불황이 초래한 더욱 중요한 결과는 자본주의의 구조와 성격을 변화시켰다는 데에 있다. 우리가 대불황의 원인과 결과를 주목하는 주요한 이유도 바로 이로 인해 독점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탄생했기 때문이다.(286쪽)
제1차 세계대전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나라는 미국이었다. …… 전쟁 경비 면에서도 영국이 국부의 32퍼센트, 프랑스 30퍼센트, 독일 22퍼센트가 상실되었으나, 미국은 9퍼센트를 상실했을 뿐이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가장 높은 공업 생산력과 금융력을 지닌 경제 강대국으로 부상했다.(296쪽)
대량생산 체제가 발전하고 또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량으로 생산된 상품에 대한 대량판매와 대량소비를 가능케 하는 대중 사회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과거에는 소수의 상류계층만이 누릴 수 있었던 물질적 소비생활을 일반 대중들도 누리게 되었다는 것, 즉 생활양식의 현대화와 평준화를 의미한다.(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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