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계절의 큰 바퀴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이 여름의 녹음처럼 짙게, 가을의 낙엽처럼 풍성하게, 겨울의 구름처럼 자욱하게, 봄의 꽃처럼 어여쁘게, 다시 돌아온 여름의 하늘처럼 찬란하게, 나의 눈과 머리와 가슴에 쌓였다. 마흔이 넘는 해를 살아오는 동안 내가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나의 세상을 넓히고, 그 세상을 담는 시선을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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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사고를 확장한다고들 했던가. 늘 들어온 그 뻔한 말이 불현듯 ‘탁’하고 밝게 불이 켜진 등불처럼 일렁였다. 이 낯선 나라에서의 시간이 적어도 하나의 의미는 되어 돌아가리라.
--- p.33
언어와 배경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도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마음이 흘렀다. 내가 받은 이 마음을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를 위해 밖으로 흘려보낼 수 있을까? 영국의 요란한 생일파티 문화가 여전히 조금은 과하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내게 영국에서의 생일파티는 함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연대와 배려로 각인되었다.
--- p.114
생각만으로도 매일 팍팍하게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향기가 돌고, 충분히 애써 아껴줘도 아깝지 않을 나의 평범한 하루가 어여뻐진 것 같았다.
--- p.141
상대를 생각하는 배려와 양보, 그리고 누군가가 베푼 호의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감사의 손 인사 덕분에, 대부분의 영국 도로는 별도의 통제하는 사람 없이도 잘 흘러갔다. 그리고 나는 영국 도로 위의 다정한 손 인사를 만날 때마다 영국인들의 배려와 예의에 반했다. 세상을 눈부시게 발전시키는 것은 거대한 자본과 대단한 기술일 것이나, 세상을 살만하게 만드는 것은 이렇게 작고 다정한 배려가 아닐까?
--- p.156
기차가 떠나는 뒷모습이 영화 같았다. 덫과 같은 암담한 현실을 떨치고 오래 소망한 무엇인가를 향해 우직하게, 또 힘차게 달려갈 주인공의 운명을 암시하는 영화의 프롤로그, 혹은 에필로그. 시작과 끝이 맞닿은 새해 첫날의 증기기관차와 그 기차가 내뿜는 하얀 연기, 그리고 공기를 흔드는 기적소리가 먹먹하고 아련해서, 어쩐지 내게도 영화 같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고동쳤다. 나의 기적을 싣고 떠나는 기차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차역에 서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p.201
그러나 방금 사라진 한 시간처럼 인간이 임의로 시간을 거스르고 뛰어넘을 수 있다면, 그동안 우리가 매여 있던 초, 분, 시간, 일, 월, 년 등과 그로부터 정해지는 나이라는 숫자는 우리에게 편의성 외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 그 분절된 숫자들이 우리가 태어나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상의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나의 시간이 멈출 때까지 나는 연속된 순간에 나로서 존재하며 살아갈 뿐이고, 그러니 세상이 임의로 구분 지은 숫자에 걸려 주저앉고 싶지 않았다.
--- p.272
짓밟혀도 꿋꿋이 피어나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칭송받는 민들레도 사실은 힘들었나 보다. 그리하여 밤이면 몸을 웅크려 한숨을 고르고, 억척스럽게 살아내야 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지. 작고 어여쁜 노란 꽃의 지혜가 신기하면서도 어쩐지 애잔했다.
--- p.297
영국에서의 시간이 익어갈수록 나 역시, 영국의 하늘에 회색 구름이 걷히고 눈부신 파랑이 나타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창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갔다. 귀찮음을 핑계로 뭉그적대거나, ‘나중’을 위해 ‘지금’을 등한시했다가는 눈앞에 나타난 맑은 하늘이 금세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찬란히 맑은 지금, 현재의 순간을 흠뻑 들이켰다. 언제 신기루처럼 사라질지 모를 찬란한 현재의 의미를.
--- p.316
도시는 ‘다름’을 가지고 온 사람에 의해 새로워지고, 사람은 도시의 ‘새로움’을 짐가방에 넣을 때마다 달라진다. 제 자리를 묵묵히 지켜 빛나는 도시와 자유로이 유랑하며 성장하는 사람. 서로 다른 이치로 생명을 이어가는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사람들 중에 다섯 번의 계절을 함께 보낸, 바스와 나의 인연이 있었다.
--- p.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