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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초판 완역본)

세계교양전집-1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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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140*214*9mm
ISBN13 9791193130216
ISBN10 1193130212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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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벌써 중천에 솟아 있었다. 뙤약볕이 땅을 짓눌렀고 온도는 빠르게 높아졌다. 행렬을 시작하기 전에 왜 그리 오래 기다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검은색 옷을 입고 있어 더웠다. 페레 씨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페레 씨 쪽을 보고 있을 때 원장이 페레 씨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가 말하길, 엄마와 페레 씨는 저녁에 간호사를 동반하고 종종 마을까지 산책하러 갔다고 한다. 주변의 풍경을 살폈다. 하늘에 닿을 듯한 언덕까지 늘어선 삼나무 가로수 사이로 적갈색과 초록색의 땅, 띄엄띄엄한 그림 같은 집들을 보니 엄마가 그럴 만했다고 생각했다. 이 고장에서 저녁은 우수 어린 휴식과도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글거리는 태양이 그 풍경을 비틀어버려서 비인간적이고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제1부」중에서

그날은 몇 가지 장면으로만 기억에 남아 있다. 가령 마을 어귀에서 마지막으로 우리와 합류했을 때 페레 씨의 얼굴 같은 것이다. 흥분과 슬픔이 뒤섞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가 뺨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주름 때문에 곧장 흐르지는 않았고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져 엉망이 된 얼굴 위로 반질반질한 눈물 자국이 남았다. 교회와 인도에 있던 마을 사람들, 묘지에 있는 무덤들에 붉게 핀 제라늄, 실신한 페레 씨(마치 팔다리가 빠진 꼭두각시 같았다), 엄마의 관 위로 떨어지던 핏빛 흙, 거기에 섞여 있던 뿌리들의 하얀 속살, 또다시 사람들, 목소리들, 마을, 카페 앞에서의 기다림, 모터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부르릉 소리, 버스가 빛의 둥지 알제에 도착하고 이제 누워서 열두 시간은 잘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느낀 기쁨.
---「제1부」중에서

그날 저녁 마리가 날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하고 싶은지 물었다. 결혼하든 안 하든,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마리가 원하면 결혼할 수 있다고. 그러자 마리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물었다. 나는 이미 말했듯이 결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마리를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그럼 왜 나랑 결혼하는데?” 마리가 물었다. 그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고 그녀가 결혼을 원한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결혼을 원하는 건 그녀였고 나로서는 그저 그러자고 대답한 것이다. 마리는 결혼을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제1부」중에서

붉은빛이 여전히 작렬하고 있었다. 바다는 모래 위에서 잔잔한 파도들로 가쁜 숨을 쉬며 헐떡이고 있었다. 나는 바위를 향해 천천히 걸었고 태양 아래서 이마가 부푼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모든 열기가 나를 짓눌러서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웠다. 얼굴에서 뜨거운 태양의 숨결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바지 주머니에 넣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태양과 태양이 내게 쏟아내는 모호한 취기를 이겨내려고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모래와 하얀 조개 그리고 유리 조각이 뱉어내는 날카로운 빛을 받을 때마다 턱에 경련이 났다. 나는 오랫동안 걸었다.
---「제1부」중에서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숨결을 옮겨 왔다. 하늘이 활짝 열려 뜨거운 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내 존재는 온통 긴장했고 나는 권총을 움켜잡았다. 방아쇠를 당겼고 손잡이의 배가 매끈했다. 그때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날카로운 소음 속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나는 땀과 햇볕을 떨쳐버렸다. 내가 하루의 평온을, 행복했던 해변에서의 특별한 침묵을 깨뜨렸다는 걸 알았다. 그때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에 네 발을 더 쐈고 총알은 몸에 박혀 보이지 않았다. 네 발의 총성은 마치 불행의 문에 네 번 짧게 노크하는 것 같았다.
---「제1부」중에서

마송은 내가 솔직한 사람이고 “게다가 착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귀를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다음은 살라마노 영감이었다. 그는 내가 자기의 개를 살갑게 대했고 나의 어머니와 나에 대한 질문에는, 내가 엄마와 더 이상 나눌 이야기가 없다고 했고 그래서 엄마를 양로원에 맡긴 것이라고 대답했지만 이 또한 다들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는 “이해할 수밖에 없지요, 이해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제2부」중에서

그는 인간의 정의가 가차 없이 처벌하길 감히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 범죄에 대한 공포보다 내 냉담함에서 느낀 공포가 더 크다고 기탄없이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어머니를 정신적으로 살해한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회를 스스로 등졌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전자는 후자의 행위를 예고하는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이를 공고하며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여러분, 저는 확신합니다. 저 자리에 앉아 있는 저 사람이 내일 저 자리에 앉을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유죄라고 주장하더라도 여러분은 제 생각이 지나치다고 여기지 않으실 겁니다. 피고인은 범죄 행위에 걸맞은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여 덧붙였다.
---「제2부」중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죽는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삶이 꼭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님은 모두가 알고 있다. 사실 서른에 죽든 예순에 죽든 죽는 나이는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게 자연히 두 경우 모두 다른 남자들과 여자들은 살아 나갈 것이고 이는 수천 년 동안 그러했다. 요컨대 이보다 분명한 것은 없다. 지금이든 20년 후든 죽는 것은 어찌 됐든 나였다. 다만 이 순간 이런 추론에서 조금 괴로웠던 것은 다가올 20년의 삶을 생각할 때 느꼈던 끔찍한 약동이었다. 그래서 나는 20년 후 죽음을 맞이할 순간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할지 상상하면서 이 감정을 억누를 뿐이었다.
---「제2부」중에서

당신은 확신에 차 있어, 안 그래? 하지만 당신의 어떤 확신도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가치가 없어. 당신은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는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어. 나로 말하자면 빈손인 것 같겠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확신이 있고 모든 것에 확신이 있기 때문에 내 삶과 다가올 내 죽음에 대해 당신보다 더 확신이 있어. 그래, 내가 가진 건 이것뿐이야.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진실이 나를 붙들고 있는 만큼 나 역시 이 진실을 붙잡고 있어. 나는 예전에도 옳았고 여전히 옳으며 항상 옳아.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살 수도 있었어. 나는 이런 일은 했지만 저런 일은 하지 않았어. 이런 일을 하면서 다른 일은 하지 않았지. 이후에는 어떻게 됐느냐고? 나는 언제나 나를 증명하게 될 이 순간과 이 새벽을 기다렸던 것 같아. 어떤 것도,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아.
---「제2부」중에서

누구도, 어떤 사람도 엄마를 위해 울 자격이 없다. 나 역시도 새롭게 다시 살 준비가 됐다. 전조와 별이 가득한 이 밤을 뒤로하고 좀 전의 분노가 악을 정화하고 희망을 비우게 만든 것처럼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온화한 무관심에 마음이 열렸다. 세상이 나와 다르지 않았고 결국 형제애를 느꼈다는 점에서 나는 지금까지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덜 외롭기 위해서, 내게 남은 일은 처형당하는 날 많은 관중이 모여 증오의 함성을 지르며 나를 환영해주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제2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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