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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를 든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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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402g | 133*203*30mm
ISBN13 9791170960706
ISBN10 11709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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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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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더 어리고 현명하던 때 비슷한 사체를 봤던 순간이 기억 위로 스멀스멀 떠올랐다. 세현은 뒷걸음질로 부검실을 빠져나왔다. 피 묻은 장갑과 스크럽복을 바닥에 엉망으로 벗어두고 달렸다. 기억 위에 기억을 덧발라 둔 자국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와 세현이 도망치듯 남기고 간 발자국 위로 소복이 쌓였다.
--- p.20~21

아직도 세현은 머릿속으로 그가 좋아하던 순서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읊어낼 자신이 있었다. 절단은 무조건 칼날을 직각으로 찔러 넣을 것, 적출할 때는 직접 손을 사용하고, 피부는 보이는 즉시 박리한다. 조균은 사람을 죽이는 연쇄 살인마였고 세현은 그 사체를 치우는 딸이었다.
--- p.36

가늘게 흩뿌리던 빗방울이 굵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세현은 사체를 숨기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에 살고 있었다. 가만히 우비에 쌓인 변사체를 보고 있던 세현은 자신도 모르게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일이 귀찮게 됐다. 그렇다고 경찰이 이대로 순순히 조균을 잡게 내버려 둘 마음은 없었다. 이번에 그를 만나면 반드시 제대로 숨통을 끊어주리라 다짐했다.
--- p.60

“그리고 또 냄새가 났어요.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커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그 사람한테는 타인의 체액이 뒤섞일 때 나는 냄새가 나요. 오늘처럼 더운 여름, 밖에 내놓은 흰 우유가 썩으면서 나는 냄새랑 비슷해요. 코가 저릴 정도로 비릿하고 한번 묻으면 피부 속까지 스며들 정도로 질긴 냄새였어요.”
--- p.155

그러니 사체가 하나 더 나온다면 앞으로의 상황은 충분히 세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 정현이라면 과거의 토막 사체는 기억 언저리에 다시 묻을 것이고 당장 발견된 변사체를 수사하는 데 혈안이 될 것이다. 세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황망하게 통화를 마친 정현의 옆으로 다가갔다. 계속 이렇게 속아주길, 아무것도 모른 채로 헤매길 바라며 빗방울이 맺힌 정현의 어깨를 털어주었다.
--- p.207

(중략) 순간 정의감과 사명감으로 법의관을 선택했다고 망설임 없이 말했던 세현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자동차 바퀴에 자갈이 헛도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려 머리칼이 곤두섰다. 고개를 돌리니 이글거리는 태양 빛이 그대로 정현의 두 눈 위로 떨어졌다. 정현은 아득해진 정신을 깨우려 눈을 비볐다.
--- p.231~232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정현의 덤덤한 목소리에 세현은 담백하게 대답했다.
“물어보세요.”
“혹시 미제 사건에 대해 따로 숨기고 있는 정보가 있습니까?”
세현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헛웃음을 쳤다. 그에게 숨기는 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저는 서 과장님 믿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혹시나 알고 있는 게 있으면 저에게 먼저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왜 절 의심하세요? 전 형사님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 용서받겠다고 나대는 거 받아준 죄밖에 없는데.”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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