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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두꺼운 베일 같아서 당신을 볼 수 없지만

시간은 두꺼운 베일 같아서 당신을 볼 수 없지만

: 오늘의 시인 10인 앤솔러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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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30*200*15mm
ISBN13 9791192968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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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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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방
주먹이 가슴에 박히고
점점 몸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들어가지 마시오

거긴 빈방이 분명하지만 가득할 것이다
차갑고 기분 나쁘고 얼어서 터져버리는
---「권민경, 반지하」중에서

나는 빨간 지붕과 초록 정원을 내려다볼 수 있고
집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일어나기 전에 알아요
그것에 비하면 인형들을 재우거나 죽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지만 나는 신이라서 걸어 다니지 못해요
의자에 앉을 수 없고 풀밭에 누울 수 없고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넘어질 수 없어요
---「김개미, 인형의 나라」중에서

천 갈래 만 갈래
나뭇가지들 바람의 목울대 움켜쥔 채 흔들어대고
목울대 뜯겨나간 성난 바람이 하나둘 그들을 삼킬 때쯤이면
응달 속에서 풀잎 냄새가 올라와.
---「김안, 맏물」중에서

오늘도 시선을
피하지만 마주치는 마음은 별수 없다
---「노국희, 근린공원, 5 am」중에서

빛이 사라진 뒤에도 빛은 있어야겠기에 거기에 자작나무가 있다
내게 없는 당신이 여전히 내게 머물고 있는 걸 알게 하기 위해
묻어놓고 간 것이 저 나무가 아닌가 한다
---「손택수, 자작나무 통신」중에서

어떤 착각은 집으로 가는 한겨울 눈 쌓인 골목길이 따뜻하다고 느끼는 것이고
검붉게 번지는 저녁노을을 보며 아름답지 않냐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고
안녕하냐고 인사를 건네고 안녕하다고 받는 인사
---「윤의섭, 파레이돌리아」중에서

나는 나뿐인 집에 울려 퍼질 울음을 흉내 내어 입을 벌려보기도 했다 지금은 모두 빠진 나의 이 그건 네가 물려받았지 아가야 나는 네가 우는 게 좋아 내 잃어버린 치아가 모두 네 입에서 제자리에 있는 걸 보고 나는 전율한단다
---「이유운, 도상의 변천」중에서

느낌표만 있는 문장. 신발이 가난한 얼굴을 하고 엎드려 있다. 옷에 묻은 사치를 털어내세요. 목에 감은 밧줄을 걷어내세요. 복 받아라. 회개하라. 얼굴에 똥칠을 한 채 설교를 한다. 어둠이 밀려오면 더욱 신랄해지는 광장의 일들. 자기 말에 취한 말들과 취객의 말들이 뒤섞인다.
---「이재훈, 사이비」

창밖으로 불빛도 보이지 않는 밤이 오면 블라인드를 내려 밑줄을 만든다 이건 한겨울에도 여름 이불을 덮은 시야 배가 차가워지지 않게 살살 문지르는 시야 방충망에 달라붙은 윙윙윙처럼 되돌아오는 시야
---「임지은, 창문으로 쓰는 여름 시」중에서

봄이라며 외부 테라스 탁자에 앉았다가
추워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 정도가
내 생활의 번민 따위일 것
회상은
외투의 느슨해진 단춧구멍을 매만지는 일
불쾌한 기억들을 털어내듯 보풀을 뜯으며
어린 연인들에게 미소를 지어보는 일
---「전영관, 카페 테라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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